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일보 황성조 기자 외 1명 '도시는 짓는데,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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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 없는 택지개발의 종말-불 켜진 건물보다, 꺼진 상가가 더 많다
-유령도시가 된 광주·세종·나주 신도시
도시가 더 이상 팽창하지 않는다. 한때 ‘균형발전’이라 불린 신도시·혁신도시 정책은 인구 구조의 급변 앞에서 방향을 잃었다. 도시를 짓고, 상업용지를 팔고, 세수를 확보하던 방식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 지금 한국의 지방 도심 곳곳에선 “사람이 없는 도시”라는 잔혹한 현실이 펼쳐지고 있다. 본 기획은 전북과 호남 신도시, 전국 주요 계획도시 현장을 직접 취재해 ‘지속 가능한 도시 설계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도시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으로 완성된다는 단순한 진리를 외면한 채, 콘크리트만 쌓아 올린 도시의 종말이 지금 여기서 실시간으로 쓰이고 있다. 편집자

나주 혁신도시=드론 활영
한때 '균형발전의 미래'라 불리던 혁신도시와 행정도시들이 인구 유출의 최전선이 되고 있다. 2025년 전라북도의 인구는 178만명, 15년 전 대비 9만명이 줄었다. 전국 합계출산율은 0.72명, 전북은 0.69명으로 전국 최저권이다. 젊은 층은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났고, 남은 도시엔 고령층과 공실만 남았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지방 곳곳에서는 여전히 택지를 조성하고 새로운 아파트와 상업시설이 솟아오른다. 이 모든 불균형의 시작은 ‘계획 없는 신도시 개발’이었다.
광주 충장로1가. 임대문의 건물.
광주 황금동. 텅 비어있는 상가들
광주 불로동 임대문의 건물
◆ 광주 - 명동이었던 충장로, 임대 문의만 남았다
광주 충장로. 한때 호남의 명동이자, 패션과 문화의 상징이었다. 2025년 10월 현재 이곳의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26%, 사무용 오피스 건물은 44%에 달한다. 전국 평균(13%)의 두 배다. ‘임대문의’ 현수막은 간판처럼 붙어 있고, 대기업 프랜차이즈마저 철수했다. 스타벅스와 커피빈, 유명 화장품 체인들도 줄줄이 떠났다.
광주 경제를 떠받치던 대유위니아 등 제조업이 무너졌고, 청년들이 사라지자 소비도 줄었다. 그럼에도 공공기관은 새로운 ‘도심 특화거리’ 사업을 내세우며 상가 개발 인허가를 쏟아냈다. 수요가 없는 시장에 공급을 얹는 폭탄은, 결과적으로 ‘공실의 재생산’으로 이어졌다.
“코로나로 죽고, 인구감소로 무너졌어요.
다섯 집 중 한 집은 비어 있다고 봐야죠.”
- 충장로 상인 인터뷰 중
세종특별자치시 산울동 빈 건물.
세종특별자치시 해밀동
◆ 세종 - 계획의 도시가 사람을 잃다
세종은 대한민국의 대표 행정수도이자 계획도시다. 2024년 39만8,000명으로 정점을 찍은 인구는 2025년 들어 두 달 연속 순유출로 39만2,000명으로 줄었다. 전입 4,130명, 전출 4,414명. 세종은 전국 최다 순유출 도시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합계출산율은 1.03명으로 전국 1위지만, 출생아 수는 4년 만에 16.5% 감소했다. 가임여성 유입 없이 ‘젊은 도시’라는 타이틀만 남은 셈이다.
세종 산울마을·다정동·나성동 일대의 상가 공실률은 25~27%, 일부는 50% 이상이다. 입주민이 없는데도 옆 블록마다 동일한 상업용지가 계속 분양되고 있다.
세종엔 도시설계의 핵심이 빠져 있다. 바로 사람의 생활 리듬이다. 지나치게 행정기관 중심으로 설계된 도시 구조는 생활 소비권과 분절되어, “낮엔 공무원이 출근하고 밤엔 꺼지는 도심”이라는 역설을 낳았다.
현지 중개사는 이렇게 말했다. “점심엔 붐비지만 퇴근하면 불이 다 꺼져요. 상가 반값 임대도 안 나가요. 그게 세종 현실이에요.”
이에 몇몇 택지는 아파트 분양을 미루고 있지만, 여전히 한쪽에선 아파트 신축단지 공사가 한창이다.
나주 빛가람동 건물 전체가 임대로 나왔다.
나주 빛가람동
◆ 나주 - ‘호남의 판교’에서 ‘빈집도시’로
전남 나주 빛가람혁신도시는 공공기관 16개를 이전하고, ‘호남의 판교’를 표방하며 조성됐다. 하지만 2025년 혁신도시 인구는 4만 명대 정체, 목표치의 80% 수준이다. 최근 두 달간 순유출 인구만 1,000명이 넘었다.
주요 상업지구 공실률은 37~43%, 3층 이상 상가의 절반은 비어 있다. 상가에선 ‘카페 두 곳이 경쟁하다 같이 망했다’는 자조까지 나온다. 또한 상가건물에 입주한 기업 상당수가 실질적 영업이 없는 페이퍼컴퍼니로 확인됐다.
전라남도 공공기관들도 속속 이전했으나 이미 한계들 드러내고 있다. 공공기관 이전으로 일시적 인구 유입은 있었으나, 야간·주말엔 유령도시가 된다. 지식산업센터 절반 이상이 공실로 남으며, 도시는 경제적 활동 없이 상주보다 출퇴근만 존재하는 공간으로 전락했다. 더욱이 구도심은 인근 빛가람동으로 인구가 빨려 들어가며 ‘블랙홀 현상’까지 발생했다. 나주 원도심의 20~40대 인구 비중은 불과 15%. 청년층이 빠진 거리는 낮에도 적막하다.
◆ 공통의 병 - 공급은 넘치는데, 사람은 없다
이 세 도시의 공통분모는 분명하다.
실질적인 정주 인구가 빠르게 줄고 있다. 정부·지자체는 여전히 '택지개발=성장'이라는 구시대적 사고를 반복 중이다. 상가·주택의 공급 과잉이 미분양, 공실, 상권 붕괴를 초래한다.
“그 많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나?” 경제 활력이 사라지자 소비도 멈추고, 투자와 창업이 위축됐다. 한나절만 도시를 둘러봐도 텅 빈 가게, 임대 현수막, 멈춘 공사현장이 끊임없이 눈에 띈다. 금융기관·신탁사들은 수익성이 떨어지자 집단 철수했고, 도시는 지어진 ‘부동산 덩어리’만 남은 채 빛을 잃어가고 있다.
이는 인구 소멸 → 상업 공동화 → 일자리 붕괴 → 지방 재정 악화로 확대되는 전형적 악순환이다. 공실과 미분양은 단순한 시장 문제가 아니라 곧 행정력과 세수의 붕괴로 직결된다. 이대로 가면 도시의 기본 서비스조차 유지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 콤팩트시티
해법은 단순하다. 도시의 ‘적정 성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해외 도시는 이미 방향을 틀었다. 일본 도야마시는 ‘콤팩트시티’ 전략으로 15년 만에 도심 거주율을 28%에서 42%로 끌어올렸다. 노면전차(트램)와 순환버스, 싱글과 고령자 맞춤 임대주택을 도심에 집중 배치했다.
외곽 신규 택지개발을 억제한 대신 기존 도심에 의료·복지·교육시설을 통합했다. 삶의 질 중심 도시 설계, 즉 사람의 생활권에 맞춘 “15분 도시(15-Minute City)” 개념이 정착된 것이다.
프랑스 파리, 스페인 바르셀로나, 호주 멜버른 등이 이미 15분, 20분 도시 생활권 시범에 성공하고 있다.
한국 역시 “많이 짓는 도시”에서 “살기 좋은 도시”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공급 위주의 성장정책 대신, 사람 중심·생활권 중심의 15분도시 모델을 적용해야 한다. 부산과 제주가 시범지를 조성하고 있다.
도보 15분, 자전거 15분 안에서 주거·상업·의료·교육·문화가 해결되는 도시. 생활밀착 인프라와 정주친화적 설계가 결합돼야 지방 도시는 다시 살아날 수 있다.
◆ 계획 없는 개발이 도시를 죽인다
광주, 세종, 나주는 지금 한국 신도시의 미래를 동시에 보여준다. 한때는 ‘균형발전의 상징’이었지만, 지금은 ‘사람이 사라진 도시’로 변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계획 없이 공급에만 몰두한 결과, 도시의 불빛은 꺼지고 가로등만이 남았다.
도시는 지어진다고 살아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있어야 도시가 산다. 지방정부와 중앙정부는 콘크리트 중심의 개발정책을 멈추고 인프라, 일자리, 문화, 정주 환경을 사람의 시간과 거리 속에 재배치해야 한다. 지금 멈추지 않으면, 불 켜진 건물보다 꺼진 상가가 더 많아질 것이다. 그것은 도시의 죽음이 아닌 우리 삶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황성조·최병호기자
출처 : 전라일보(http://www.jeolla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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