▲ 충북 청주시 딸기 스마트팜 농장.▲ 충북 청주시 딸기 스마트팜 농장.

 

기후변화가 농업의 질서와 주기를 흔들고 있다. 이상 고온과 집중호우, 예측 불가능한 가뭄이 반복되면서 작물의 경계가 무너지고 농민들의 삶은 끝없는 적응의 실험대 위에 올랐다.

충북의 농업 현장 또한 예외가 아니다. 망고·파파야·아열대 작물 실증재배가 확산하고 스마트팜과 유전자 분석 연구가 잇따르고 있지만, 이 변화의 흐름을 통합적으로 이끌 컨트롤타워는 부재하다.

◇부서별로 흩어진 ‘기후대응 농정’

현재 충북도는 농정국과 농업기술원 등을 중심으로 저탄소 농업, 스마트팜 보급, 청년농 지원 등 기후대응 관련 사업을 분야별로 따로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사업 간 연계나 통합 관리체계는 아직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흐름 앞에서 이 같은 ‘부처 칸막이식 대응’은 종합적 판단과 장기적 전략을 세우는 데 한계가 명확하다.

충북농업기술원 역시 열대작물 실증단지와 스마트농업 기술보급을 추진하고 있으나 축적된 데이터가 정책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현장의 변화를 뒷받침할 제도적 장치는 더디다.

한 도청 관계자는 “스마트팜 실증이나 재배시험은 활발하지만, 이를 종합 분석해 ‘기후형 농업 모델’로 제시하는 단계에는 아직 미치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그 사이 농업의 변화는 행정의 계획이 아닌 농민의 자율적 판단과 개인의 실험에 의존하고 있다.

◇사라지는 청년농, 멈춰선 세대교체

농업의 주체는 결국 사람이다. 그러나 충북의 농업 현장에는 젊은 세대의 발자취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농업경영체 등록정보’에 따르면 충북 전체 농업인 16만5000여 명 가운데 40세 미만 청년농은 3400여 명으로, 비중은 고작 2.1%에 그친다.

반면 60대 이상은 전체의 절반을 넘는다. 이는 단순한 인력난을 넘어, 농업기반 자체의 붕괴를 예고한다.

더 큰 문제는 청년농의 ‘유입보다 이탈이 빠르다’는 점이다.

충북 청년농의 대부분은 부모의 농장을 물려받은 2세대 승계농이며, 새로 귀농하거나 창업한 청년농의 비율은 극히 미미하다.

기술과 자본, 판로 확보를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도전보다 포기를 택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충북도의 청년농 지원정책은 대부분 중앙정부 의존형으로, 지역 실정에 맞춘 독자적 체계는 부재하다.

도 관계자는 “청년농 정착지원금, 스마트팜 보급 등은 대부분 국비사업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도비로 추진되는 청년농 사업은 해외연수 프로그램 정도에 그친다”고 밝혔다.

올해 해외연수에 참여한 인원은 24명. 그러나 청년농 기반을 다지기엔 턱없이 부족한 규모다.

◇타 지역은 이미 ‘기후농업 컨트롤타워’ 가동

전남과 경북 등 일부 광역지자체는 이미 선제적으로 대응에 나섰다.

전남도는 농식품 기후변화대응센터 설립을 추진하며 기후변화에 대응한 거점연구·실증 기능 구축을 시도하고 있다.

경북도는 농업 전단계에 걸친 데이터 기반 스마트농업 기술개발과 실증인프라 확충을 통해 디지털농업 대전환을 꾀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작물별 피해 예측·품종 전환·탄소중립 농업 실현까지 통합 관리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충북 또한 기후변화 대응의 컨트롤타워를 신설해 기후 데이터, 작물 전환, 농업 에너지, 청년농 정책을 묶는 구조적 개편이 시급하다.

◇농민들은 이미 변화를 시작했다

기후의 경계가 무너진 농업 현장에서 농민들은 스스로의 답을 찾고 있다.

제천에서는 수박 대신 ‘디냐’를, 청주에서는 사과 대신 망고를, 괴산에서는 벼 대신 샐러드용 쌀을 재배하는 농민들이 등장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날씨가 바뀌면 농사도 바뀌어야 한다”는 절박함이다.

데이터와 기술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팜, 자동제어 시스템, IoT 온습도 조절 등 새로운 농법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그러나 행정의 제도적 뒷받침이 없는 한, 이러한 실험은 여전히 ‘개인적 모험’의 영역에 머문다.

충북농협 관계자는 “기후변화는 더 이상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구조적 변수로 고착됐다”며 “충북은 지역별 작물 전환, 기상데이터 분석, 농가 맞춤형 기술지원이 유기적으로 연계되는 컨트롤타워를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 위기는 농업의 생존 구조를 바꾸고 있다. 하지만 충북의 농정은 여전히 부서별 사업 단위에 갇혀 있고, 청년농은 제도 바깥에서 흔들리고 있다.

이대로라면 충북의 농업은 다음 세대의 손에 제대로 이어지기 어렵다.

농민들은 이미 변화를 시작했다. 이제는 행정이 뒤따르는 것이 아니라, 어디로 가야 할지 이정표를 세워야 할 때다.

기후의 경계를 넘어서는 충북 농업의 미래는 ‘대안 중심의 전환’에서 시작된다.

/김재옥·조은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