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칼럼-최미화 대구일보 편집인 겸 고문] 길 / 서지안
페이지 정보
댓글 0건 조회 15회 작성일 2025-11-17 09:45본문
이정환(시조 시인)

길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나요?/ 그냥 우리가 지나치는 곳일까요?/ 하지만, 길은 있어요, 말 못 할 신비의 길
『말갛게』(제28회 대구시조시인협회 전국시조공모전 수상작품집, 2025년)
어릴 때부터 시조를 읽고 쓰는 일은 정서 순화와 심미안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된다. 다소 형식이 어렵지만 조금만 노력하면 잘 익힐 수 있다. 선조들이 물려준 시가의 한 갈래인 시조는 쓰면 쓸수록 묘한 재미를 느끼게 된다. 창의적인 의미 공간인 종장의 반전 때문이다. 정형률은 자유로운 상상력 발휘에 걸림돌이 될 것 같지만, 형식을 부리는 경지에 이르게 되면 전혀 그렇지 않다.
2021년 5월 18일 문학진흥법이 개정 공포되어 시조가 독립적인 문학 장르가 되었다. 그러나 초중고등학교 국어과 교육과정 문학 영역에 거의 반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대구시조시인협회가 28년째 전국시조공모전을 열어 시조의 저변 확대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 점은 주목할 일이다.
「길」은 실존적· 철학적 사유가 담긴 작품이다. 「길」을 쓴 서지안은 대구신성초등학교 3학년이다. 초장에서 길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나요?, 라고 묻고 있다. 평소 길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중장에서 한 번 더 그냥 우리가 지나치는 곳일까요?, 라고 묻는다. 질문의 강조다. 독자에게 두 번이나 묻고 나서 종장을 마무리 짓는다. 하지만 길은 있어요, 라고 단언한 뒤 그 길은 말 못 할 신비의 길이라고 말한다. 초등학교 3학년이 자각한 그 신비의 길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다음은 「십자가」와 「서지안의 아버지」다.
십자가를 바라보면/생각나는 예 수님// 사람들이 지은 죄가/ 거기에 얼룩져 있다// 따르라/따르라는 말이/ 별빛으로 내려온다.
우리 아버지는 서지안의 아버지입니다// 늘 같이 있는 분도 서지안의 아버지입니다// 가끔은 함께 걷는 분도 서지안의 아버지입니다.
「십자가」와 「서지안의 아버지」를 읽으니 신비의 길이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힌다. 기특하게도 이렇듯 생각이 깊은 어린이다. 문득 로버트 프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가 떠오른다. 아래는 시의 앞부분이다.
노란 숲속에 길이 두 갈래 갈라져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나는 두 길을 갈 수 없는 한 사람의 나그네로 오랫동안 서서/ 한길이 덤불 속으로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보았습니다.
이처럼 로버트 프루스트는 두 길 중 한 길을 선택한 이야기를 잔잔히 들려주고 있다. 「길」을 쓴 서지안 어린이의 생각도 「가지 않은 길」의 시인 로버트 프루스트의 사유와 일맥상통하리라 본다.
이정환(시조 시인)
관련링크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