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칼럼-이진우 매일경제 논설실장] OECD, 서울대, 강남아파트가 한국을 병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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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5회 작성일 2025-07-03 09:51본문
서울대도 벤치마킹 아니야
강남아파트는 사치품일 뿐
다양한 선택지가 국민 행복
얼마 전 만난 한 기업인은 한국의 경쟁력을 따질 때 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과 비교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오늘날 한국 기업의 90% 이상이 중국 기업과 치열하게 맞붙고 있는데, 비교 대상은 당연히 OECD가 아니라 중국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얘기다.

‘선진국 클럽’으로 불리는 OECD는 전 세계 38개국이 회원이다. 글로벌 조직이라지만 세계지도에 점을 찍어보면 그 중심은 유럽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한국에선 이런 유럽 국가들과의 비교가 일종의 습관처럼 굳어졌다. 노동 지표가 대표적이다. 주당 근무시간, 연간 휴무일 등을 따질 때 경쟁 관계도 아니고, 산업 구조나 노동 시장이 전혀 다른 유럽 국가들을 기준으로 삼는다. 반면 주 80시간씩 돌아가는 중국 테크기업의 현실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노동 지표만이 아니다. 기업 규제 수준도 마찬가지다. 한국 기업이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규제를 중국 수준에 맞춰야 한다는 주장은 십수 년 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정부는 물론 일반 국민들도 이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한때 우리보다 가난했던 중국을 무시한 탓일까, 아니면 유럽에 대한 과도한 동경 때문일까. 이유야 어찌 됐든, 그 결과는 명확하다. 엔터테인먼트 분야를 제외한 거의 모든 산업에서 지금 한국은 중국에 뒤처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내세운 ‘서울대 10개 만들기’ 공약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지역마다 서울대 수준의 명문대를 세워 균형 발전을 이루겠다는 구상은 언뜻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과연 ‘서울대’가 적절한 목표일까. 한 국립대 교수는 되물었다. “무수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 서울대를 지방에 10개나 왜 또 만들자는 건가?” 그는 “차라리 스탠퍼드대 같은 연구 중심 대학 10개를 만든다면 이해가 가겠다”며 “결국 서울대만큼 예산을 달라는 얘기로 들릴 뿐”이라고 꼬집었다. 정책 목표의 기준선부터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고질병처럼 반복되는 주택 문제 역시 다르지 않다. 역대 집값 대란의 진원지인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의 아파트 수는 모두 합쳐야 30만채 남짓이다. 전국 전체 아파트 1118만가구 중 2.7%에 불과하다. 그야말로 한줌에 불과한 사치재다. 그런데도 온 국민이 강남 아파트값에 일희일비한다. 직접 살지 않더라도 강남 집값이 오르느냐 떨어지느냐에 따라 내 재테크 성패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 통념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한국 사람들이 OECD, 서울대, 강남 아파트를 우러러보는 데는 그만한 현실적 이유가 있다. 우리가 꿈꾸는 나라는 중국이 아니라 유럽식 복지국가이고, 서울대는 여전히 가장 우수한 학생이 모이는 대학이며, 강남 불패는 한국 부동산 시장에서 오랫동안 통했던 공식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제는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 언제까지 현실과 동떨어진 기준에 얽매여 살아야 하는가. 무엇보다 국민들이 행복하지 않다. 나는 해답이 ‘선택지의 다양성’에 있다고 본다. 중국만큼은 아니더라도 자유로운 기업 활동이 가능한 유연한 규제, 굳이 서울대에 가지 않아도 질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공교육 시스템, 강남 아파트에 살지 않더라도 근사한 삶과 재테크가 가능한 사회. 그것이 진짜 선진국 아닌가.
새 정부가 들어선 지 이제 한 달. 새출발의 기운이 도는 시점이다. 이번만큼은 낡고 비현실적인 사회적 기준을 손질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게 국민의 삶을 바꾸는 진짜 개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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