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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칼럼-이태규 한국일보 콘텐츠본부장] 한 전 총리, 신현확의 길 걸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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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79회 작성일 2025-08-26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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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총리는 대통령의 부하가 아니다...
국가위기에 공직자 행보 어떠해야 할까
책임 자처하는 국무위원 하나는 있어야

시각물_한덕수 전 국무총리 적용 혐의

국정을 야구로 얘기하면 일구이무( 一球二無)에 가깝다. 두 번도, 삼세 번도 없다. '다시 한번'이 없으니 매순간 혼신의 힘을 다해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불법 계엄이 내려진 그날 밤, 한덕수 전 총리의 일구이무가 사법의 심판대에 올랐다. 막으려 했지만 못 막았다는 한 전 총리의 주장과 달리, 내란 특검은 막지 않고 방조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불법계엄을 방조한 혐의를 주된 죄목으로 해 구속영장이 청구된 이유다.

공직자에게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은 부작위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은 우리 헌정사에 드문 일이다. 4·19혁명을 촉발한 3·15 부정선거로 국무위원 행태가 단죄의 대상이 된 적은 있다. 하지만 주어진 국정에 책임을 묻기보다 적극적 범죄 행위에 대한 처벌이었다. 한 전 총리의 영장을 청구한 조은석 특검의 의도는 다른 데 있는 것 같다. 개인을 떠나 국가위기 시 공직자의 행보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사회적 논의에 부친 것이다.

우리 정치사를 돌아보면 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들은 대통령이 굴리는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 무력한 인물로 비친다. 하지만 헌법상 대통령을 보좌하고 견제할 의무가 있는 국무위원은 일반 개인과는 다르다. 3·15 부정선거 당시 국무위원들은 중간중간 개표결과가 심상치 않자 심야에 정식회의를 소집하고 새벽 기자회견도 열었다. 국무위원들마저 부정선거 의심을 쏟아내자 경찰은 이기붕 득표율을 당초 조작치보다 낮추기까지 했다. 그러나 4·19 이후 설치된 혁명검찰부는 국무위원들을 조사해 8명을 동시 구속됐다. 이른바 '8인의 원흉'으로 불린 이들 가운데는 나쁜 의도는 없었다거나, 몰랐다고 발뺌하거나, 선처를 호소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한편에선 신현확 부흥부 장관처럼, 자유당 정권의 국무위원을 지낸 사람이 책임을 지지 않으면 누가 책임을 지겠는가 라며 사형을 언도하라고 죄를 청원한 이도 있었다. 이에 비하면 불법계엄의 책임을 자처하는 국무위원 하나 없는 지금이 더 부끄러운 역사일 것이다.

한 전 총리는 50년 가까운 공직생활에서 대통령 9명을 모시며 일했다. 스스로 대통령의 자리가 얼마나 고독하고 책임이 막중한지 눈으로 생생하게 봐서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런 한 전 총리가 당시 계엄을 막으려 했으나 막지 못했다는 말이 거짓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화가 나면 설득이 안 된다는 대통령을 경험해 본 이라면 이해되는 측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총리는 대통령의 부하가 아니다.

5년 전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이 특정사건에 대해 자신의 수사지휘권을 배제하자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고 받아쳤다. 정작 대통령이 되고 나선 관료들을 부하처럼 다뤘지만 “총장이 장관 부하라면 검찰의 중립성과 독립성은 거리가 먼 얘기가 된다”는 그때 말은 틀리지 않았다. 마찬가지 국정 2인자인 총리도 대통령의 부하는 아니다. 더구나 총리는 장관보다 엄격하게 국회 동의를 받아 임명되고, 헌법에 권한이 규정돼 있다.

그렇다면 불법 계엄을 막을 위치에 있던 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 누구라도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했는지 한번쯤 물어야 한다. 만약 계엄 당시로 다시 돌아가 그 자리에 있다면 지금까지 해온 것과 똑같이 하겠다고 장담할 수 있겠나.

수사로 밝혀진 대로라면 국무위원들은 상명하복에 순응하는 회색지대를 양산하고 말았다. 일부는 불법계엄을 수용해, 민주주의와 충돌하는 권력구조를 유지하는 역할을 자임하려 했다. 결국 어느 개인이 불법의 흐름에 편승을 했든, 저항을 했든 지금은 대세에 휩쓸려 갈 수밖에 없다. 다만 그래도 65년 전 신현확처럼 청죄의 길을 간다면 무책임과 부끄러움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한 전 총리에게 먼저 권하고 싶다.

이태규 콘텐츠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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