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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칼럼-이태규 한국일보 콘텐츠본부장] 실용이란 유령에서 벗어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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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8회 작성일 2025-07-01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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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 한 달 ‘생각보다 잘 한다…’
인사 방향은 우려, 원칙 없는 실용은 혼란
역대 정부 복기해 실수 반복하지 않아야

편집자주

국제시스템이 새로운 긴장에 직면한 이 시기 우리 외교의 올바른 좌표 설정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40년간 현장을 지킨 외교전략가의 '실사구시' 시각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6월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서 제21대 대통령 취임사를 하고 있다. 뉴스1

이재명 대통령이 6월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서 제21대 대통령 취임사를 하고 있다. 뉴스1

실용에 기대어 CEO 출신 대통령을 선출한 적이 있다. 기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면 국가 경영도 잘 할 것이란 믿음이 컸다. 효율성을 앞세워 저돌적으로 밀어붙이는 불도저식 리더십. 국가가 곤경에서 벗어나리란 여망이 더해졌지만, 정치 리더십과 CEO 리더십이 다르다는 걸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프랑스의 사르코지를 정신적 동지라고 불렀지만, MB는 사르코지 같은 사회적 합의나 포용적 정책보다는 성장과 효율에 초점을 맞췄다. 기업과 국가는 존재 이유부터 다르다는 걸 오인한 것도 실패 원인이었다.

이런 MB식 실용을 불러낸 건 당시 이념 과잉 비판에 놓인 노무현 정부 탓도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노 정부는 실용 정부의 성공사례로 거론될 만큼 상황이 바뀌었다. 진영과 지지층 반대를 무릅쓴 한미 FTA 추진과 이라크 파병 결정이야말로 이념을 떠난 국익 관점의 실용주의로 평가된 것이다. 과도하게 이념이 현실에 개입한 부동산 정책 등 실패 경우도 있지만, 이 같은 노 정부의 성공담은 실용 기준이 어디에 있어야 할지 보여준 사례다.

이재명 정부가 다시 실용주의를 시험대에 올렸다. 이념을 넘는 실용적 접근, 실용적 시장주의 정부를 약속하며, 박정희 정책도 김대중 정책도 구별 없이 쓰겠다고 했다. 정책 현안에 실용이 접목되기 이른 시점이지만 '생각보다 잘 해서 무엇을 잘못 했다거나, 나쁘다고 말할 것이 없다'는 게 다양한 인사들의 의견이다. '준비된 대통령'이란 평가에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진영을 넘어 능력, 실무경험과 함께 민생 해결에 초점을 맞춘 인사 스타일은 역대 정부에서 보지 못한 일이다.

고민해야 할 옥에 티가 없는 건 아니다. 역량 등에서 ‘실용적’이라고 보여주는 정도에 그치거나, 실용이란 ‘외관’을 의식한 듯한 인사도 보이고, 실용과 명분이 혼재된 인사도 발견된다. 인사에서 읽히는 실용의 방향성도 조금은 우려스럽다. 기획재정부 출신에 의한 기재부 개혁, 대학총장 출신에 의한 대학 개혁, 검찰 출신을 대통령 옆에 둔 검찰 개혁이 제대로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지적도 경험상 합리적이다. 대통령은 국정철학과 정책을 제대로 이해하는 인물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과거 이 같은 인사에 의한 개혁은 출신 기관의 이익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대통령이 이들의 보고를 받으면 모두 맞는 얘기처럼 믿게 돼, 이후부턴 개혁 미진에 대한 비판도 들리지 않게 된다. 실무진까지 이렇다면 문재인 정부 초기의 특감반 사건 같은 후폭풍을 감내해야 할 수도 있다. 인사 추천을 받는 인사 부문과 이를 검증하는 민정 부문이 대통령의 사람들로 채워진 것부터 걱정되는 부분이다. 과거 정부들이 인사 추천과 검증을 한 바구니에 넣지 않고 어느 한쪽을 객관적 인사나 조직에 맡긴 것은 그 폐해를 알기 때문이었다.

우리 정치에서 실용주의는 유령과 흡사하다. 실용은 보수정부에선 좌향 좌를, 진보정부에겐 우향우를 의미했다. 중도 포섭이란 정치적 효용 덕분에 역대 정부들이 꺼내 들곤 했지만 문제는 그 실체를 포착하기 어려운 데 있다. 목표를 잃고 지엽적 문제나 눈앞 이해관계를 따지는 장돌뱅이 실용에 그치기를 반복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원칙과 국익을 우선해 사리를 분명히 가리는 것과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다. 실용 없이 원칙만 내세우다 정권을 내준 정부, 원칙 없는 실용을 앞세워 실패한 정부를 목격하며 우리가 터득한 경험지일 것이다.

바둑 고수들은 경기 이후 복기를 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인다. 출범 한 달이 되는 이재명 정부도 과거 정부들의 실수를 끊임없이 복기해서 반복하지 않기 바란다. 그래서 대통령이 말한 우파도 좌파도 아닌 ‘양파’의 문제 의식이 임기 내내 유지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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