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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칼럼-강윤경 부산일보 논설주간] 북한 비핵화와 '개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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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회 작성일 2025-11-05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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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일방적 러브콜에도
경주 APEC 기간 북미 대화 무산
핵 보유로 높아진 북한 몸값 확인

북한의 핵무장 안보 위협 현실화
현실적 억지력 갖추는 게 중요
이재명 실용외교 진가 발휘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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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폐막한 경주 APEC 정상회의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북미 정상회담 성사 여부였다. 트럼프 방한을 앞두고 CNN이 북한 땅을 바라보는 임진각 인근 카페 하나를 통째로 빌려 생중계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북미 대화가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돌았다. 북한이 올해 들어 처음으로 판문점 북측 시설물에 대한 청소, 풀 뽑기, 화단 정리, 가지치기 등 미화 작업을 벌이는 장면이 포착됐다는 점도 트럼프와 김정은의 만남을 점치는 징후로 해석됐다.

마침, 트럼프는 아시아 순방길에 오르면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고 싶다”라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김 위원장)도 내가 (한국에) 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며 “나는 그와 매우 잘 지내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을 일종의 ‘뉴클리어 파워’라 지칭했다. 이 표현을 쓴 게 처음은 아니지만 이번엔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할 거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어서 사실상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었다. 북측의 묵묵부답에도 순방 일정 연장과 대북 제재 해제 카드까지 내비쳤다. 누가 봐도 몸이 단 쪽은 트럼프였다.

김정은은 끝내 트럼프의 ‘러브콜’에 응하지 않았다. 대신 대미 협상통인 최선희 외무상을 러시아로 보내 푸틴을 접견하게 하고 트럼프 방한 날에 맞춰 서해상에서 함대지 전략순항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한마디로 연애편지에 퇴짜를 놓은 것이다. 트럼프는 귀국길 에어포스원 안에서 “그를 만나러 다시 올 것”이라며 한국을 떠났다.

APEC 기간 트럼프의 일방적 ‘구애’와 김정은의 ‘퇴짜’는 2019년 북미 하노이 노딜 이후 달라진 북한의 지정학적 위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하노이 회담 당시 전제 조건이던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 비핵화(CVIA)’는 이제 ‘불가역적 핵 보유’로 바뀌었다. 북한은 대북 제재에도 맷집이 생겼다. 우크라이나 전쟁 덕에 러시아라는 든든한 뒷배를 얻었고, 이는 대중 관계에서도 지렛대로 작용하고 있다. 트럼프의 돌발행동에 깨춤을 출 이유가 없는 것이다.

북한의 이 같은 태도 변화는 한국과 미국의 대북 정책이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는 현실을 확인시킨다. 북한은 한 번도 핵무장 야욕을 버린 적이 없었다는 점만 깨닫게 되는 꼴이다. 1991년 12월 31일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도 모른다. 당시만 해도 미국이 한반도에 다수의 전술핵을 전개한 상황에서 핵무기 존재를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NCND) 정책을 고수했다. 북한은 조선 반도 비핵지대화를 강하게 밀어붙였고, 미군은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철수하고 한반도 비핵화를 천명한다. 하지만 북한의 비핵화 공동선언이 사기극으로 판명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북한은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시작으로 핵무기 보유를 선언하고 수차례 핵 실험을 통해 핵무기를 완성했다. 진보 정권의 평화 제스처도 보수 정권의 강경 노선도 결과적으로 북한의 핵 폭주를 막지 못했다.

북한은 이제 유엔총회에서 주권과 생존권, 헌법까지 운운하며 핵 보유를 천명하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의 표현대로 그야말로 북한 비핵화는 이제 개꿈이 된 것이다. APEC 기간에서 보듯 트럼프가 미국 본토의 안전을 확보하는 선에서 북핵을 용인하며 협상에 나서는 경우의 수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로서는 하루빨리 북한 비핵화라는 미몽에서 깨어나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환상만 붙잡고 있다고 해서 안전이 보장되는 것도,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핵무장으로 맞서는 것은 현재로서는 판타지에 가깝다. 우리 나름의 현실적 대북 억지력과 협상력을 높이는 방안을 찾는 게 중요하다.

미국으로부터 핵추진잠수함 건조 승인을 이끌어 낸 것이 반가운 이유다. 잠수함 건조 능력과 소형원자로(SMR)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도 우리에겐 큰 자산이다. 미국과의 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해 우라늄 농축과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권한을 확보하는 후속 조치도 이뤄내야 한다.

북한도 언제까지 미국의 러브콜을 뿌리치지는 못할 것이다. 트럼프의 뒤끝도 생각해야 한다. 핵무기가 자신들의 안전보장에 필요조건이기는 해도 충분조건까지는 아니다. 내년 4월 트럼프 중국 방문이 되든 언제가 되든 자신들의 몸값이 최고에 이르렀다고 판단할 때 북미 대화에 응할 공산이 크다. 그때 우리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스스로의 힘을 키우는 현실적 준비를 해야 한다. 물론 핵추진잠수함 건조에 따른 주변국 견제와 경제적 리스크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 외교가 진가를 발휘해야 하는 게 바로 이 대목이다.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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