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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칼럼-이진우 매일경제 논설실장] 바늘 끝 천사와 이재명 실용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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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1회 작성일 2025-06-11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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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주의 본질은 말 아닌 결과
유럽 좌파정부 성공사례 많아
노동정책, 성패가를 핵심변수
출발 잘못하면 두고두고 골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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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 끝 위에서 몇 명의 천사가 춤출 수 있는가."

중세 신학에서 유래한 이 질문은 천사가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존재임을 논증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실용주의 관점에선 하나 마나 한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현실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공허한 궁금증이기 때문이다.

지난 4일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사를 관통한 메시지는 실용주의였다. '유연한 실용정부' '실용적 시장주의' '실용외교' 같은 표현이 반복되며 그의 국정철학을 분명히 드러냈다. 이 실용주의 담론은 지지층을 넘어 보수 성향 국민에게도 기대감을 안긴 듯하다.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면 이민을 가겠다"고 말하던 기업인이 "어떻게 하나 지켜보자"며 말을 바꾸는 걸 봤다. 생활인이라면 쉽게 외면하기 어려운 실용주의의 위력이다.

요즘 이 대통령은 연일 실용주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외교안보 라인에 '동맹파'와 '자주파'를 함께 기용한다거나, 경제수석 직함을 굳이 '경제성장수석'으로 바꾼 것, 용산 대통령실을 당분간 유지하기로 한 결정, 특수부 검사 출신을 민정수석에 임명한 것이 그런 맥락이다. 이런 인사와 메시지는 국민에게 안도감과 안정감을 주는 데 도움이 된다. 



사실 실용주의는 보수의 전유물이 아니다. 유럽에선 많은 진보정권이 실용주의 정책을 통해 경제 회복과 사회 통합을 이뤄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정부의 하르츠 개혁, 포울 라스무센 덴마크 정부의 '유연 안정성(Flexicurity)' 모델이 유명하고 스페인, 덴마크, 스웨덴 역시 같은 길을 걸었다. 이들 국가는 모두 노동 유연성을 높이는 개혁을 단행해 생산성과 고용을 동시에 끌어올렸다.

이 대통령의 실용주의도 노동정책에서 성패가 갈릴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찜찜한 대목이 있다. 그의 노동공약들이 목 안의 가시처럼 걸린다. 노란봉투법, 법적 정년 연장, 주 4.5일제는 아무리 봐도 실용주의와는 결이 다르다. 산업 생태계를 흔들어 성장을 저해할 초대형 악재가 될 수도 있다.

이 대통령의 소년공 경험이 노동공약에 녹아 있다는 얘기가 있다. 인간적으로는 충분히 공감이 간다. 그러나 대통령은 모든 국민을 아우르고 섬기는 자리다. 특정 이념이나 집단의 이해관계에 얽매인다면 성공한 대통령은 물 건너가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의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한다. 1981년 정권을 잡은 사회당 출신의 미테랑은 집권 직후 주 39시간 근무제, 5주 유급휴가, 최저임금 10% 인상 등 강력한 친노동정책을 시행했다. 결과는 참혹했다. 수출과 생산이 쪼그라들고, 실업률과 재정적자가 급등했다. 결국 1년 반 만에 친기업·친시장 정책으로 방향을 급선회했다. 그렇지만 이미 저질러 놓은 친노동정책까지 원상복구할 수는 없었다. 후유증이 지속됐다. 미테랑은 임기 내내 고실업 늪에서 허우적거렸다. 당시 청년실업률은 20%대를 넘나들었다.

이 대통령이 곧 5대 그룹 총수와 주요 경제단체장들을 만난다고 한다. 부디 선입견을 내려놓고 산업 현장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청취하기 바란다. 고치거나 보완할 것이 없는지 살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게 국가 경제에 유리하다.

실용주의의 본질은 말이 아니라 결과다. 실제로 유용한 성과를 만들어야 의미가 있다. 대통령이 아무리 실용을 외쳐본들, 국민 실생활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허망한 말장난일 뿐이다. 바늘 끝 위에서 춤추는 천사들처럼 말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모두가 잘사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선 유연하고 개방적인 실용주의자의 미덕을 고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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