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칼럼-정용관 동아일보 논설실장] ‘영혼 없는’ 정치, 그 불길한 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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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57회 작성일 2025-06-23 11:32본문
정청래 “이재명이 정청래, 정청래가 이재명”
박찬대 “콘크리트처럼 단단한 원팀 민주당”
권리당원과 유튜버에 영합하는 정치로는
다수의 상식과 괴리된 ‘망조의 길’ 갈 수도

더불어민주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 정청래 의원이 “이재명이 정청래이고 정청래가 이재명”이라고 했다. 그는 국회 법사위원장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소추위원장을 했던 인물이다.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원내대표를 했던 또 다른 친명 박찬대 의원도 오늘쯤 경선 출마를 선언한다고 한다. 당원들이 ‘청래파’와 ‘찬대파’로 분화돼 티격태격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흔한 말로 논두렁 정기라도 타고나야 국회의원 배지를 달 수 있다는데 각각 4선, 3선의 선수까지 쌓았으니 어떤 영역에선 보통 사람들이 갖지 못한 특출한 역량을 갖고 있겠지만 일반인들 중엔 이들이 거대 여당을 이끌 ‘정치 리더’인가에 대해 고개를 갸웃하는 이들도 적지 않은 듯하다.
한때 “이재명 경기지사, 그냥 싫다”고 했다는 정 의원은 2021년 이재명 자서전을 읽었다며 “인간 이재명과 심리적 일체감을 느끼며 아니 흐느끼며 읽었다”고 정치적 고해성사를 한 뒤 시종 친명을 자처해 왔다. 대중 정치인으로서의 존재감이 그리 크지 않았던 박 의원이 원내대표로 추대돼 170명의 의원을 통솔하는 지위에 올랐을 땐 “누구지?” 하는 반응도 나왔다.
요컨대 둘은 정치적 배경도 성향도 다르지만 이재명 일극 체제에서 남다른 충성심을 보이며 승승장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니 이번 경선도 결국 이 대통령의 의중, 즉 ‘명심(明心)’ 잡기 경쟁이 될 공산이 크다. 이들이 “이재명 대통령과 한 몸” “콘크리트처럼 단단한 ‘원팀’ 민주당” 등을 주창하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다만 정권 초반이니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외치는 게 당연하겠지만, 친명 중심의 ‘당정일체론’에서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윤석열 정권 이듬해인 2023년 3·8 전당대회 때 친윤계 후보들이 띄운 게 바로 ‘당정일체론’이었다. 당시 필자가 쓴 칼럼의 한 대목이다. “당정일체, 명예 당대표 추대 얘기에 이어 대통령실과 당의 ‘혼연일체’ 주장까지 들고나온 건 지나치다. 혼연일체란 생각과 의지, 행동이 합쳐져 완전히 하나가 되자는 건데, 무슨 검사동일체 원칙의 여의도 확장 버전을 보는 느낌마저 든다.”
원론적으로 정당은 이념과 가치의 정치 결사체로서 영속적이어야 하고 대통령은 그 당이 배출한 한시적 존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론 대통령 스타일에 따라 당의 위상도, 당내 권력 서열도 춤을 춘다. 대통령과 당이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게 중요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윤석열 정권은 이런 긴장 관계가 깨지며 파멸로 치달은 극단적인 예다. 정당 정치에 대한 기본 소양도 없이 권좌에 올라 “당은 내 말을 따르라” 했던 대통령, 그 나이브한 권력자의 비위를 맞추며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추구한 일단의 세력들에 의해 당은 망조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보편적 이익을 어떻게 실현할지에 대한 정치적 영혼은 없고 개인적 탐욕만 남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주당엔 국민의힘과는 질적으로 다른 측면에서 위험 요소가 도사리고 있는 것 같다. 110만 명에 달한다는 권리당원들의 파워까지 얽혀 있기 때문이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이른바 당심을 극단적이거나 인기 영합적인 몇몇 유튜버들이 좌우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들 유튜버나 권리당원들이 실질적 당권을 쥐고 있는 셈이다. 이들의 눈 밖에 나면 ‘왕수박’으로 찍히기 일쑤다. 그러니 말 그대로 이들에게 영혼을 맡기고 영합하지 않으면 당 대표 같은 자리는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다고 한다. 이쯤이면 누가 리더이고 누가 추종자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물론 국민의힘 쪽도 욕하면서 따라 배우는 분위기이긴 하지만, 거대 여당의 당론 집약 구조는 소수 야당 문제에 비할 바가 아니다. 국민주권, 시민주권, 당원주권, 직접 민주주의 등으로 교묘하게 포장된 ‘조직화된 소수’의 뜻이 마치 전체의 뜻인 양 왜곡되거나 그대로 국정에도 반영되고 나아가 ‘침묵하는 다수’를 지배하는 현상으로 이어진다면 그게 변형된 과두제 아니고 뭐겠나.
이 대통령은 이런 구조하에서 당내 경선에선 90% 가까운 득표율로 대선 후보로 선출됐지만 본선에선 절반에 살짝 미치지 못하는 득표율로 당선됐다. 그 차이를 유념할 필요가 있다. 대선의 강을 건넜으니 이젠 ‘국정’이라는 높은 고지(高地)를 향해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들까지 보듬고 올라가야 한다. 그러려면 당이든 내각이든 ‘침묵하는 다수’의 상식을 판단 근거로 삼는 ‘영혼 있는 정치인’이 훨씬 더 많아지고 그들이 주류가 돼야 한다. 과연 그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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