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금이사장 칼럼 - 이하경 중앙일보 대기자] 윤석열 부부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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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8회 작성일 2025-05-27 09:41본문
이하경 대기자
보수 유권자들이 결집하고 있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이기는 역전 드라마의 가능성도 있다. TV 토론에서 겸손한 표정으로 사과하는 ‘착한 김문수’에게 마음이 간다는 사람이 많다. 정책 디테일에 강한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의 거침없는 언변도 화제다. 단일화라는 승부수도 남아 있다. 그러나 이재명의 내란 심판론이 대세다. 파면된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의 미친 존재감이 그를 결정적으로 돕고 있다. 이재명은 중도·보수로 영토를 확장하는데 김문수는 ‘탄핵의 강’조차 건너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전 여사가 지난달 11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 관저에서 퇴거하고 있다. 뉴스1
이재명의 대통령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다. 문제는 그 후다. 꽃길은 어디에도 없다. 그를 좋아하지 않지만 내란세력의 재집권보다는 낫다는 생각에서 지지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자발적 협조의 기반이 약한 것이다. 경제가 엉망이다. 트럼프 2기 관세전쟁의 직격탄을 맞아 기업과 가계가 동시에 휘청거리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때보다 혹독한 시련이 올 수 있다. 누가 집권하더라도 실패하기 딱 좋은 상황이다. 외환위기 때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초당적 리더십이 특효약이었다. 이재명은 다르다. 검찰정권의 핍박에 맞서면서 비명횡사의 비정한 당내 권력을 휘둘렀고, 집권당과 죽기살기로 싸워 국정 파행의 원인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호소해도 너나없이 스크럼을 짜고 경제와 안보의 복합위기를 헤쳐나갈 것 같지 않다.
집권하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야 한다. 행정부와 입법부, 심지어 사법부까지 틀어쥐면 민심을 얻지 못하고 폭싹 망한다. 제2의 윤석열이 되는 것이다. 야권 인사가 이재명 부부에게 “실패하면 5년 뒤 감옥에 간다”고 직언했다. 아부와 충성의 홍수 속에서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축복이다.
이재명의 아킬레스건은 사법 리스크다.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받아왔다. 헌법 84조는 “대통령은 재임 중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고 했다. 재임 중 재판이 중지될지가 관심이다. 원로 헌법학자인 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의 의견을 들었다. “국민이 대통령을 뽑는 프랑스에서는 현직 대통령에 대한 재판이 중지된다. 그러나 퇴임 한 달이 지나면 재개된다. 한국의 직선 대통령도 민주적 정당성을 가지므로 같은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은 재임 12년간 재판을 면제받았다. 하지만 퇴임 후에는 취임 전의 공금유용 혐의로 재판에서 집행유예 2년의 유죄를 선고받았다. 민주공화국에서는 법 앞의 평등이 지켜져야 한다. 한국의 전직 대통령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경제가 무너지고 안보가 주저앉아 실패한 대통령이 되면 이재명은 참혹한 운명과 마주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캐스팅보트'로 꼽히는 충남지역 유세에 나선 25일 충남 아산시 탕정역 한들물빛공원에서 열린 집중 유세에서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차기 대통령은 부정한 방법으로는 단 한 푼의 개인 재산도 늘리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전임자 부부의 몰락을 보고도 같은 비리를 반복한다면 이 나라의 미래는 오물통에 들어갈 것이다. 정실인사를 추방하겠다는 다짐도 나와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망명 시절에 자기를 도와준 재미교포 사업가를 취임 초 지방 공기업 사장으로 기용하려고 했다. 강단 있는 특수부 검사였던 박주선 법무비서관이 “사표를 내겠다”며 단호하게 반대했다. 대통령은 역정도 내고 사정도 해봤지만 허사여서 결국 포기했다. 이 일을 계기로 김대중은 박주선을 미워하는 대신 전폭적으로 신뢰했다. 누가 집권해도 제2의 박주선에게 인사 검증을 맡기면 무자격자의 정실인사는 사라질 것이다.
대통령은 겸손해야 한다.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출신을 묻지 말고 유능한 인재를 끌어모아야 한다. 위기를 맞아 링컨과 김대중처럼 과거의 정적까지 포함된 최강의 진용을 구축해야 한다. 나를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마음까지 단숨에 움직일 수 있다. ‘해동의 요순(海東堯舜)’ 세종은 이른 새벽부터 일과를 시작했다. 살인적 업무로 즉위 7년 만에 중병에 걸려 관을 짜고 열두 살의 세자가 대리로 외국 사신을 접견했다. 초인적인 의지로 32년을 버티면서 애민정신으로 훈민정음을 창제했고, 조선 500년의 기틀을 확립했다. 그런데도 자신의 실패 사례를 열거하면서 “나는 유능하지 못하다”고 했다. 이런 겸손함이 있었기에 신분의 귀천을 따지지 않고 유능한 인재를 발탁했을 것이다.
대통령의 시간은 오직 국민을 위해 쓰여야 할 공공재다. 일본 총리의 일정은 매일 분 단위로 신문에 공개되고 있다. 대통령은 언제 누구와 얼마 동안 만났는지를 주권자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국정 핵심 과제를 국민과 공유하고 비선 실세와 십상시의 발호를 막을 수 있다. 이재명은 “정치가 점점 전쟁이 돼가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6월 3일 이후에는 오랜 핍박을 당했던 자신이 칼자루를 쥘 가능성이 크다. 부디 칼을 칼집에 도로 집어넣기 바란다. 정치보복의 악순환을 끝내고 너와 나, 국민을 모두 살리는 길이다.
이하경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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