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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칼럼-이태규 한국일보 콘텐츠본부장] 시험대에 오른 국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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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80회 작성일 2025-07-29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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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읽기 몰린 한국, 유리하지 않은 협상
실리와 명분 사이 고통스러운 선택해야
국익과 충돌하는 소비자 이익도 고민을

시각물_한미 관세협상 주요 쟁점이미지 확대보기

시각물_한미 관세협상 주요 쟁점


지금 워싱턴은 세계가 공유해온 질서가 무너지는 현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세계화 경쟁에서 뒤처지자 룰을 바꾸고, 동맹까지 무릎 꿇려 주머니를 털고 있다. 시대착오로 여겨졌던 강대국의 보호무역, 권위주의가 우리 미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의 연속이다.

확실한 건 불확실하다는 것, 그리고 변덕스럽기까지 한 트럼프에게 먼저 굴복한 이는 기업인과 정치인이다. 집권 1기 때 마지못해 하던 기업인들이 이번엔 두 팔 벌려 그에게 다가갔다. 미 공화당은 트럼프와 자신들의 소신을 거래하며 ‘트럼프 숭배당’이란 말을 듣고 있다. 미국판 정경유착이 완성되자 등장한 게 관세와의 전쟁. 트럼프는 중국만 때리던 1기와 달리 협력국까지 내리치고 ‘관세를 돈으로 사라’며 강매하고 있다. 그런데도 현지 언론은 ‘최고 협상가’의 거친 행보에 침묵하고, 뉴욕증시는 협상을 호재로 삼아 연일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코인업계와 주고받은 트럼프 일가의 이해충돌을 용인하는 미국 사회는 더욱 놀랍다. 전체주의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오바마의 경고가 과장이 아닌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 양국의 관세협상이 트럼프가 정한 시한인 8월 1일을 하루 앞두고 단판으로 열린다. 우리 정부는 우리에게 혜택이 되면서, 국제정세와 복잡한 상황을 고려하겠다는 원칙만 공개했다. 단순한 경제 수치가 아니라 산업구조, 외교안보까지 감안해 실용적 선택을 하겠단 뜻이겠으나 그간의 사정은 말처럼 쉽지 않아 보인다. 트럼프는 물론 재무, 상무장관도 없는 워싱턴에 우리 통상 장관들이 출동해 있는 모습 역시 정상적이지 않다. 더구나 우리는 초읽기에 몰려 있는데, 미국은 농산물 시장개방을 압박카드로 쓰고 있다. 달라진 워싱턴의 공기, 거칠게 몰아세우는 트럼프식 협상을 고려하면 최악 상황을 각오해야 할 판이다.

말할 것도 없이 국민정서를 건드리는 쌀과, 30개월 이상 소고기 수입은 최대한 막는 노력이 필요하다. 2008년 촛불시위로 지켜낸 소비자 안전과, 한우농가 보호란 명분은 함부로 허물 수 없다. 그러나 500% 관세인 쌀, 우리와 러시아 벨라루스뿐인 소고기 수입제한 규정은 분명 불리한 팩트다. 먼저 협상을 타결한 일본, 유럽연합이 수용한 시장개방을 막으려면 다른 분야에서의 큰 양보가 불가피하다. 하지만 자동차 관세만 해도 일본의 15%보다 높으면 우리는 경제 보따리까지 내놔야 할 처지다. 경제 논리라면, 관세 부과를 받는 것보다 돈으로 관세로 낮추는 게 나을 수 있다.

진보, 보수 정권에서 통상을 담당했던 고위인사는 사과 얘기부터 꺼냈다. 제사상에 올릴 만한 1개 값이 지난 정부 때 8,000원 했는데 이번 정부서도 8,000원 하더라는 것이다. 정권을 구분하지 않고 사과가 비싼 이유는 기상이변과 작황 부진이 겹친 탓이 크다. 그런데도 저렴한 사과가 수입되지 못하는 이유는 과수농가 보호란 명분이 앞서기 때문이다. 이 인사는 이제는 사과를 지켜서 얻는 국익이 무엇인지 고민할 때라고 했다. 값싼 사과로 소비자가 얻을 이익을 마냥 무시하는 게 과연 국익에 부합하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얘기다. 현실적으로 수입제한이 능사가 아니라면 농가 경쟁력을 높이는 대책을 내놓고 국민을 설득하는 게 더 국익에 가까울 수 있다.

때로 국익은 소비자나 국민 다수의 이익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국익이 중요할 때도 많다. 정치, 경제 그리고 세계의 복합적 흐름 속에서 정의되고 추구되는 게 국익인 연유다. 경제의 명운이 걸린 이번 워싱턴 협상에서 어떤 분야를 포기하고 지켜낼지 고통스럽지만 냉정한 판단이 필요하다. 어떤 선택이든 실리를 잃고 명분을 우선한다면 실용은 장식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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