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칼럼-이기수 경향신문 편집인 겸 논설주간] ‘검찰짓’ 공수처, 이름 빼고 다 바꿔라
작성일 25-11-05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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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1일 서울 서초구 순직해병 특검 사무실에 직무유기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며 기자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11월 첫날, 오동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채 상병 순직사건 특검에 출두했다. 지난해 8월 소속 부장검사가 국회 위증으로 고발된 사건을 344일이나 대검에 늑장 통보해 수사를 지연시킨 혐의(직무유기)다. 갓 5년째, 그렇잖아도 신생 수사기관은 바람 잘 날 없었다. 수장까지 피의자로 소환된 사진 한컷이 묻는다. 도대체 이 벼랑에 서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가. 뭘 숨기고 있는가.
까질수록, 권력 냄새 진동한다. 김건희가 또 등장한다. 2021년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범 이종호를 변호한 공수처 2부장검사(송창진)가 2023년 채 상병과 김건희 디올백 수수 사건을 수사한다. 이종호가 누군가. 검찰의 도이치 수사 개시 직후 김건희와 수십번 통화하고,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 구명로비 수사선상에도 오른 이다. 그 부장검사가 2024년 이종호와의 연을 국회서 위증하고, ‘윤석열의 (외압설) 통신기록’ 압수수색 영장 청구를 막았다는 거 아닌가. 지난해 2~3월엔 1부장검사(김선규)가 “(4월)총선 전에 채 상병 사건 관련자를 소환하지 말라”고 지시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집권당을 편든 꼴이다. 두 검사는 윤석열 밑에서 일한 직연(職緣)이 있다. 그 ‘친윤 부장’ 위증 수사를 공수처장은 해태했고, 수사 방해에 또 무기력했다. 특검의 칼날 위에 선 오 처장의 수사 방향·수위와 별개로, 드러난 이 만큼으로도, 공수처가 존재 이유로 삼을 ‘독립성’과 ‘성역없음’은 무너졌다.
가뜩이나 낙제점이다. 아니, 유명무실했다. 공수처는 검사·판사와 경무관 이상 경찰 고위직 범죄는 직접 기소할 수 있다. 하나, 5년 간 재판에 넘긴 건 6건 뿐이고, 대법원 판결 난 3건은 무죄(2건)와 선고유예(1건)였다. 청구한 구속영장도 8건 뿐, 내란 사건 2명(윤석열,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을 빼곤 다 기각됐다. 정치인·언론인 무차별 통신조회로 문제 일으키고, 공수처에서 함흥차사 된 실세 사건은 또 한둘인가. 성적 매길 것도 없이 ‘F’다. 왜 이럴까. 사람이 없어서, 수사역량이 달려서, 신생 조직의 어려움일 거라 했었다. 근데, 그것만이 아니었다. 권력자 앞에서 칼이 휘거나 서고, 인권 수사 어기고, 내부 거악(巨惡)에 눈감은 ‘검찰짓’이 공수처에서 저리 벌어질 줄 누가 알았는가.
2023년 신년 시무식이 회자된다. 초대 공수처장 김진욱이 나치에 맞서다 히틀러 정권에 처형당한 독일 목사의 시(선한 능력으로)를 소개하고, 그 찬송가 부르다 꺽꺽 소리내며 울었다. 되는 것 하나 없는 속앓이였을까. 그해 12월에 만난 김진욱은 채 상병 수사를 운명처럼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임기 다 된 공수처장 후임 인사를 왜 안 하는지 답답해했다. 그 불길한 예감은 곧 현실로 닥쳤다.
‘핍박의 벽’ 윤석열이었다. 검찰총장 때 눈엣가시로 보고, 대선후보 때 “3류·폐지” 운운하더니, 대통령 윤석열은 그의 격노설 수사하는 공수처의 인사를 세웠다. 임기 3년인 검사 4명의 연임 신청을 두달째 끌고, 검사 7명 임용은 끝내 도장 찍지 않았다. 2기 공수처장 인사는 여권이 민 김태규(전 방통위 부위원장)로 해보려다 5달 지체했다. 한번도 정원을 채우지 않은 인사로 공수처 힘 빼고 목을 조른 격이다. 내란 수괴 윤석열은 법원이 발부한 공수처 체포영장과 조사도 거부했다. 윤석열 시대, 공수처는 인사·조직·수사가 악순환한 빌 ‘공’자 공수처(空搜處)였다.
공수처 담론은 1996년 시민사회의 ‘부패수사 전담 독립기관’ 창설 제의로 시작됐다. 2001년 부패방지법 제정 후 ‘검찰의 기소독점 폐해를 견제하는 기구’로 논의가 확장됐고, 2016년 홍만표(수임비리)·진경준(스폰서)·우병우(국정농단 방조·황제 조사)·김대현(갑질)의 검란(檢亂)급 패악질에 힘 받아, 2019년 입법 후 2021년 1월 공수처가 출범했다. 검찰을 견제·수사하라 했더니 그 괴물을 닮아버린 것, 역사적 소명과 소금맛을 잃은 수사기관은 또 괴물이 될 수 있다는 것, 선의로만 작동되는 조직은 없다는 것, 공수처 5년이 남긴 산경험이다.
2025년 11월, 공수처는 있어도 없다. 뭘 해도 기대치 낮고, 수사 받아도 쳐다보는 이 없다. 형사사법체계 개편 속에서도 공수처는 곁방 신세다. 누굴 탓할 텐가. 번뜩이는 칼, 서슬퍼런 포청천의 얼굴, 쾌도난마 속도를 잃은 공수처가 자초한 일이다. 그럼 어쩔 건가. 바로세워야 한다. 사람·조직·법·제도 다 예외 없다. 단, 동네북 된 오늘을 반성하고, 진솔히 사과하고, 환골탈태를 다짐해야 한다. 더 갈지 세울지 키울지 가를 분기점도 그것이다. 공수처는 처음 가는 길이다. 식물 공수처, 검찰짓하는 공수처, 이름만 빼고 다 바꿔야 한다.

이기수 편집인·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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