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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진 칼럼

[임원칼럼-권혁순 강원일보 논설주간] 노년의 모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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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2회 작성일 2025-11-26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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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남원 기자

시니어산업의 이름이 거창해 보여도 그 뿌리는 오래전 노승이 짚던 지팡이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세월의 무게를 버티게 하던 그 막대는 길 위의 돌부리를 헤치며 다음 걸음을 밝혀주는 은근한 등불이기도 했다. 지금 강원자치도가 마주한 초고령의 풍경 역시 낡은 장면이 아니라, 지층이 뒤집히는 순간 드러나는 새로운 시장의 결에 가깝다. 지난 21일 춘천 봄내체육관에서 열린 ‘2025 강원 시니어 산업 박람회’가 단순한 전시의 틀을 넘어, 잠든 감각을 깨운 것도 그 때문이다. ▼고령사회는 이미 우리가 익숙히 보던 지형을 조금씩 바꾸고 있다. ‘백세대학교’가 미식·뷰티·스마트공학을 한데 묶어 노년의 취향을 더 세밀하게 읽어낸 건 우연이 아니다. 시장은 늘 존재하지만 먼저 감각한 이가 주인이 되는 법이다. 강원자치도가 빠르게 늙는다는 통계를 위기라는 틀에 가두면 해답은 늦어진다. 변화의 속도를 먼저 읽고, 흐름의 방향을 재빨리 틀어 이익으로 전환할 수 있는 주체가 결국 지역의 다음 장면을 장악한다. ▼오래 산 이의 발자국에는 숲과 비탈의 냄새가 배어 있다. 강원의 산과 호수는 그 기억을 품은 채 치유·여행·기술이 뒤엉키는 헬스투어리즘의 실험장으로 적합하다. 원주와 강릉을 기술·돌봄 실증의 거점으로 조성한다면 지역의 ‘나이 듦’은 축소의 신호가 아니라 확장의 동력이 된다. 시니어 앞에 놓인 길을 넓히는 일은 결국 지역의 내일을 넓히는 일이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새로운 역할이 발화한다면, 고령의 시간은 더 이상 여백이 아니라 자원에 가깝다. ▼결국 관점을 바꾸는 쪽이 미래의 주도권을 움켜쥔다. 시니어를 보호의 울타리에만 가두면 시장은 급속히 마르고, 산업은 금세 뒤안길로 밀린다. 그러나 그들의 경험을 자산으로 삼아 사회 참여·창업·문화의 회로를 열어주면 경제는 다시 숨을 고르고, 도시는 다시 길을 찾는다. 박람회 무대 위를 걸어 나온 노년의 모델들처럼 강원자치도도 나이의 그림자를 두려워하기보다 그 위에 새로운 윤곽을 덧칠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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