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일보 황성조 기자 외 1명 '도시는 짓는데,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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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 없는 택지개발의 종말-전주, 군산, 익산, 인구가 사라진 도시
저출산·공실·도심공동화, 전북 3대 도시의 붕괴

전주혁신도시 법조타운 인근
2025년 10월 현재, 전북의 중심 도시들이 '인구 절벽' 앞에 서 있다.
전주시 인구는 2021년 65만8,000명에서 2025년 63만 명 아래로 추락했다. 4년 새 2만8,000명이 사라진 것이다.
군산시는 더 심각하다. 2015년 27만8,000명에서 2025년 25만7,000명까지 줄어, 10년간 2만1,000명이 도시를 떠났다.
익산시만이 예외다. 2025년 26만7,659명으로 3년 연속 순증세를 기록했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착시 현상'에 가깝다. 20대 인구는 5년간 19.3% 감소했고, 출산 가능 연령대는 계속 줄고 있다.
합계출산율이 더 심각한 문제다.
전주시 0.69명(완산구 0.60명), 군산시 0.74명으로 모두 전국 최하위권이다. 전북 평균 0.69명은 전국 꼴찌다.
이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다. 미래 인구의 종료를 의미한다.
현재 추세가 지속되면 2030년 전북 인구는 170만명 밑으로 떨어지고, 2040년엔 150만명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전주 만성동
전주 만성동 아파트 입구에 건물이 통째로 매매에 나와잇다.
전주 효자동 2가
◆ 전주 - 도심공동화와 혁신도시의 역설
전주의 위기는 이중구조다. 구도심인 객사길·풍남문·영화의거리는 점포 10곳 중 3곳이 비어 있고, 혁신도시와 만성지구 등 신도심은 공실률이 25% 내외로 높다. "기존 도심은 죽이고, 신도심은 살리지 못한" 전형적 실패 사례다.
전주혁신도시 인구는 2만8,800명 수준에서 정체 상태다. 공공기관 근무자 중심의 거주지로는 성공했지만, 생활·상권·문화 인프라는 따라오지 못했다. 야간과 주말 유동 인구가 80% 급감하는 '5일제 도시'가 됐다.
현지 중개업소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혁신도시 아파트는 실거주 수요는 있지만, 상가 투자는 끊겼습니다.
주말이면 거리가 텅 비어요. 저녁 6시가 넘으면 불 꺼진 도시죠.“
만성지구 법조타운의 상가 건물들은 낮에도 임대 현수막 일색이다. 건물 전체에 임대나 매각 현수막이 붙은 곳도 다수다. 전주시 미분양은 192세대로 전북에서 가장 적지만, 거래량은 전년 대비 40% 감소했다. 사고 싶은 집은 없고, 팔고 싶은 집만 넘쳐나는 상황이다.
군산 중앙로 1가
옛 군산경찰서 앞 건물들이 임대문의 딱지로 가득하다.
군산 수송동
◆ 군산 - GM과 현중이 떠난 뒤 남은 것
군산은 전북에서 가장 극단적인 인구 감소와 경제 붕괴를 겪고 있다. 2018년 한국GM 공장 폐쇄, 2019년 현대중공업 조선소 가동 중단으로 1만5,000여명이 직간접 일자리를 잃었다. 도시의 경제 기반이 한순간에 무너진 것이다.
2024년 군산시 인구 감소 폭은 1,933명으로, 전년(2,487명)보다는 줄었지만, 여전히 매년 2,000명 가까이 도시를 떠나고 있다. 출생아 수는 1,000명으로 전년비 17명 증가했지만, 사망자는 2,372명으로 109명 늘었다. 자연 감소 1,372명, 사회적 감소(순유출) 562명이다.
무엇보다 고령화가 심각하다.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이 25%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경제활동인구(20~64세)는 15만명대로 줄어, 도시 유지의 임계점에 다다랐다.
군산의 미분양 아파트는 866세대로 전북 전체(1,753세대 2025년 중반 기준)의 55%를 차지한다. 은파호수공원 주변 신도시에는 입주를 기다리는 아파트 단지들이 줄지어 서 있지만, 실제 입주율은 절반에 그친다.
현지 한 자영업자는 "사람보다 빈집이 더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익산 영등2동
익산 영등2동
◆ 익산 - 착시 현상 속 숨겨진 위기
익산시는 2025년 세 차례 인구 순증을 기록하며 '반전의 도시'로 불린다. 올 3월에는 308명, 4월에는 161명이 증가했다. 하지만 이는 전북 도내에서의 이동일 뿐, 절대 인구는 여전히 줄고 있다.
2024년 전체로 보면 익산시 인구는 2,035명 감소했다. 자연 감소가 1,548명, 사회적 감소가 553명이다. 20대 인구는 5년간 19.3% 감소했고, 0~9세는 34.4% 줄었다. 미래 세대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상가 공실률이다. 익산 중심 상권의 공실률은 28.4%로 전북 평균(18.1%)을 10%포인트나 웃돈다. 신도심 상가는 '유령상가'가 됐다. 미분양 아파트도 999세대(2025년 8월 기준)에 달한다.
현지 상인은 이렇게 말했다. "역 근처 4곳 중 한 곳은 폐점 상태입니다. 임대료 내리기보다 '1년 무료 입점' 조건까지 붙여도 안 들어와요."
◆ 악순환의 고리 - 인구감소가 도시를 죽인다
전북 3개시의 위기는 "인구감소 → 소비력 급감 → 상가공실 증가 → 지방재정 악화 → 도심 슬럼화"라는 전형적인 지방 소멸 패턴을 보여준다.
특히 생산가능인구(20~64세) 감소가 치명적이다. 이들이 떠나면서 소비 시장이 위축되고, 상권이 무너지고, 일자리가 사라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남은 것은 고령층과 빈 건물뿐이다.
그런데도 지방정부는 여전히 "개발=성장"이라는 낡은 공식에 매달리고 있다.
새로운 아파트 단지를 승인하고, 상업용지를 공급하고, 도시재생사업에 예산을 쏟아붓는다.
하지만 사람이 없는 곳에 건물만 늘리는 것은 도시를 살리는 게 아니라 죽음을 가속화하는 것이다.
◆ 전북의 실험들 - 아직은 걸음마 단계
일본 도야마시 '콤팩트시티' 전략의 핵심은 외곽 신규 개발 억제와 도심 기능 집중이었다. 노면전차(LRT)와 순환버스로 대중교통망 구축, 도심 거주자에게 주택 구입·리모델링 보조금 지원, 의료·복지·교육시설을 도심에 집중 배치, 고령자·신혼부부 맞춤형 임대주택 공급 등이 추진됐다. 결과적으로 자동차 의존도는 줄이고, 보행 중심의 생활권을 만들어 '걸어서 15분 내 모든 생활이 해결되는 도시'를 구현했다.
프랑스 파리의 '15분 도시(15-Minute City)' 정책도 같은 맥락이다. 도보 15분 내에 주거·상업·의료·교육·문화시설이 모두 있도록 도시를 재설계했다. 자동차 도로를 줄이고 자전거 도로와 소공원을 늘렸다. 결과는 놀라웠다. 시민 만족도가 크게 올랐고, 탄소 배출량은 줄었다.
전북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시작됐다. 군산시는 빈 상가를 공공임대로 전환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청년 창업자에게 저렴하게 임대하고, 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연계한다. 아직 규모는 작지만 반응은 나쁘지 않다.
익산시는 '청년창업타운' 구상을 추진 중이다. 모현동과 영등동 일대를 크리에이터 중심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전주시는 객사길과 한옥마을 일대에 문화복합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보여주기식 단발성 사업에 그치고 있다. 근본적인 도시구조 개편이나 장기 비전은 보이지 않는다.
◆ 전문가 진단 - "도시정책 패러다임을 바꿔야"
황지욱 교수(전북대 도시공학과·스마트시티 전문가)는 전북 도시들의 현 상황을 이렇게 진단했다.
"전북 3개시는 모두 20세기형 확장 개발 모델에 갇혀 있다.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계속 새로운 택지를 공급하는 것은
한정된 파이를 더 작게 나누는 것과 같다.
지금 필요한 것은 '스마트 수축(Smart Shrinkage)' 전략이다.
도시 규모를 줄이되, 남은 지역의 밀도와 질을 높이는 것이다.
특히 15분 도시 개념을 적용해 생활권을 압축하고,
사람들이 걸어서 일상을 해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황 교수는 구체적 대안도 제시했다.
"첫째, 외곽 신규 개발을 당분간 중단해야 한다.
둘째, 기존 도심에 의료·교육·복지시설을 집중 배치한다.
셋째, 대중교통과 보행·자전거 인프라를 확충한다.
넷째, 청년층 정착을 위한 일자리와 주거 지원을 강화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인식 전환이다.
'개발=발전'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삶의 질=발전'이라는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
◆ 골든타임을 놓치면 되돌릴 수 없다
전북 3개시는 지금 도시재생의 골든타임에 서 있다. 아직은 되돌릴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많지 않다.
현재 추세가 지속되면 2030년대에는 도시 기본 기능 유지도 어려워진다. 학교가 문을 닫고, 병원이 떠나고, 대중교통이 중단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남은 주민들조차 떠날 수밖에 없다.
도시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건물을 지어도 사람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 지금이라도 정책 방향을 바꿔야 한다. 공급 중심에서 삶의 질 중심으로, 양적 성장에서 질적 발전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전북 3개시의 미래는 여기에 달려 있다. 골든타임을 놓치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황성조·최병호기자
출처 : 전라일보(http://www.jeolla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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