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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칼럼-김선걸 매일경제 논설실장] 30년 너머 펼친 이건희회장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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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9회 작성일 2025-11-06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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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걸 논설실장

김선걸 논설실장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한 인터뷰에서 자사의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타임머신'에 비유한 적이 있다.

'미래를 빨리 볼 수 있게 하는 장치'라고 했다. 한 달 걸릴 일을 GPU가 하루 만에 해치우니 앞날을 현실로 당겨놨다는 취지였다.

그가 지난주 한국에 와서 30년 전을 회고했다. 1996년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에게서 받았던 편지 얘기다.

이 회장은 편지에서 자신의 세 가지 비전을 설명했다고 한다.

첫째로 한국 전역을 초고속 인터넷으로 연결하고 둘째, 비디오게임을 통해 정보기술(IT)을 확산시키고 셋째, 세계 최초 '게임 올림픽'을 개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엔비디아에 협력을 요청했다.
 


무려 30년 전이다. 이 회장이 또렷하게 미래를 내다봤던 사실이 놀랍다.

PC통신을 소재로 한 영화 '접속'이 상영된 것이 1997년이다.

이 회장의 편지도 이메일이 아니라 손편지였다. 그 시대에 게임을 혁신의 매개체로, 거기에 게임 올림픽이라는 국가적 사업(이 회장은 1996년 IOC 위원이 됐다)을 떠올린 아이디어도 인상적이다.

가장 주목되는 건 이 회장의 '실행력'이다. 당시 엔비디아는 창업한 지 3년 된 직원 100명의 벤처기업이었다. 1995년에 NV1이란 '그래픽칩'을 만들었고, 본격적인 GPU는 1999년 내놓은 '지포스 256'이 처음이다. 엔비디아를 '떡잎'도 아닌 '씨앗' 시기에 알아보고 편지를 보냈다는 얘기다. 그야말로 타임머신을 타고 와 현재 엔비디아를 확인한 것 같다.

지금 엔비디아 시가총액은 5조달러(약 7000조원)다. 코스피 전체 시총 2200조원의 3배를 넘는다. 이 기업을 상장 3년 전 찾아낸 것은 우연일까. 혹은 복권 당첨 같은 기적인가. 


그건 아닐 것이다.

기술에 대한 갈급함과 백척간두의 절박감에서 비롯됐을 것이란 생각이다.

1995년 이 회장은 10조원이란 천문학적인 투자 승부수를 던졌다. 당시 삼성전자 매출이 24조원이었으니 매출 42%를 쏟아부은 것이다.

반도체산업 특성상 선제 투자만이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 그러나 투자가 잘못되면 한순간에 망하는 'all or nothing' 게임이다. 삼성이 약진할 때 일본의 NEC, 히타치, 도시바는 물론 미국의 텍사스인스트루먼트 등이 메모리사업에서 사라졌다. 도박과 같은 투자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역사는 이 같은 '벼랑 끝 결단'의 연속이었다. 결단 때마다 고민과 번뇌가 계속됐을 것이다.


결단을 위해 기술에 대한 끊임없는 관찰과 성찰, 그리고 확신하면 곧바로 실행하는 역량이 필요했다.

2013년 5월 워싱턴DC 한 호텔에서 이 회장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건강이 악화돼 직원 두 명이 양쪽에서 부축하고 있었다. 귀를 대야 말을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한국 정부의 IT 혁신에 대해 질문하자 또렷하게 "그 길밖에 없습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말은 느렸지만 모든 답변은 명확하고 단호해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는 미래를 확신하는 사람이었다.

기술을 확신하면 미래를 확신한다. 그 기술이 미래를 바꿀 것이기에. 성공한 기술기업인에게 나타나는 무서운 공통점이다.

젠슨 황은 최근 200조원 규모의 엄청난 투자 계획을 밝혔다. '혁신 기술→대규모 투자→현실 적용'의 순환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 회장의 편지는 기술이라는 타임머신의 폭발력을 돌아보게 한다.

기술의 첨단에서 고민했던 기업인이 냈던 결론이다.

"(기술 혁신) 그 길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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