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칼럼-이진우 매일경제 논설실장] 韓에 ‘기회의 문’이 닫힌 적은 없다…조기대선의 ‘감춰진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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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0회 작성일 2025-05-14 10:13본문
김문수-한덕수 단일화 막장극
국민의힘 존재 의의 의심케 해
이준석 지지 확장 계기 될 수도
뻔한 대선판에 새 관전 포인트
정치판을 흔히 연극 무대에 비유하지만 지난주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둘러싼 단일화 드라마는 그야말로 막장극의 진수를 보여줬다. 관객인 국민들을 극도의 짜증으로 몰아갔다. 초유의 후보 교체 시도가 당원 투표라는 마지막 관문에서 좌절되면서 막을 내렸지만 뒷맛은 씁쓸하고 찝찝하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민의힘의 쓰임새를 놓고 많은 국민이 의문을 갖게 됐다. 심지어는 "차라리 국민의힘이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기권하는 게 낫겠다"는 야유까지 쏟아졌다. 더불어민주당이 아니라 오히려 국민의힘의 오랜 지지자들 입에서 더 크게 터져나왔다.
김문수 후보가 유력 주자로서 선거운동을 벌이는 마당에 기권 운운하는 것은 큰 결례일 것이다. 세계 정치사에서도 유력 정당이 대선 같은 중요한 선거에서 기권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선거 보이콧은 부정선거 의심을 품은 개발도상국 소수 야당이나 하는 것이다.
국민의힘의 기권은 홧김에 하는 공상일 뿐이다. 그럼에도 '차라리 기권하라'는 지지자들의 푸념을 흘려들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까슬까슬한 변수가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의 존재다.
여론조사 지형을 보면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안정적으로 1위를 달리는 가운데 김문수 후보가 그 뒤를 쫓고 있다. 3파전 구도지만 이준석 후보의 지지율은 한 자릿수에 머물러 있다. 이대로라면 소규모 정당인 개혁신당이 선거비용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현행 선거비용 보전제도상 10% 득표 시 절반, 15% 득표 시 전액을 돌려받을 수 있는데, 이 기준을 넘기지 못하고 완주했다간 막대한 재정적 타격을 받게 된다. 그래서 많은 이가 이준석이 결국 보수 후보와 단일화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기권까지는 아니지만 단일화 파동을 겪으며 국민의힘이 입은 깊은 내상이 대선판을 묘하게 틀어놨다. 국민의힘에 염증을 느낀 보수 지지자들이 이준석을 대안으로 삼을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차라리 젊은 이준석 찍겠다"는 이들을 실제로 여럿 봤다.
만약 이런 흐름이 확산돼 이준석 후보가 완주한다면 이번 대선은 보수·진보 재래전을 뛰어넘어 범보수 진영에서 세대교체와 노선 경쟁이 동시에 벌어지는 복합 하이브리드 전쟁이 될 수 있다.
또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든 이준석이 15%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한다면 한국 정치판에는 태풍이 몰아칠 것이다. 그 영향권에는 국민의힘뿐 아니라 민주당도 포함된다. 위협적인 제3지대 탄생, 정치 지형의 근본적 변화가 현실이 될 수 있다. 이미 이준석 후보는 차별화된 논리와 공약으로 틈새를 파고들고 있다. 물론 이준석 후보의 약진을 장담할 수는 없다. 13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도 뚜렷한 상승세는 포착되지 않았다.
한국 유권자들은 보수·진보 두 기둥에 묶인 그네 같다. 그사이에서 오락가락한다. 중도층 스윙보터는 선거 당일엔 한 줌으로 쪼그라든다. 김문수 후보 측의 견제와 단일화 압력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거 하나는 분명하다. 뻔해 보였던 대선 무대에 새로운 관전 포인트가 생겼다는 사실이다.
지난 4월 12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느닷없는 경선 포기 소식이 전해졌을 때 모임에 함께 있었던 지인들의 반응이 인상적이었다. 정치 성향을 불문하고 일제히 호남 출신 경제·통상 전문가 한덕수를 얘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실험카드는 김문수의 뚝심에 막혔다. 이제 이준석 차례다.
한국 정치는 지금, 예측 불가의 3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 기묘한 연극의 끝은 관객인 국민이 곧 매듭짓게 될 것이다.
[이진우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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