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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칼럼-남궁창성 강원도민일보 상무이사 겸 미디어실장] 5공(共)의 설날

작성일 26-01-05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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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친일 김홍집 내각이 개혁을 단행했다. 1895년 을미개혁이다. 태양력 사용, 종두법 시행, 우체국과 소학교 설치, 군제 개편이 골자다. 하지만 국모를 해친 을미사변으로 반일 감정이 극도에 달해 개혁에 대한 저항도 심했다. 몸과 터럭, 피부는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감히 훼손하지 않는 것이 효(孝)의 시작이라는 유교사상이 강고했던 조선에서 단발령(斷髮令)은 반일 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을미개혁으로 태양력이 시행되며 음력 설날이 폐지됐다. 하지만 대다수 백성들은 설을 선호했고 온 가족이 모여 고유 명절을 지켰다. 오랫동안 양력 1월1일 신정(新正)과 음력 1월1일 구정(舊正)이 병존하는 이중과세(二重過歲)가 지속됐다. 음력 설을 부활하자는 민속학계와 유림계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그런 배경에서 ‘민속의 날’이 탄생했다. 제5공화국 전두환 정권은 을미개혁 90년 만인 1985년, 음력 1월1일을 ‘민속의 날’로 지정하는 내무부 훈령을 발표했다. 연휴 없이 하루만 쉬는 날이었다. 이름부터 낯선 반쪽짜리 설 명절에 대한 반감은 오히려 더 커졌다.


전통의 설날을 ‘민속의 날’, ‘민속절’이라고 하니 국민 정서와 동떨어졌던 것이다. “하루짜리 공휴일로 어떻게 전통의 설을 유지할 수 있겠느냐?”는 반대 여론이 거셌다. ‘민속의 날’은 설을 부정하는 날로 낙인이 찍혔다. 결국 노태우 정부는 1989년 음력 1월1일을 설날로 지정하고, 3일 연휴를 결정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민속의 날’은 1988년을 끝으로 3년 만에 사라졌다.


어린 시절 설날이 다가오면 좋았다. 집안은 일가친척과 이웃으로 북적였다. 먹을 것도 푸짐했다. 볼거리 없는 세상에 영화관을 찾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소양·육림·문화·중앙·남부 등 춘천에는 극장이 많았다. 어머니를 졸라 용돈을 받아들고 집을 나서면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동네 형들을 따라 공지천을 건너 극장으로 달려가던 그 소년을 어디가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남궁창성 미디어실장


출처 : 강원도민일보(https://www.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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