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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칼럼-이태규 한국일보 콘텐츠본부장] 국적까지 바꿀 수 있다는 리콴유식 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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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66회 작성일 2025-10-28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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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EC 정상회의로 펼쳐진 실용외교 무대
이 대통령, 리콴유 같은 실용성 갖추고
안보실엔 힘 실어 ‘손흥민’ 역할 주문해야

2025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주간 첫날인 27일 외국인 관광객들이 경북 경주역에 설치된 환영부스에서 갓을 쓴 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경주=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2025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주간 첫날인 27일 외국인 관광객들이 경북 경주역에 설치된 환영부스에서 갓을 쓴 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경주=뉴시스

출처를 찾을 수 없으나 언론이나 유명 인사들이 자주 인용하는 말이 있다. 평론상의 요약, 후대의 해석 또는 맥락인데 이런 방식으로 알려진 ‘발언’이 적지 않다. 호찌민의 ‘목민심서’ 애독 이야기처럼 대통령 공식 메시지에 오를 만큼 수십 년간 사실로 간주되다가 오류로 드러난 사례가 있긴 하다. 하지만 많은 경우 사실 확인이 어려운 데다 듣기에 좋은 그럴듯한 이야기라서 생명력이 길다.

싱가포르 국부(國父) 리콴유의 “필요하다면 싱가포르 국가가 아니라 미국 국가를 부를 수 있다. 하지만 언제 미국이 필요 없을지 알아야 한다”는 말도 그런 경우다. 싱가포르 국립문서보관소를 비롯해 어디에서도 원문을 찾기 힘들지만, 작은 나라 싱가포르가 걸어가야 할 실용 외교를 상징하는 말로 자주 인용되고 있다. 그가 자서전에서 “평생 영국 일본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네 나라의 국가를 부르며 살아야 했다”고 고백한 것과 맞물려, 필요하다면 국적까지 유연하게 받아들이되 안보를 의존할 수는 없다는 냉철한 인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다. 경주에서 열리는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실용외교 무대에 서는 이재명 대통령이 거울 삼기에 좋은 사례일 것 같다. 지금 정국이 대통령 행보에 대한 긍정 여론으로 돌파되고 있는 것도 리콴유식 실용을 펴기에 좋은 여건이다.

사실 대통령이 아니라면 정국은 과적차량이 질주하는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정책 책임자들은 조율되지 않은 사안을 본인 판단대로 말해버리고, 여당은 국민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인데도 뚝딱 처리한다. 오래된 현안을 밀어붙여 손쉽게 해결하는 걸 성과로 여기겠지만, 실제 돌아가는 형편을 보면 뒤탈이 날까 불안하다. 대통령실 안보실과 정책실이 나서 수위를 조절하고 뒷수습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권 초기의 기술적 문제로 여길 수도 있으나, 관료들이 과거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고 의원들이 팬덤 정치를 하는 한 성과를 내기도, 유지하기도 어렵다.

이번 실용 외교의 최대 현안인 한미 관세협상은 안보와 분리된 경제 문제가 아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협상 역시 안보 기여와 경제 이익을 맞바꾸는 방식이다. ’타결에 매우 가깝다’는 미국과 달리 ‘타결을 확신할 수 없다’는 게 우리 정부 처지이고 보면, 트럼프의 공세가 어디로 튈지 심상치 않다. 게다가 미중 양국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갈등을 임시 봉합하면서 정부가 움직일 협상 공간은 좁아졌다. 그만큼 대통령의 부담이 커진 측면도 있지만, 그럴수록 지금이라도 안보와 경제를 분리 대응한 게 맞는지는 돌아볼 일이다.

자세한 내막까지 알 길은 없으나 협상 실패 시 안보 문제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는 위기감에 협상을 분리했을 수는 있다. 루비오 국무장관의 존재감이 떨어지고 러트닉 상무장관과 베선트 재무장관의 비중이 큰 트럼프 정부 내부 역학 문제를 고려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경험이 적은 경제 관료들이 협상의 키를 쥐는 것이 옳았을까 하는 의문은 씻기지 않는다. 지금까지 안전 위주의 관료적 접근법에 의존한 결과가 이어졌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안보와 경제를 패키지로 묶고, 동맹이라는 레버리지를 활용했다면 계산법은 달라졌을지 모르고, 이는 지금도 유효한 카드일 수 있다.

협상 결과와 무관하게 앞으로 내실 있는 실용 외교를 위해선 안보실이나 외교부 역할이 지금보다 커질 필요가 있다. 아마 정권 출범 이후 지난 5개월은 외교안보팀에 현안을 해결하면서, 빌드업을 하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보실만 해도 이제는 ‘수비’ 중심에서 벗어나 공격 포인트까지 올릴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보다 근본적으로는 대통령이 힘을 더 실어줘야 한다. 수비수 홍명보에 그치지 않고 손흥민 같은 역할을 하는 안보실을 기대해 본다.

이태규 콘텐츠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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