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칼럼-권혁순 강원일보 논설주간] 마지막 인간의 품격 > 임원진 칼럼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임원진 칼럼

[임원칼럼-권혁순 강원일보 논설주간] 마지막 인간의 품격

작성일 25-10-20 10:06

페이지 정보

조회 16회 댓글 0건

본문

어느 시인은 “사람이 죽는 건 두 번”이라 했다. 육신이 멈추는 첫 번째 죽음, 그리고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두 번째 죽음. 요즘 한국 사회는 그 두 번째 죽음을 너무 쉽게 허락하고 있다. 문틈으로 새어 나온 부패한 냄새, 며칠째 켜진 불빛, 이웃의 신고로 발견된 싸늘한 시신. ‘고독사’이다. 지난해 도내 고독사 위험군이 4,208명에 달한다고 한다. 그 숫자는 기록되지만 그 사람의 이름도, 생의 마지막 마음도 기록되지 않는다. 살아 있을 때 이미 세상과의 연결이 끊긴 이들의 죽음은 단순한 개인사가 아니다. 사회가 한 사람을 ‘천천히 버린 과정’의 결과다. ▼강원자치도는 지금 그 과정의 최전선에 서 있다. 인구는 줄고, 마을은 늙고, 지붕 밑의 불빛은 하나씩 꺼지고 있다. 행정은 닿기 어렵고, 이웃은 드물다. ‘예기(禮記)’에는 “사람이 사람을 잊으면 세상은 무너진다(人不相憶 天下崩矣)”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기억하기를 멈췄다. 복지 체계는 여전히 서류와 예산 속에서만 작동하고, 행정은 ‘개인 정보’라는 벽 앞에 멈춰 선다. 그 사이 누군가는 이름 없는 방 안에서 천천히 사라진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던가. 복지의 등불도 정작 비춰야 할 곳을 놓치고 있다. 위기 가구 발굴 시스템이란 이름의 전산망은 결국 데이터일 뿐이다. 생의 온기를 이어주는 건 사람이 사람에게 건네는 목소리다. 도시의 냉랭한 아파트 복도나 산촌의 고요한 집 한 채에서 울리지 않는 전화벨이 바로 우리 사회의 온도다. 고독사 예방은 복지부서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이다. 마을 이장, 택배 기사, 심지어 우편함을 여는 이웃까지.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러나 ‘혼자 죽는 일’만큼은 막아야 한다. 고독사 방지는 죽음을 미루는 일이 아니라, 삶을 되돌리는 일이다. 그 삶이 존중받을 수 있도록 공동체의 숨결을 되살려야 할 때다. 각자의 방에 불빛이 켜져 있고, 그 불빛이 서로를 향해 비추는 사회. 그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마지막 인간의 품격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1,092건 1 페이지
게시물 검색
전화: 02-723-7443   팩스: 02-739-1965
서울특별시 중구 태평로1가 25 한국프레스센터 1311호
Copyright ©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All rights reserved.
PC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