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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칼럼-김선걸 매일경제 논설실장] 韓기업은 쿠팡의 '회색지대'가 부럽다

작성일 25-12-17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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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기업 손발 묶은 규제
역외기업인 쿠팡만 키워줘
처벌 외치니 속 시원하지만
이땅의 토종기업만 또 피해
김선걸 논설실장사진 확대
김선걸 논설실장

쿠팡이 최고경영자(CEO)를 미국인으로 교체했다.

문제가 생기면 논쟁의 공간을 '회색지대'로 슬쩍 옮기는 방법. 쿠팡의 일관된 전략이다.

쿠팡은 한국에서 영업하지만 한국의 법과 제도에선 비켜나 있다.

불법이나 부정은 아니다. '영악하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약삭빠르게 한국의 과잉 규제를 역이용한다.

첫째, 쿠팡(모회사 Coupang, Inc.)은 미국 델라웨어주 법인이다. 뉴욕증시(NYSE)에 상장돼 있다. 지배구조부터 미국 기준을 따른다. 김범석 의장은 1주당 의결권 29표를 가지는 '클래스B' 주식이 있다. 지분 8.8%만으로 전체 의결권의 76.7%를 행사한다. 차등의결권은 한국엔 없는 제도다.


쿠팡은 손정의 회장으로부터 투자받은 돈만 30억달러(약 4조5000억원)가 넘는다. 한국 상장사였다면 1주 1의결권인 창업자 지분은 희석돼 경영권이 흔들릴 것이다. 특히 금번 개인정보 유출 같은 악재는 리더십 상실 위기까지 갈 수 있는 문제다. 김 의장이 누리는 '안정적·압도적 의결권'은 한국 기업인에겐 부러울 뿐이다.

쿠팡은 이번 사태 전후로 임원들이 주식을 대량 매각했다. 국내 상장사였으면 금융당국·검찰·청문회 풀세트가 가동됐을 것이다. 감독당국은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계좌 내역·통화 기록·이메일까지 탈탈 털었을 것이다.

반면 현실에서 김 창업자는 지금 소재 파악조차 안된다. 지분이 압도적이니 회사 내부도 흔들리지 않는다. 정치권, 금융당국, 시민단체 외풍에 바람 잘 날 없는 한국 기업인들과 대조적이다.

둘째, 개인정보 유출 피의자는 '중국인 직원'이다. 중국에서 일했다고 한다.


한국 근로기준법의 주 52시간제·연장근로 규제, 해고·전직 제한 관련 규정은 국내 사업장에 대해서만 강한 구속력이 있다. 반면 중국 정보기술(IT) 기업은 996(오전 9시~밤 9시 근무·주 6일)이 기본이다. 쿠팡은 한국의 노동규제와 강성노조를 피해 미국, 중국의 인재를 뽑아 맘껏 신나게 일했다.

경영권을 흔드는 지배구조도, 일을 방해하는 노동규제도 쿠팡은 피했다. 한 국내 기업인은 "거미줄 같은 규제를 칭칭 감고 경영하는 토종 기업과 다르다"고 한탄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심지어 한국 국회는 수년 전 '대형마트 의무휴일제'란 희대의 규제를 만들었다. 자국 기업인 롯데, 이마트, 홈플러스의 발목을 묶고 쿠팡을 키워준 규제다. 자국 기업만 옥죄는 이런 법이 다른 어느 나라에 있나 싶다.

쿠팡은 월간 활성 이용자 수가 3400만명인 국민 플랫폼이 됐다. 개인정보 유출로 전 국민에게 피해를 주고 뒷짐을 지는 모습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단지, 자국 기업의 발목을 잡는 시스템도 지적받아야 할 때다.

한국엔 똑똑한 창업자들이 넘친다. 그러나 창업하는 순간 주 52시간제, 강성노조, 자본규제, 정치권 압박까지 짊어져야 한다.

쿠팡은 한국 규제라는 지뢰밭에 발을 담그지 않았다. 노동규제 등을 해외 관할로 옮겨 영악하게 경쟁했다.

두 손 두 발 묶인 한국 기업과 자유로운 역외 기업의 경쟁은 불공평하다. 쿠팡은 그간 규제를 외쳐대는 정치인들이 얼마나 고마웠을까.

정치인들은 지금도 엄벌을 주겠다고 열을 올린다. 대통령마저 "잘못하면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게 해야"라고 하고 여당에선 국정조사를 예고했다.

그런데 바로 그것이 오늘의 쿠팡을 키우고 한국 기업을 억누른 접근법이다. 그 순간 속 시원할진 모른다. 그러나 국내에 지뢰를 매설할수록 애먼 한국 기업만 사그라든다.

지금은 '쿠팡처럼 차등의결권을 도입하겠다'거나 '인재들이 마음껏 일할 자유를 주겠다'는 제언이 맞는다. 그래야 한국 기업이 산다.

[김선걸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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