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칼럼-김광덕 서울경제 부사장 논설실장] ‘세기적 난세’ 정치가와 정치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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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5회 작성일 2025-05-30 10:13본문
국가 위기에 영웅과 역적 모두 출몰
경제·안보위기, 민주주의 훼손 우려
통합으로 재도약 추진 지도자 기대
유권자, 모리배 걸러내 정치 복원을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 사즉생(死卽生) 각오로 온몸을 던져 나라를 지킨 이순신 장군은 대표적인 영웅이다. 미국의 남북전쟁, 대공황, 2차 세계대전 등의 위기는 각각 에이브러햄 링컨, 프랭클린 루스벨트 등의 위대한 지도자를 탄생시켰다. 난세에는 역적들도 활개를 친다. 고대 중국의 한나라부터 위진 시대까지 혼란기에 왕망·동탁·조조·사마의 등 4대 역적이 등장했다. 이들을 합쳐 ‘망탁조의(莽卓操懿)’라고 부른다. 왕망은 황후의 조카로 전한(前漢)의 정권을 장악한 뒤 황제를 폐위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어 신(新)나라를 세웠다. 하지만 그는 폭정과 실정을 거듭한 탓에 반란에 의해 끔찍하게 처형당했고 결국 신나라는 멸망했다.
위기 속에서 치러지는 6·3 대선은 영웅과 역적들이 모두 출몰하는 무대라고 할 수 있다. 전 세계 곳곳에서 경제·기술 패권 전쟁과 관세 전쟁, 무력 분쟁 등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미국의 민주주의마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폭주에 의해 흔들리고 있다. 한 세기에 한두 번쯤 올 정도의 큰 위기를 맞고 있어서 ‘세기적 난세’라는 말이 나온다. 특히 한국은 경제·안보·정치 등에서 심각한 다층 복합 위기를 맞고 있다.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거쳐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으나 요즘 저성장 늪에 빠져 주춤거리고 있다. 안보 불안도 커지고 있다. 북한은 러시아·중국과 더욱 밀착하면서 핵·미사일 도발 위협을 하고 있다. 김정은 정권이 무모하게 도발할 경우 ‘아메리카 퍼스트’를 내건 미국이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고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양대 정치 세력은 연쇄적으로 자유민주주의를 흔들어대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는 헌법기관 권능 침해로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했다. 압도적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입법·탄핵 폭주 등으로 행정부 발목 잡기를 시도한 데 이어 사법부 겁박에도 나서고 있다. 민주당이 입법·행정권을 완전 장악하고 사법부까지 흔들 경우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 삼권분립이 무너질 수 있다. 소통 리더십으로 국민 통합과 국력 결집을 통해 복합 위기를 극복하고 재도약을 추진할 수 있는 영웅 출현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진정한 지도자는 성장·안보·통합 등의 ‘시대정신’을 간파하고 나라와 공동체를 위해 이를 구현할 수 있는 정치가 중에서 나온다. 그러나 권력과 사적 이익부터 좇으며 모리배 같은 행태를 보이는 정치꾼, 정상배들이 더 많은 게 현실이다. JF 클라크는 “정치가는 다음 시대를 생각하고 정상배는 다음 선거를 생각한다”고 말했다. 흔히 정치적 이벤트 전후에 음지에서 양지로, 추운 곳에서 따뜻한 곳으로 옮기면 ‘철새’라고 한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현란한 말로 명분을 만들고 변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정치가와 정치꾼을 구별하기는 쉽지 않다.
가령 보수 진영 대선 후보 경쟁에서 밀려난 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를 흔쾌히 돕지 않고 애매한 태도를 보여온 이른바 ‘3H(홍준표·한동훈·한덕수)’를 둘러싸고 여러 갈래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한덕수 전 총리는 앞으로 정치할 가능성이 별로 없지만 홍준표 전 대구시장과 한동훈 전 대표는 ‘신보수’ 깃발을 들고 새판 짜기를 시도할 개연성이 있다. ‘개혁 보수’로 그럴 듯하게 포장하겠지만 실천과 진정성이 중요하다. 정치인을 평가할 때는 신뢰, 일관성, 공익 우선 등의 잣대로 바라봐야 한다.
홍 전 시장은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서 패배하자 탈당과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하와이로 떠났다. 한때 ‘친윤(親尹)’이었던 그는 자신이 몸담았던 정당을 ‘국민의짐’이라고 맹비난한 데 이어 사전투표 첫날에도 “이번에는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그는 지난달까지도 이재명 민주당 후보를 겨냥해 “양XX”라고 원색적 비난을 퍼부었으나 요즘엔 ‘이재명 때리기’를 멈췄다. 그 대신에 “미래 투자”라면서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의 손을 들어줬다. 홍 전 시장의 행태가 민주당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는지 이재명 후보는 “돌아오시면 막걸리 한잔 나누시지요”라고 따뜻한 손을 내밀었다.
난세 속에서 치러지는 21대 대선은 누가 영웅이고 역적인지 구별되는 모멘텀이 될 것이다. 유권자들이 독수리 같은 예리하고 넓은 시야로 정치가와 정치꾼을 가려내야 나라가 정상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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