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칼럼-강윤경 부산일보 논설주간] 관세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강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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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6회 작성일 2025-08-08 10:09본문
미국 투자 조건으로 관세 속속 타결
글로벌 일자리 빼앗기가 협상의 본질
윈윈 게임 아닌 치킨 게임 공산 커
보호무역 시대 뉴 노멀로 받아들여
인재와 기술력 축적해 힘 키워야
사회적 대타협 내부의 힘 모으길

우여곡절 끝에 한미 관세 협상이 타결됐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공표한 25% 관세율 적용 시점인 1일을 목전에 두고 한미 간에 극적 합의가 이뤄진 것이다. 한국이 미국에 3500억 달러를 투자하는 대신 상호 관세를 15%로 조정한다는 게 골자다. 대미 투자 규모를 둘러싼 엇갈린 평가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유럽연합(EU) 수준으로 관세율을 맞추는 데 성공함으로써 큰 고비는 넘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관세 발효 시한을 앞두고 피를 말리는 전쟁 같은 협상이 어어졌다는 뒷이야기도 전해진다.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우리 협상단이 말만 꺼내면 관세율 25%로 하자며 의자에서 일어나려고 해 이를 붙잡느라 진땀을 흘리는 장면이 자주 연출됐다고 한다. 결국 K조선을 지렛대로 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를 제안해 미국 측의 마음을 움직였다. 협상 타결 후 리얼미터가 전국 18세 이상 남녀 101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63.9%(매우 잘했음 40.5%, 대체로 잘했음 23.4%)가 잘했다고 답해 여론도 긍정적이다. 기업들은 불확실성이 해소된 데 대해 안도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냉혹한 현실은 이제부터다. 트럼프의 ‘미치광이 전술’ 때문에 우리가 선방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래 봐야 관세 협상의 결과 남은 것은 자유무역 시대의 종언과 보호무역 시대의 개막이다. 우리나라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무관세로 미국에 수출해 왔는데 앞으로 15% 관세를 물어야 한다. 우리 제조업 평균 이익률이 5~10%인 점을 고려하면 이제부터 손해 보고 수출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트럼프는 자신의 저서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에서 목표가 50이면 100을 요구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척 80, 다시 50으로 낮춰 상대로 하여금 이겼다고 믿게 만드는 ‘앵커링 효과’를 말했다. 이번 관세 협상에도 적용 가능한 분석이다.
한미 정상회담 때 청구서를 또 내밀 수도 있다. 온라인 플랫폼법, 구글 정밀지도 반출 허용 등 디지털 규제와 농축산물 시장 개방을 둘러싼 이견, 3500억 달러의 투자 방식과 수익 배분, 방위비와 환율 문제 등이 말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미 뉴욕타임스는 4일(현지시간) 트럼프의 관세 협상을 ‘글로벌 강탈’이라는 표현까지 동원하며 비판한다.
자유무역 시대의 종언은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에 치명적인 일이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출범 후 자유무역 질서 아래서 가장 성공한 나라가 한국이었다. 30년간 이어진 세계화 시대를 지나며 한국은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했다. 2012년 발효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한국 경제는 눈부신 성장을 이뤘다. 이젠 그런 세계화가 막을 내리는 것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미국의 보호무역 전환이 트럼프의 변덕이나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는 데 있다. 트럼프 무역 정책의 설계자로 불리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저서 〈자유무역이라는 환상〉에서 자유무역을 미국의 일자리를 뺏는 재앙으로 묘사한다. 트럼프는 세계 최대 소비처인 자국 내수시장을 무기화해 세계경제 질서를 새로 짜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던 세상은 이제 없다. 패권 국가인 미국이 먼저 민주적 시장 질서를 부정하고 미국 우선주의로 돌아선 마당이다. 관세전쟁의 본질은 글로벌 일자리 싸움이다. 미국 투자를 유도하고 관세 장벽을 쌓아 제조업을 부활시키겠다는 것은 결국 역외로 빠져갔던 일자리를 다시 찾겠다는 것이다. 지금 세계는 인구 감소와 기후 위기에다 기술의 일자리 잠식으로 더 이상 고속 성장이 어려운 수축사회로 돌입했다. 우리 기업이 미국에 자동차와 반도체 공장을 지으면 그만큼 국내 일자리는 사라지는 것이다. 윈윈 게임이 아니라 치킨 게임일 공산이 크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나려면 스스로 기술력과 힘을 키울 수밖에 없다. 자강이 답이다. 우리는 그동안 국제 자유무역질서 속에서 빠른 추격(패스트 팔로우) 전략으로 성공을 이뤘다. 이제 우리 경제의 위상은 퍼스트 무브로 가지 않으면 경쟁력을 키울 수 없다. 우리 스스로 인재를 키우고 첨단기술을 축적해야 한다. 힘이 없으면 미국과의 협상에서도 찬밥 신세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트럼프로 부터 ‘당신의 카드가 없다’고 공개적으로 모욕을 당하는 장면을 목도하지 않았나. 이번 미국 관세협상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K조선이 돌파구가 됐다.
외부의 도전은 내부의 개혁으로 맞서야 한다.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정세를 판단하고 실사구시 해야 한다. 이제는 동맹의 시대가 아니라 자강의 시대다. 우리 경제 펀더멘털과 국제 경쟁력 강화가 최우선이다. 정부와 정치권, 기업과 노동자가 뜻을 모아야 한다. 우리 스스로 분열하면 싸움도 하기 전에 파탄의 길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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