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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칼럼-남궁창성 강원도민일보 상무이사 겸 미디어실장] 김장 담그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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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2회 작성일 2025-11-24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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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동 준비는 군사 작전이었다. 식량과 땔감을 확보하라는 계절의 명령에 순응하는 1호 행사였다. 이맘때 고향 홍천에서 집안 아저씨가 햅쌀을 트럭에 싣고 오셨다. 소작농과 땅주인이 반반씩 나누던 시절이었다. 윤이 나는 쌀 10여 가마가 대청마루에 쌓이면 어린 마음에도 든든했다. 세 발 맹꽁이 용달차에 실려온 구공탄 3000장은 삼거리 연탄가게 아저씨의 손놀림에 맞춰 집안 창고에 차곡차곡 쌓였다. 그 옆자리는 아버지가 틈틈이 도끼로 패 놓으신 하얀 속살의 장작들이 천정까지 가득했다.


헐벗어 춥고 못 먹어 굶주리던 시절이었다. 어머니는 빨개진 손을 입김으로 호호 녹이시며 친구 엄마들과 김장을 준비하셨다. 배추 200 포기, 무 100 개가 마당에 가득 쌓였다. 배추는 한 포기 한 포기 사등분해 짭조름한 소금물에 푹 절이셨다. 대바구니에 한가득 담긴 머리는 파랗고 몸통은 하얀 무들은 싱싱하고 건강했다. 웬 김치가 그렇게도 많던지…. 배추김치, 총각무 김치, 백김치, 깍두기 그리고 고들빼기김치까지. 양도 많고 종류도 다양했다. 먹을 것이 늘 부족했던 시절, 김장김치는 한겨울 최고의 반찬이자 가족 건강의 근원이었다.


새벽부터 꼬박 반나절이 걸리는 김장 담그기는 동네잔치로 절정에 달했다. 들기름이 동동 떠 있는 뭇국,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 매콤달콤새콤한 햇 김장김치 그리고 펄펄 끓는가마솥에서 막 꺼낸 먹음직스러운 돼지고기 수육이 더해지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다. 엄마는 큼지막한 수육을 새우젓에 찍어 노오란 배추 잎에 싸 “아아~”하고 입에 넣어 주셨다. “너도 고생했다.” 김장 도우미 둘째에 대한 응원이자 한 해 가장 큰 일을 무사히 마친 엄마 당신에 대한 감사였다. 겨울은 그렇게 하루하루 깊어갔다.


22일은 김치의 날이었다. 법정기념일로 2020년 제정됐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김장은 사라지고 있다. 벽에 걸린 달력이 알려준 ‘김치의 날’이 동화같은 추억을 소환해줬다. 남궁창성 미디어실장


출처 : 강원도민일보(https://www.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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