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칼럼-이진우 매일경제 논설실장] G10, 한국의 새로운 '별의 순간'
페이지 정보
댓글 0건 조회 26회 작성일 2025-08-20 09:17본문
국가업그레이드 계기삼아야
李, 미일 순방서 초석닦기를
'실용주의' 초심 회복할 기회

탄핵 정국의 후폭풍이 거세던 지난겨울, 한 원로 학자는 "12·3 비상계엄으로 한국이 치른 가장 큰 비용은 주요 10개국(G10) 가입 기회를 놓친 것"이라고 말했다. 그땐 그랬다. 한국의 이미지는 나락으로 추락했고, 어렵게 복원된 한·미·일 협력도 위태로워 보였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고 있다. G10 초청장이 다시 눈앞에 어른거리고 있다. 불과 반년 만이다.
돌이켜보면 한국의 수준을 한꺼번에 끌어올린 계기들이 있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그런 경우다. 말끔한 인프라스트럭처와 시민의식으로 한국을 세계에 각인시켰다. 2002년 월드컵 거리 응원에서 드러난 시민의식 역시 세계의 부러움을 샀다. 2010년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는 한국이 글로벌 거버넌스의 한 축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 이벤트였다. 국민들은 그때마다 '우리가 성장했다'는 자각을 공유했고, 사회 전반이 업그레이드됐다. G10 가입 역시 그런 '별의 순간'이 될 수 있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캐나다 등 선진 7개국으로 구성된 주요 7개국(G7)은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다. 한국과 호주 정도를 추가해 G10으로 확대하는 흐름은 자연스럽고 합리적이다. 실제로 그런 움직임들이 감지되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의 G10 진입에 가장 큰 변수는 두 가지다. 가장 큰 변수는 '승인권'을 갖고 있는 미국이고, 그보다 중요하진 않지만 아시아 유일의 G7 국가인 일본의 '몽니'도 극복해야 할 변수였다. 계엄이 없었다면 훨씬 유리한 환경에서 G10 가입을 추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쉽지만 기회의 문이 다시 열리고 있다는 점은 다행스럽다. 요동치는 국제 정세 덕분이다. 일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기존 G7 체제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 공공연한 사실이다. 지난 6월 초 캐나다 G7 정상회의도 트럼프가 조기 귀국으로 풍비박산을 냈다. 한일 관계가 나쁘지 않다는 점도 호재다.
이래저래 오는 25일 한미정상회담은 G10 진입의 초석이 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를 상대로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증명하느냐가 관건이다. 관세와 주한미군 같은 현안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다. G10의 문이 활짝 열릴 수도, 닫혀버릴 수도 있다. 그런 맥락에서 23일 한일정상회담은 절묘한 포석이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에게 '한국의 G10 가입이 일본에도 도움이 된다'는 메시지를 전해둘 필요가 있다. 미국의 지지와 일본의 협조를 확보한다면, G10 가입은 허황된 꿈이 아니다.
G10의 효능은 전방위적이다. 국제 질서를 설계하고 결정하는 국가로서, 외교·안보뿐 아니라 통상·금융 분야에서 격이 다른 네트워크를 가지게 된다. 우리 기업의 해외 영업과 외국인 투자 유치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국내적으로도 '선진국답게'라는 사회적 압력이 작동하면서 각종 제도 개선을 재촉할 것이다. '떼법' 같은 한국식 집단이기주의부터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역대 한미정상회담은 단순한 외교행사가 아니었다. 1970년대 지미 카터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 압박,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전두환 대통령 간 회담에서 논의된 김대중 감형, 2000년대 북핵을 둘러싼 협상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궤적을 바꾼 사례가 많다. 이번 회담도 마찬가지다.
최근 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세가 가파르다. 취임사에서 강조했던 '실용적 시장주의'가 갈수록 '정치적 당파주의'로 대체된 탓이다. 이번 외교무대는 초심을 되찾을 좋은 기회다. G10처럼 온 국민이 마음을 모을 만한 실용적 목표가 논의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이진우 논설실장]
관련링크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