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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칼럼-이하경 중앙일보 대기자] ‘폭군’ 트럼프와 만나는 이재명 대통령의 승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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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5회 작성일 2025-08-18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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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대기자

이하경 대기자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폴 크루그먼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로마제국 ‘폭군’ 칼리굴라에 비유했다. 트럼프는 앵커리지에서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을 따돌리고 러시아의 ‘차르’ 푸틴 대통령과 만났다. 우크라이나가 평화협정의 대가로 러사아에게 점령당한 돈바스를 떼어주는 ‘강요된 평화’를 흥정했다.


미국 싱크탱크는 “미국·영국·소련이 동유럽과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한 1945년 얄타 회담의 냄새가 난다”고 했다. 얄타회담은 한반도와 독일의 분할점령을 결정했다. 80년 전 이승만은 ‘얄타 밀약’을 폭로했다. 미국과 영국이 조선을 소련에 넘기기로 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부인했고, 진위는 알 수 없지만 조선의 공산화를 막았다고 평가받았다. 트럼프는 규칙을 무시하고 “힘이 곧 정의”라고 믿는 ‘폭군’이 맞다. 지금은 중국과 으르렁거리지만 언젠가는 약한 나라의 운명을 제물 삼아 강대국끼리의 대타협(grand bargaining)을 시도할 것이다. 이승만 식의 허를 찌르는 지혜와 용기가 없으면 한국은 우크라이나처럼 치욕을 겪게 된다.


트럼프는 관세폭탄으로 기존 무역합의를 조롱하고 항복을 받아냈다. 15% 상호관세가 부과된 한국·일본·유럽연합(EU) 등 동맹국도 무릎 꿇었다. 진보 노무현, 보수 이명박 정부의 경이로운 합작으로 탄생해 한·미 동맹을 안보·경제 동맹으로 진화시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13년 만에 소멸됐다. 반면 희토류라는 강력한 반격 수단을 가진 중국에는 145% 상호관세 부과를 두 차례나 유예했다. 어떤 원칙도, 신의도 없다. 규칙 기반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경제 축인 세계무역기구(WTO) 중심의 자유주의 무역질서는 심정지 상태다. 미국이 창조한 전후 세계 질서를 미국이 살해(殺害)하는 불길한 장면이다.


이 대통령은 일주일 뒤 ‘폭군’을 만나 안보와 경제의 새판을 짜야 한다. 우리의 지각(地殼)이 흔들릴 수 있지만 갈 길 바쁜 트럼프는 이쪽을 배려할 여유도, 의사도 없다. 한국은 이념과 체제가 다른 북한·중국·러시아 리스크를 턱밑에서 감당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를 공유하는 미국과의 동맹 강화는 선택이 아닌 운명이다. 이렇게 비대칭적인 협상 구조에서는 잃을 것이 훨씬 많지만 위축될 필요는 없다. 한·미 동맹은 역대 대통령이 압도적으로 불리한 조건 속에서 벌여온 사투(死鬪)의 축적물이다. 전임자들의 애국심과 용기를 복기(復棋)하면 사즉생(死卽生)의 승부수가 보일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1953년 정전협정 조인을 전후해 미국에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할 생각이 없으면 한국군이 북진해 통일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의 향방을 바꾼 일본의 진주만 공습을 정확히 예견했던 국제정치 고수(高手) 이승만을 제거하려 했다. 하지만 3차대전을 우려해 두 손을 들었고, 이승만은 그해 10월 한·미 동맹을 손에 쥐었다. 전쟁 중인 빈털터리 나라가 세계 최강국의 대외전략을 뒤흔들어 사지(死地)에서 탈출한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9년 6월30일 주한미군 철수를 통보하러 온 ‘저승사자’ 카터 대통령을 청와대에서 만났다. 협상 테이블에 앉자마자 직접 쓴 ‘철수 반대 문서’를 작심하고 45분 동안 읽었다. 카터는 격분했다. 두 사람은 주한미군 철수와 한국 인권을 놓고 충돌했다. 카터는 “북한이 국민총생산(GNP)의 20%가량을 군사비에 쓰고 있다”며 방위비 확대를 압박했다. 박정희는 자주국방 의지를 밝히면서도 “우리가 GNP의 20%를 군사비에 쓰면 폭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박정희는 을(乙)인데도 갑(甲)처럼 당당했다. 언론은 “최악의 정상회담”이라고 했지만 카터는 미군 철수 카드를 거둬들였다.


이 대통령은 중국 견제를 위한 ‘한·미 동맹 현대화’를 앞세운 트럼프의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감축과 역할 조정, 방위비·국방비 인상 압박을 받을 것이다. 트럼프는 동맹도 거래 차원으로 접근한다. 집권 1기 때는 주한미군을 철수하려 했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이 위험천만한 장사꾼으로부터 한·미 동맹을 사수(死守)해야 한다. ‘핵 확장억제의 지속적 제공’이라는 안보공약을 확약받아야 한다. 강대국의 일방통행에 맨손으로 맞서야 했던 이승만·박정희의 절대고독과 초인적 강단(剛斷)을 떠올리면 용기가 솟구칠 것이다. 지금 제조 강국 한국에는 중국과 건곤일척의 해양패권 경쟁을 벌이는 미국이 그토록 원하는 조선업 협력 카드도 있지 않은가.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한국인은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최악의 지정학적 환경에서 살고 있다”고 경고한다. 이럴 때일수록 대통령은 정파를 초월해 나라 전체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탁월한 전직 대통령들의 실전 경험은 미사일보다 강한 무기가 될 것이다. 외교가 힘을 쓰려면 먼저 나라 안에서 흔들림 없는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폭풍우가 몰아치는데 우왕좌왕하면서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항해에 나설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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