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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선 칼럼] 무라야마 담화는 조강지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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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5,703회 작성일 2013-05-07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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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라야마 담화라고 합니다. 국적은 일본이고 패전 50주년이던 1995년 8월 15일이 내 생일입니다. 목적이 ‘사죄용’이어서 축복받고 태어나진 못했습니다. 그나마 1955년 이후 줄곧 일본을 지배해온 자민당의 단독 정권이었다면 세상 구경도 못했을 것입니다. 지금도 이웃에게 잘못한 게 없다고 우기는 자민당은 그때도 나의 출생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으니까요. 내가 태어난 때는 마침 자민당-사회당-사키가케라는 3당 연립정권이었고 총리는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사회당 위원장이었습니다. 자민당과 생각이 달랐던 그가 틈새를 노려 나의 생부(生父)가 된 연유입니다.



나의 핵심은 두 대목입니다.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의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줬다”는 걸 인정하고 “의심할 여지없는 이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여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한다”고 머리를 숙인 것입니다. 덕분에 ‘일본의 사과’ 하면 나를 떠올리게 됐습니다.



묘한 일은 내가 태어난 후에 벌어졌습니다. 나에게 눈을 흘겼던 사람들이 오히려 나를 더 많이 써먹기 시작한 겁니다. 이웃에서 우리 집안의 잘못을 따질 때마다 “우리는 무라야마 담화를 낳았다”고만 하면 그냥저냥 넘어가자 천덕꾸러기도 쓸모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된 거죠. 그때부터 나는 살기는 좀 사는데, 도덕적으로는 빈한(貧寒)한 집안의 조강지처(糟糠之妻)가 됐습니다.



그런 내가 요즘 소박맞을 처지가 됐습니다. 아베 총리라는 분이 “잘못한 일도 없는데 왜 창피하게 이웃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다녔느냐”며 출생부터 문제 삼아 나를 구박하고 있습니다. 18년이나 뼛골 빠지게 일한 나를 내쫓고 2년 후엔 ‘아베 담화’를 새 부인으로 들이겠다고 합니다. 만나본 적은 없지만 필경 고개를 바짝 쳐들고 이웃을 우습게 아는 까칠한 여자일 것입니다.



쫓겨날 땐 쫓겨나더라도 아베 총리에게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내 목숨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일본이라는 집안의 체면과 장래가 걱정돼서입니다. 수백 년, 수천 년 전의 일도 아닌데 침략인지 아닌지를 꼭 훈장어른들에게 물어봐야 압니까. 한때 집안을 책임졌던 어른이 약속한 말을 자기 맘에 안 든다고 함부로 짓밟아도 됩니까. 동네에서 인기가 조금 높아졌다고 다른 동네 사람들 욕보인 사실을 아니라고 우길 수 있나요. 남에게 폐 끼치는 걸 그렇게 싫어하는 가풍을 갖고 있으면서 ‘폐’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큰 잘못을 저지르고도 스스로에게는 어째서 그리도 관대하십니까.



부질없는 앙탈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내가 쫓겨나면 내 뿌리에 달린 ‘김대중-오부치의 21세기 파트너십 공동선언’(1998년)과 전후 60년에 발표한 ‘고이즈미 담화’(2005년)도 찬밥 신세가 되겠지요. 전후 70년이자 한일협정 50주년이 되는 2015년, 사이좋게 한바탕 놀아보자던 동네잔치도 파투날 겁니다. 비슷한 경위로 태어난 나의 자매, 미야자와 담화와 고노 담화도 한꺼번에 쫓겨날 게 틀림없고. 그러고서 집안사람들이 얼씨구나 하고 군 위안부 강제연행 부정하고 교과서는 내키는 대로 쓰면서 야스쿠니로, 독도로, 헌법 개정으로, 할 말하는 나라로 달려가겠다고 하면…. 생각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흉 하나 더 보자면 나를 그렇게 싫어하는 아베 총리가 이번에도 내 치마폭 뒤에 숨었다는 사실을 아세요. 그는 “침략의 정의는 확실치 않다”고 했다가 손가락질을 당하자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는 인식에 아베 내각은 역대 내각과 같은 입장”이라고 피해 갔습니다. 무라야마 담화 속의 ‘아시아의 여러 나라’ ‘다대한 손해와 고통’이라는 표현과 글자 하나 안 틀리지요? 통하지도 않을 ‘고도모 다마시(어린애 속이기)’인데도 우리만 정색하고 얘기합니다. 피해 당사자의 말에는 “굴복하지 않겠다”고 큰소리 땅땅 치다가 우리보다 힘이 센 먼 이웃(미국)이 웅성거리니까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 것도 창피합니다.



제 운명요? 나도 모릅니다. 다만 나를 부정하는 건 일본의 큰 실수라는 건 압니다. 워싱턴포스트가 아베 총리의 역사인식을 ‘자기 파괴적 수정주의’라고 했는데 ‘자기 파괴’가 아니라 ‘일본 파괴’ 아닌가요. 나도 내가 필요 없는 세상을 꿈꿉니다. 그러나 나는 일본이 나라다운 나라, 염치를 아는 나라, 균형감각을 가진 나라로 가는 길목에서 한때 꼭 필요했던 존재라는 평가 정도는 받고 무대에서 내려오고 싶습니다. 그게 과욕입니까.



우리 집안이 나를 버리려는데 이웃이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한국도 나의 출생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으니 나를 소박 놓으면 두 집안 사이가 안 좋아질 것이라고 계속해서 꾸짖어 주길 바랍니다. 겨우 살아남는다 해도 나는 이미 조강지처로서의 권위를 잃어버렸습니다. 살아도 죽은 목숨, 그게 제일 슬픕니다.



심규선 논설위원실장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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