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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칼럼-남궁창성 강원도민일보 이사 겸 미디어실장] 앵두와 종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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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2회 작성일 2025-06-17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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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 누렸던 작은 행복 가운데 하나는 사무실 후배들과 점심 먹고 나란히 걷는 덕수궁 산책이었다. 빌딩 숲에서 탈출해 사람에 치이지 않고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을 경험하는 호사였다. 어느 해인가? 7월 초순 덕수궁을 찾았다. 중화전(中和殿)을 보고 석어당(昔御堂)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정갈하게 비질해 놓은 마당, 몇백 년 된 나무 아래 노오란 살구들이 밤새 떨어져 있었다. 하나를 집어 “후~. 후~.” 불어 입에 넣었다. 그 맛과 그 멋이 생생하다.

청와대 앞 경복궁 후원은 비밀의 정원이다. 4월 초순 벚꽃이 일제히 피면 연분홍색 꽃대궐이 된다. 한단지몽(邯鄲之夢). 비바람이 몰아치고 꽃잎들이 우수수 떨어져 도로를 나뒹굴면 처연했다. 궁궐 돌담길을 따라 건춘문(建春門)을 향해 걷다 보면 거대한 뽕나무들을 마주한다. 6월 이맘때 그들은 새끼손가락 만 한 오디를 선사한다. 하얀 화강암 인도를 보랏빛으로 가득 채운 열매를 놓고 새들과 자주 다투곤 했다. 그 맛과 그 장면을 잊을 수 없다.

요즘 출근길 만나는 화단에 짙푸른 나무들과 붉고 노란 화초들이 옹기종기 정겹다. 그 가운데 귀하디 귀한 앵두나무에서 탐스럽게 익어가는 앵두알들이 햇살을 받아 영롱하다. 며칠을 미루고 미루다 오늘 아침 앵두 한 알을 입에 물었다. 입안 가득 퍼지는 새콤하고 달콤한 맛이 시간 여행을 선물했다. 어머니는 시골집 뒤란에서 갓 따오신 붉은 앵두를 하얀 종지에 가득 담아 주시곤 했다. 그 맛과 그 사랑이 그립다.

이번 주말은 감자와 보리가 환갑(還甲)을 맞는다는 하지(夏至)다. 이 무렵 보리는 바싹 마르고 감자는 잎들이 시든다고 한다. 평창에서는 하지를 전후해 감자를 넣고 한 밥을 먹어야 풍년이 든다고 했다. 또 ‘감자천신한다’고 해서 방금 캔 감자를 맷돌에 갈아 노릇노릇 전을 부쳐 먹었다고 전한다.

어릴 적 배고픔을 달래주던 앵두와 오디는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들로 산으로 쏘다니며 살구를 따 먹던 친구들은 모두 다 안녕할까?

남궁창성 미디어실장

출처 : 강원도민일보(https://www.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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