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칼럼-이태규 한국일보 콘텐츠본부장] 똘마니 정치가 위험한 이유
작성일 25-09-23 10:34
페이지 정보
조회 141회 댓글 0건본문
심상치 않은 ‘커크 현상’ 미국서 확산 계속
글로벌 보수화 바람, 한국에도 밀려오는 중
한미관계에 영향 없도록 관리할 필요 커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 시간) 애리조나주 글렌데일 스테이트팜 스타디움에서 열린 보수 성향 활동가 찰리 커크 추모 행사에 참석해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와 얘기하고 있다. 찰리 커크는 지난 10일 유타 밸리 대학교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해 연설 도중 총격으로 사망했으며 그의 죽음은 미국 내 극우 세력의 연대를 결집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AP=뉴시스
미국 보수 청년활동가 찰리 커크의 파장이 심상치 않다. 총격 사망 열 하루 뒤 열린 추모식에 9만이 넘는 인파가 모여 국장에 버금가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할렐루야’가 외쳐진 추모식은 기독교와 보수정치가 결합하는 순간으로 비쳤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JD 밴스 부통령, 각료들과 공화당 지도부는 그를 보수의 순교자로 받들었다. 커크에 대한 추모와 계승은 이제 일시적 현상을 넘어서고 있다. 반이민, 반글로벌리즘의 극우 메시지가 세계에 전파되고 보수우파의 결집도 가속화하는 모습이다.
공화당의 미래 대통령감으로 꼽힌 30대 초반의 커크는 청년보수 바람의 주인공이었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 패배, 트럼프 2기의 탄생 배경에도 그가 있었다. 그런 커크의 죽음은 미국의 정치불신과 이념대립을 다시 한번 드러낸 사건이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를 사회통합이 아닌 보수우파 결집의 동력으로 삼아 정치, 문화와 경제 등 모든 영역으로 이념 전쟁을 확산시키고 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하려는 마가(MAGA) 운동이 새 전환점을 맞은 셈이다. 빅테크 업계를 충격에 빠트린 전문직 비자(H-1B) 발급 수수료의 10만 달러 증액도 사실 이런 커크 현상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생전의 커크는 안전한 거리, 전문직 비자의 폐지, 그리고 이를 통한 더 많은 미국인 가족을 소망했다.
미국에서 보수우파의 결집과 청년보수 확산은 더 뚜렷해지고 있다. 커크가 고교와 대학에 조직한 보수단체 터닝포인트USA는 2,100개에서 사망 이후 무려 6만2,000개로 늘어났다. ‘결혼하고, 자녀를 낳고, 유산을 쌓고, 가치를 물려주고 영원을 추구하고, 진정한 기쁨을 찾으라’는 커크의 소신은 보수우파의 슬로건이 되어, 워싱턴의 헤리티지재단 건물 외벽에 걸렸다.
커크 현상의 깃발은 세계 도처에 나부끼고 있다. 2011년 ‘월가를 점령하라’는 구호를 내건 반세계화, 반금융자본에 대한 시위는 진보적 색채가 강했다. 당시 대의민주주의가 1% 특권층을 위한 것으로 매도되면서 유럽에선 젊은 우파가 돌풍을 일으켰고, 그에 앞서 아랍권에선 재스민 혁명 속에 독재권력이 줄줄이 와해됐다. 커크 현상의 우파 결집은 성향이 반대이지만 기존 질서에 대한 불신과 사회불만의 조직화인 점에서 유사한 측면이 있다. 특히 유럽에선 영국의 이민정책 철회, 국가정체성 수호를 주장하는 잇단 시위처럼 이민자, 난민 문제를 극우로 확장시키고 있다.
문명사적 전환은 아니지만 우리의 정치지형에도 이 같은 변화가 밀려오는 것은 명백해 보인다. 미국 보수우파의 아시아 전략과도 맞물려 정치적 갈등을 가중시킬 우려 또한 충분하다. 이미 목소리가 커진 부정선거론이나 반공 연장선의 혐중은 트럼프주의가 한국에 상륙한 결과다. 정치권은 이를 차용해 극우의 결집력을 높였고, 전 정권에선 불법 계엄 이유로도 등장시켰다.
이번 커크 현상이 정치적 재구성으로 이어질지, 유행으로 끝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잔뜩 화가 나 있고 주머니도 비어 있는 대중을 끌어내는 지렛대가 될 가능성은 높다. 한국 극우세력의 대미 네트워크가 강화되는 것도 우려할 현상이다. 한미 정상회담 3시간 전 트럼프가 소셜미디어에 한국에서의 ‘숙청’ ‘혁명’을 언급해 한국 정부를 긴장시킨 것도 이런 맥락이다. 트럼프가 이번 추모사에서 “서울에선 군중이 모여 성조기를 흔들며 ‘우리는 찰리 커크를 지지한다’고 외쳤다”며 한국을 꺼낸 것이 예사롭지 않은 까닭이다. 당장 미국 보수우파의 관심을 끌기 위해 워싱턴에 달려가 반중 시위를 벌이는 극우 유튜버, 서울 명동과 대림동의 반중 시위대가 힘을 받을 수밖에 없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