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칼럼-강윤경 부산일보 논설주간] 이제는 유권자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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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8회 작성일 2025-05-28 09:57본문
어느덧 21대 대선도 유권자의 시간으로 접어들고 있다. 29일과 30일 양일간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전국에 설치된 3568곳 투표소에서 사전투표가 진행된다. 선거를 거듭할수록 사전투표율은 올라가는 추세다. 20대 대선 사전투표율이 36.93%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고 전체 투표에서 차지한 비율도 47.9%에 달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21대 대선에서는 전체 투표자의 절반 이상이 사전투표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가능하다.
26일부터는 원양어선 등에서 선상 투표가 진행 중이다. 재외국민 투표는 벌써 마무리됐다. 전 세계 118개국에서 등록된 25만 8000여 명의 유권자 중 20만 5000여 명이 투표에 참여해 79.5%의 투표율로 역대 대선 최고를 기록했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유권자의 시간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사전투표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지만, 유권자들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대통령 탄핵에 따른 보궐선거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후보들의 구체적 공약은 보이지 않고 네거티브만 난무하는 ‘깜깜이’ 대선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26일에서야 국민의힘이 겨우 공약집을 내놓았고 더불어민주당과 개혁신당은 아직 내놓지 않고 있다. 정책 경쟁을 이야기하면서도 유권자의 알권리를 외면하고 ‘검증’과 ‘비판’을 피하고 있다는 혐의를 받기에 충분하다.
그나마 TV 토론이 후보들의 생각을 가늠해 볼 기회였지만 네거티브 공방으로 유권자의 눈과 귀를 가렸다. 핵심 어젠다를 둘러싼 치열한 토론은 애초 무리였고 남은 거라곤 ‘커피 원가 120원’ ‘호텔 경제학’ 따위다. ‘진짜 총각’ ‘형수 욕설’ ‘소방관 갑질’ 등 상호 비방의 구태는 도를 더했다. 물론 TV 토론은 내용 못지않게 태도도 중요한 판단 요소라지만 대선 후보다운 논리와 기품을 갖춘 촌철살인의 언어 한마디가 아쉬웠다. 겉돌다 끝나는 맹탕 TV 토론이 될 바에는 차라리 미국처럼 사회자의 돌직구 질문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더 심각한 건 이번 대선에서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미래지향적 시대정신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대정신은 사회 구성원들이 과거와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를 모색하는 공동의 가치다. 사회적 토론을 통해 이를 만들고 공유하는 과정이 대선인데 과거에 갇혀 헤어 나오지 못한다. 찬탄 반탄이 미래 가치를 모색하는 논쟁일 리 없고 내란 극복이 시대정신일 리는 더더욱 없지 않은가.
역대급 비호감 대선으로 꼽혔던 20대 대선에서도 ‘공정과 상식’이라는 시대정신이 있었다. 조국 사태와 LH 투기가 부동산 정책 실패와 맞물리면서 정권 교체로 이어졌다. 거슬러 올라가면 노무현 대통령은 지역주의 타파·반칙과 특권 없는 세상, 이명박 대통령은 ‘747 공약’으로 대표되는 실용주의와 경제 성장의 화두 속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 민주화와 복지의 확대로 국민적 공감을 얻었다.
지금이라고 시대정신이 없을 수 없다. 대선전이 상대를 악마화해야 승리할 수 있다는 극단적 진영 대결로 흐르면서 시대정신을 직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맞는 말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대전환의 시기다. 최근의 경제성장 둔화는 ‘한국 피크론’에 힘을 싣는다. 초저출생과 고령화로 성장 잠재력은 한계에 부딪혔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한국은 끝났다’는 유튜브 영상이 화제라고 한다. 독일 유튜브 채널이 공개한 이 영상은 불닭볶음면도, 오징어게임도, K팝도 사라질 거고 2060년이면 우리가 사랑하는 한국은 더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 경고한다. 출산 장려 등 급진적 변화만이 한국의 장기적 회복을 가져올 것이라 조언한다.
‘이제부터 진짜 대한민국’ ‘새롭게 대한민국, 정정당당 김문수’ ‘미래를 여는 선택, 새로운 대통령’ 후보마다 슬로건에 변화의 의지를 담았지만 ‘망해가는 한국’의 문제를 통찰하고 개혁의 방향을 제시하는 시대정신은 읽히지 않는다. 현재의 우리 사회가 한계에 봉착했다면 지금 당장 낡은 시스템을 갈아엎고 뼈를 깎는 구조 개혁에 나서야 한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사실은 방향도 나와 있다. ‘87년 체제’를 종식하고 망국적 수도권 집중을 해체해 국가의 새로운 혁신 동력을 만드는 일이다. 후보들이 고민하지 않으면 주권자인 유권자가 끌고라도 가야 한다. 상대적으로 누가 진정성과 용기를 갖고 대한민국의 구조적 문제를 직시하고 우리 사회를 미래로 끌고 나아갈 수 있을지 유권자가 결단해야 한다.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은 그들 수준에 맞는 대통령을 갖는다고 했다. 6월 3일 이후의 대한민국은 결국 유권자의 안목에 달렸다는 이야기다. 물론 최악은 아예 선택을 포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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