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방송 어문담당 간부 세미나 > 포럼 질의응답 전문

본문 바로가기
회원가입    로그인    회원사 가입      

포럼 질의응답 전문

신문방송 어문담당 간부 세미나

페이지 정보

댓글 0건 조회 1,147회 작성일 2016-06-03 23:38

본문

신문·방송 어문담당 간부 세미나











▣날짜 : 2016년 6월 2일-3일

▣장소 : 한국프레스센터 매화홀



<세미나 참석자>



참석자 직 책

황호택 편집인협회 회장·동아일보 논설주간

이승훈 한국어문기자협회장·동아일보 어문연구팀 기자

홍성호 한국경제 기사심사부장

김슬옹 인하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

정복수 아시아투데이 교열부장

김의태 쵸이스경제 편집인

이용화 한국어문언론인협회 부회장·전 동아일보

이윤미 국립국어원 공공언어과 학예연구사

최기호 전 울란바타르대학교 총장

김하수 전 연세대학교 교수

유애리 KBS 아나운서국장

석부송 문화일보 교열팀 기자

박상렬 서울신문 어문팀 부장

김의현 ㈜글지기(조선일보) 전문위원

이정근 중앙일보 어문연구소 대표

조성우 중앙일보 부장

김광섭 한국경제 기사심사부 2팀장

최옥봉 경남신문 교열부장

김세중 미디어언어연구소 자문위원

김석기 편집인협회 사무총장

양지운 편집인협회 차장

주윤정 편집인협회 과장

우제근 한국어문기자협회 사무국장

김미정 한국어문기자협회 부장


참석자 직 책

황호택 편집인협회 회장·동아일보 논설주간

이승훈 한국어문기자협회장·동아일보 어문연구팀 기자

홍성호 한국경제 기사심사부장

김슬옹 인하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

정복수 아시아투데이 교열부장

김의태 쵸이스경제 편집인

이용화 한국어문언론인협회 부회장·전 동아일보

이윤미 국립국어원 공공언어과 학예연구사

최기호 전 울란바타르대학교 총장

김하수 전 연세대학교 교수

유애리 KBS 아나운서국장

석부송 문화일보 교열팀 기자

박상렬 서울신문 어문팀 부장

김의현 ㈜글지기(조선일보) 전문위원

이정근 중앙일보 어문연구소 대표

조성우 중앙일보 부장

김광섭 한국경제 기사심사부 2팀장

최옥봉 경남신문 교열부장

김세중 미디어언어연구소 자문위원

김석기 편집인협회 사무총장

양지운 편집인협회 차장

주윤정 편집인협회 과장

우제근 한국어문기자협회 사무국장

김미정 한국어문기자협회 부장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 정신과 미디어 소통 정신(주제발표1)

-영어 남용 문제를 중심으로

김슬옹 인하대학교 교수


1. 훈민정음 반포 570돌에 생각해 보는 기본적인 문자 소통 문제


   1-1 문제 설정

올해는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 정신(이하 정음 정신 또는 정음관이라 부름)이 상세하게 담겨 있는 <훈민정음>(이하 해례본2)이라 부름) 반포 570돌이다.3) 마침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해례본 원본은 2015년에 복간되어 120여 언론에 보도될 만큼 크게 주목받은 바 있다. 이런 해례본의 위상만큼 한글에 대한 평가와 위상이 높아진 것도 분명하다. 마침 최근 한강 작가의 맨부커상 수상과 더불어 영국 BBC가 한글과 한글을 창제한 세종을 극찬함으로써 그 위상을 모두가 실감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한글의 위상이나, 또는 세종의 정음관의 실현에 대한 부정적 현실 또한 만만치 않다. 각종 언론 매체의 영어 남용은 빈도가 높아지고 있고, 대학가에서는 점차 한글을 학문의 도구로 인정하지 않는 쪽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오늘 연찬회는 언론 관련 자리이지만 공공 문서와 언론 매체에서의 영어 남용과 대학가에서 한글을 학문 도구로 인정하지 않는 흐름이 같은 흐름이라 보기에 같이 논의하고자 한다. 사실 [표1]에서와 같이 공공 매체에서의 영어 남용 문제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이에 비해 언론에서의 영어 남용은 섹션 제목(opinion, Brunch Time)이나 영어 약자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나 언론의 계도적 기능으로 볼 때 이조차도 매우 중요한 문제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이 오늘 발표의 핵심 동기이다.

비상벨을 알리는 글귀까지 ‘Emergency Bell’로 표기하는 공공 매체에서의 영어 남용 문제가 일상화되다 보니 이제는 이런 문제에 대한 문제 제기가 그야말로 ‘한글 순혈주의’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세종의 한글 창제 정신은 500년 이상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았고, 지금도 제대로 계승되고 있지 않다. 조선 시대 때는 정약용, 박지원, 박제가와 같은 18, 19세기 실학자들조차 아예 한글 사용을 거부하였고, 1894년 때 와서야 고종의 국문 칙령으로 한글(국문)을 주류 문자로 선언하였으나 형식적인 선언에 그친 채 일제 강점기를 맞이하였다. 해방 후에는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 2005년 국어기본법 제정 등으로 공공 매체에서의 한글 사용이 제대로 자리를 잡게 되었지만, 이제는 영어 섞어 쓰기라는 새로운 난제에 부딪치게 되었다. 

이런 언어 문제에 대해 ‘한글 순혈주의’라는 냉소적인 시각에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세종의 한글 창제 정신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오늘 발표의 핵심 요지로 세종의 한글 창제 정신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문자의 대중성 : 쉬운 문자, 쉬운 언어로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자. 

2) 문자의 평등성 : 그 누구도 문자로 인해 불평등을 당해서는 안 된다.

3) 문자의 맥락성 : 언어와 문자는 맥락이 중요하다.

이러한 세 가지는 세종의 문자 창제 정신이기도 하지만 언어와 문자가 지향해야 할 보편 가치이기도 하다. 세종이 위대한 것은 이러한 보편 가치를 제대로 실천할 수 있는 문자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지구상의 다른 문자들은 이런 보편 가치를 제대로 실천하기에는 근본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 국어기본법에서 규정하는 한글 전용 원칙4)은 한글 순혈주의 관점에서 볼 것이 아니라 이러한 지식과 정보 대중화 관점, 언어는 인권이라는 인권 관점, 언어와 문자는 맥락에 따라 사용한다는 맥락주의 언어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이러한 세 가지 정신은 모든 언어 사용에서 지켜야 할 준칙이기도 하지만, 대중적 언어 사용이 중요한 미디어에서 더욱 중요한 준칙이 되어야 한다.

   1-2 영어 남용의 범위와 갈래

영어 남용은 국어기본법을 위반하였거나, 특별한 이유 없이 지나치게 사용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갈래가 있다.


 (1) company, economy, Brunch Time. inside

 (2) Culture 문화

 (3) 북한 선박의 NLL 월선과 남쪽 군의 경고 사격으로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4) 플로팅도크, 에어포켓, 리프트백, 챔버_세월호 관련 방송, 신문 보도 용어에서


(1)은 아무 정보 없이 영어를 그대로 노출한 경우이고 

(2)는 병기는 했지만 영어를 더 크게 표기한 경우이며 

(3)은 ‘NLL(북방한계선), 북방한계선(NLL)’ 약자를 병기 없이 쓴 경우이다.

(4)는 방송이나 신문에서 특별한 설명 없이 쓴 전문 외국어 또는 외래어이다.


필자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거의 모든 신문이 정도 차만 있을 뿐 섹션 제목 등에서 (1), (2)와 같은 남용을 하고 있다. (3)의 경우는 약자마다 양상이 다르지만, 역시 거의 모든 신문에서 전문어 중심으로 자주 사용되는 방식이다. (4)의 경우는 미처 순화어가 마련되지 않은 경우이기도 하지만, 긴급한 재난 방송에서 정확한 보충 설명이 없다면 일반인들은 뜻을 전혀 알 수 없는 어휘들이다.


   1-3 발표의 제한점

사실 신문이든 방송이든 기본적인 쌍방향 소통은 아니므로 ‘소통’의 의미를 폭넓게 잡고자 한다. 소통 자체를 다양한 소통으로 설정하거나 나눌 수 있다. 대화와 같은 쌍방향 소통만 소통이 아니라  방송과 신문, 강연, 책과 같이 뭔가를 일방적으로 전달하지만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는 소통도 소통으로 포함하고자 한다. 

공유 소통이라고 하더라도 매체의 특성상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므로 독자에 대한 배려, 언론사의 특정 관점에 의한 전달이 아닌 왜곡과 노골적으로 편파적인 전달이라면 그것은 반소통으로, 소통으로 볼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언론의 소통 문제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언론사에서는 이른바 옴부즈맨 제도, 자체 비평 프로그램 마련으로 노력을 하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한 편이다. 쌍방향 소통을 어느 정도 가능하게 하는 인터넷 댓글 달기도 독자나 시청자 입장에서는 턱없이 부족하거나 한계가 있다. 

세종은 세 가지 측면에서 소통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했다. 첫째, 공식 회의나 공적 담화에서 적극적인 쌍방향 소통인 대화와 토론을 크게 강화했고 부추겼다. 둘째,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왜 소통이 필요한가에 대한 근본적인, 맥락적인 의미를 추구했다.5) 셋째, 집현전 등의 기구 확장을 통해 소통 주체의 수와 역량을 질적으로 키웠다. 넷째, 책 출판과 인쇄술을 개선하여 소통 매체를 늘리는데 힘을 쏟았다. 다섯째 소통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새로운 문자 혁명을 했다. 소통의 근본 문제 해결은 신분제 타파가 우선이겠지만, 당대의 지형으로 볼 때 훈민정음 창제는 신분제 타파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따라서 세종의 소통 정신에 따른 언론의 소통 문제를 제대로 논의하려면 언론의 정치 담론을 또 다른 방식으로 논의해야 하겠기에 여기서는 줄인다.



2.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 정신 : 문자의 대중성과 평등성


훈민정음 창제 정신을 문자의 대중성과 평등성으로 보는 것은 지식과 정보 대중화 관점에서 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창제 정신은 세종 친제설에 그 진정성이 담겨 있으며, 공동 창제설은 역사 사실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해석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도 대다수 국민들은 공동 창제설로 알고 있다.6) 2013년 567돌 한글날을 맞아 문화체육관광부가 국어단체연합 국어문화원(원장: 남영신)과 함께 학생 및 성인 2,000명(초·중·고등학생 500명, 대학(원)생 500명, 직장인·주부 1,000명)을 대상으로 ‘한글, 한글날’에 대한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놀랍게도 80% 이상이 공동 창제설로 알고 있었다. 한글에 담긴 역사성과 진정성을 제대로 모르고 있음을 의미한다.

다음 세 부류 인물들의 공통점을 확인하면, 이러한 공동 창제설의 허구성을 확인할 수 있다.

(1) 최만리 신석조 김문 정창손 하위지 송처검 조근

(2) 정인지 최항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이개 이선로 강희안

(3) 박지원(1737~1805), 박제가(1750~1815), 정약용(1762~1836)


(1)은 1444년 2월 20일자 훈민정음 사용 반대 상소를 올린 이들이고 (2)는 훈민정음 해례본 공동 저자들이며 (3)은 18, 19세기 대표적인 실학자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한글을 학문이나 공적 도구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훈민정음 공동 창제설의 대상이 되는 훈민정음 해례본 저자들을 주목해 보면 공동 창제설의 허구성을 알 수 있다. 공동 창제자라면 한글을 어떤 식으로든 사용을 했어야 하는데 실제 그렇지 않았다. 결국 조선의 사대부들은 조선이 망할 때까지 한글을 지식이나 학문, 공적 도구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는 지식과 정보를 보급하거나 나누려는 세종의 한글 창제 정신을 제대로 따르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물론 그 당시의 동아시아 보편 문자, 거대 문명과 선진 학문의 뿌리인 한자, 한문에 대한 존중과 한글 거부를 지금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한문에 담긴 정보와 지식의 가치도 매우 소중하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한글 사용 회피는 지식과 정보 대중화를 가로막았다는 점이고, 그로 인한 대가가 참혹하다는 것이다. 

일본은 10세기 무렵부터 가나 문자를 한문 지식을 풀어 쓰는 도구로 적극 활용하였다. 이는 가나 문자에 한자와 대등한 자격을 부여했음을 의미한다. 그렇게 실용화한 지식을 침략의 도구로 사용한 일본을 지식의 실용화, 대중화를 제대로 하지 않은 우리가 막아내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임진왜란·병자호란 같은 참혹한 피해를 입었어도 지식과 문자에 대한 인식은 바뀌지 않았고, 오히려 실학자들은 한글을 부분적으로 사용한 전 시대 지식인들보다 더 퇴보하였던 것이다. 일제 강점기라는 더 큰 시련이 이러한 지식인들만의 잘못은 아니겠지만 지식인들의 직무유기였던 것만은 분명하다. 일본이 가나 문자를 만들어 한문 지식을 자기식대로 풀어 지식을 실용화하는 동안 우리는 조선이 망할 때까지 한문이라는 번역생활을 해왔다.7) 

세종은 무려 훈민정음 창제 17년 전부터 이런 문제를 가지고 고민했고, 그 과정이 고스란히 세종실록에 실려 있으므로 세종 서문의 진정성은 그런 기록으로 충분히 입증된다. 그 기록을 보기 좋게 표로 보이면 다음과 같다.


[표3] 훈민정음 창제하기까지의 문자에 대한 세종의 생각 모음 

쪾1426년(세종 8) : 임금이 말하기를, “사람의 법은 함께 써야 하는 것인데, 지금은 옛날과 같지 않기 때문에 부득이 가까운 법률문을 준용하여 시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법률문이란 것이 한문과 이두로 복잡하게 쓰여 있어서 비록 문신이라 하더라도 모두 알기가 어려운데, 하물며 법률을 배우는 생도에게는 얼마나 어렵겠는가. 이제부터는 문신 중에 정통한 자를 가려서 따로 훈도관을 두어 <당률소의(唐律疏義)>·<지정조격(至正條格)>·<대명률(大明律)> 등의 글을 강습시키는 것이 옳을 것이니, 이조로 하여금 정부에 의논하도록 하라”하였다. (上曰 : “人法竝用, 今不如古, 故不得已以律文比附施行, 而律文雜以漢吏之文, 雖文臣, 難以悉知, 況律學生徒乎? 自今擇文臣之精通者, 別置訓導官, 如《唐律疏義》、《至正條格》、《大明律》等書, 講習可也? 其令吏曹議諸政府?”) <출처 : 세종실록 1426.10.27>


쪾1428년(세종 10) : 임금이 직제학(直提學) 설순(循)에게 이르기를, “이제 세상 풍속이 몹시 나빠져 심지어는 자식이 자식 노릇을 하지 않는 자도 있으니, <효행록>을 간행하여 이로써 어리석은 백성들을 깨우쳐주려고 생각한다. 이것은 비록 폐단을 구제하는 급무가 아니지만, 그러나 실로 교화하는데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니, 전에 편찬한 24인의 효행에다가 또 20여 인의 효행을 더 넣고, 고려 시대 및 삼국 시대의 사람으로 효행이 특이한 자도 또한 모두 수집하여 한 책을 편찬해 이루도록 하되, 집현전에서 이를 주관하라.” (至是, 上謂直提學循曰 : “今俗薄惡, 至有子不子者, 思欲刊行《孝行錄》, 以曉愚民? 此雖非救弊之急務, 然實是敎化所先, 宜因舊撰二十四孝, 又增二十餘孝? 前朝及三國時 孝行特異者, 亦皆()〔〕集, 撰成一書, 集賢殿其主之?) <출처 : 세종실록 1428.10.3>


쪾1432년(세종 14) : 비록 세상 이치를 아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법률문에 의거하여 판단을 내린 뒤에야 죄의 경중을 알게 되거늘, 하물며 어리석은 백성이야 어찌 저지른 죄가 크고 작음을 알아서 스스로 고치겠는가. 비록 백성들로 하여금 다 법률문을 알게 할 수는 없을지나, 따로 큰 죄의 조항만이라도 뽑아 적고, 이를 이두문으로 번역하여서 민간에게 반포하여 보여, 어리석은 지아비와 지어미들로 하여금 범죄를 피할 줄 알게 함이 어떻겠는가. (上謂左右曰 : “雖識理之人, 必待按律, 然後知罪之輕重, 況愚民何知所犯之大小, 而自改乎? 雖不能使民盡知律文, 別抄大罪條科, 譯以吏文, 頒示民間, 使愚夫愚婦知避何如?”) <출처 : 세종실록 1432.11.7>

쪾1434년(세종 16) : 오히려 어리석은 백성들이 아직도 쉽게 깨달아 알지 못할까 염려하여, 그림을 붙이고 이름하여 ‘<삼강행실(三綱行實)>’이라 하고, 인쇄하여 널리 펴서 거리에서 노는 아이들과 골목 안 여염집 부녀들까지도 모두 쉽게 알기를 바라노니, 펴 보고 읽는 가운데에 느껴 깨달음이 있게 되면, 인도하여 도와주고 열어 지도하는 방법에 있어서 도움됨이 조금이나마 없지 않을 것이다. 다만 백성들이 문자를 알지 못하여 책을 비록 나누어주었을지라도, 남이 가르쳐주지 아니하면 역시 어찌 그 뜻을 알아서 감동하고 착한 마음을 일으킬 수 있으리오. 내가 <주례(周禮)>를 보니, ‘외사(外史, 벼슬이름) 는 책 이름을 사방에 펴 알리는 일을 주관하여 사방의 사람들로 하여금 책의 글자를 알게 하고 책을 능히 읽을 수 있게 한다’ 하였으므로, 이제 이것을 만들어 서울과 외방에 힘써 회유(誨諭)의 방술[術]을 다하노라 (尙慮愚夫愚婦未易通曉, 付以圖形, 名曰《三綱行實》, 廣布? 庶幾街童巷婦, 皆得易知, 披閱諷誦之間, 有所感發, 則其於誘掖開導之方, 不無小補? 第以民庶不識文字, 書雖頒降, 人不訓示, 則又安能知其義而興起乎? 予觀《周禮》, 外史掌達書名于四方, 使四方知書之文字, 得能讀之? 今可(做)〔倣〕此, 令中外務盡誨諭之術,) <출처 : 세종실록 1434.4.27>


쪾1442년(세종 24) : 경상도와 전라도 관찰사에게 교지를 내리기를, “홍무(洪武) 13년 9월에 왜구가 떼를 지어 육지로 올라와 우리의 경계를 침략하였을 때에, 우리 태조께서 군대를 정비하여 이끌고서 바로 운봉(雲峯)에 이르러 한 번에 소탕하였으니, 그 훌륭한 공과 위대한 업적은 후세에까지 전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때의 군마의 수효와 적을 제어한 방책과 접전한 수와 적을 함락시킨 광경 등을 반드시 본 사람이 있을 것이니, 경은 도내 여러 고을에 흩어져 살고 있는 늙은이들에게 널리 다니며 방문하여 상세히 기록하여 아뢰라”하였다. 이때에 임금이 바야흐로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짓고자 하여 이러한 전지를 내린 것이었다. (傳旨慶尙、全羅道觀察使 : 洪武十三年庚申九月, 倭寇成群下陸, 侵掠其界? 我太祖整率部伍, 直到雲峯, 一擧掃除, 神功偉烈, 不可不傳於後世也? 其軍馬之數、制敵之策、接戰次數、陷敵施爲, 必有及見之人, 卿於道內諸郡散居故老之人, 廣行訪問, 詳書以啓? 時上方欲撰《龍飛御天歌》, 故乃下此傳旨?) 

<출처 : 세종실록 1442.3.1>


·1443년(세종 25) : 이달에 임금께서 친히 언문 스물여덟 자를 만들었다. 이 글자는 고전을 모방한 것이로되, 쪼개면 초성ㆍ중성ㆍ종성이 되지만, 이 셋을 합쳐야 글자(음절)가 이루어진다. 무릇 중국 한자나 우리나라 말이나 모두 능히 쓸 수 있으니, 글자가 비록 간결하지만 요리조리 끝없이 바꾸어 쓸 수 있고, 이를 <훈민정음>이라 일컫는 (是月, 上親制諺文二十八字, 其字倣古篆, 分爲初中終聲, 合之然後乃成字, 凡于文字及本國俚語, 皆可得而書, 字雖簡要, 轉換無窮, 是謂《訓民正音》? 世宗莊憲大王實錄卷第一百二終) <출처 : 세종실록 1443.12.30>

·1444년(세종 26) : 내(세종)가 만일 언문으로 <삼강행실>을 번역하여 민간에 반포하면 어리석은 남녀가 모두 쉽게 깨달아서 충신·효자·열녀가 반드시 무리로 나올 것이다. (“予若以諺文譯《三綱行實》, 頒諸民間, 則愚夫愚婦, 皆得易曉, 忠臣孝子烈女, 必輩出矣?”) <출처 : 세종실록 1444.2.20>


첫 번째 1426년 기록은 훈민정음 창제 17년 전의 기록이고, 두 번째 1432년 기록은 창제 11년 전 기록이다. 이미 17년 전부터 세종은 하층민과의 소통 문제에서 이두문의 효율성 문제를 고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세종은 처음에는 새로운 문자를 만들기보다는 한자보다 상대적으로 쉽다고 생각한 이두를 통해 백성 교화 문제를 해결하려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두 또한 한자라는 문자 자체의 한계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이므로 쉽게 포기하고 아예 새로운 문자를 구상하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세종은 한자가 서당에 갈 수조차 없는 많은 하층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임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 더불어 한글 창제 대략 두 달쯤 뒤에 최만리 외 6인이 올린 갑자상소문을 보면 창제 핵심 동기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다. 최만리와의 논쟁 과정에서 세종이 정창손에게 한 말인 “내가 만일 언문으로 <삼강행실>을 번역하여 민간에 반포하면 어리석은 남녀가 모두 쉽게 깨달아서 충신·효자·열녀가 반드시 무리로 나올 것이다(세종실록 103권, 세종 26년 2월 20일자, 번역은 온라인 

<조선왕조실록> 참조)”라고 했는데 여기에도 세종의 하층민과의 소통, 교화 문제가 중요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한 진정성은 최만리 외 6인 상소문에서도 다음과 같이 나온다.


전하께서 말씀하시길 “사형 집행에 대한 법 판결문을 이두문자로 쓴다면, 글 뜻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백성이 한 글자의 착오로도 원통함을 당할 수도 있으나, 이제 그 말을 언문으로 직접 써서 읽어 듣게 하면, 비록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일지라도 모두 다 쉽게 알아들어서 억울함을 품을 자가 없을 것이다”라고 하오나 예로부터 중국은 말과 글이 같아도 죄인을 심문하거나 심의를 해주는 사이에 억울하게 원한을 품는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가령 우리나라로 말하더라도 옥에 갇혀 있는 죄수로서 이두를 아는 자가 직접 공술문을 읽고서 그것이 거짓인 줄을 알면서도 매를 견디지 못하여 거짓말로 자복하는 자가 많사옵니다. 이런 경우는 공술문의 뜻을 알지 못해서 억울한 죄를 뒤집어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백하게 알 수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비록 언문을 쓴다 할지라도 이와 다를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여기에서 범죄 사건을 공평히 처결하고 못하는 것은 법을 맡은 관리가 어떤가에 달려 있으며, 말과 글이 같고 같지 않은데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언문을 사용해야 처결 문건을 공평하게 할 수 있다는 데 대해서는 신 등은 그것이 옳다고 보지 않사옵니다. (若曰如刑殺獄辭, 以吏讀文字書之, 則不知文理之愚民, 一字之差, 容或致. 今以諺文直書其言, 讀使聽之, 則雖至愚之人, 悉皆易曉而無抱屈者, 然自古中國言與文同, 獄訟之間, 枉甚多. 借以我國言之, 獄囚之解吏讀者, 親讀招辭, 知其誣而不勝楚, 多有枉服者, 是非不知招辭之文意而被也明矣. 若然則雖用諺文, 何異於此? 是知刑獄之平不平, 在於獄吏之如何, 而不在於言與文之同不同也. 欲以諺文而平獄辭, 臣等未見其可也.)-<세종실록> 103권, 세종 26년 2월 20일자


갑자상소의 이 기록은 <세종실록>의 다른 사건 기사에는 없는 기록이라 더욱 큰 의미를 갖는다. 일부에서는 한글이 한자음을 적기 위해 창제되었다고 주장하지만, 한자음 적기보다 더 중요한 창제 동기와 목적이 있음이 이 기록을 통해 드러난다. 하층민과의 소통 문제가 매우 중요한 창제 동기라는 점이다. 그래서 이 내용은 세종 서문에도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3. 세종의 정음 문자관 : 맥락주의


문자가 문자 자체에 뜻이 담기는 것이 아니라 맥락에 의해 뜻이 담긴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거기에 따른 음운 문자를 발전시켜 온 것은 인류 지적 문명의 놀라운 진화였다. 낱말 글자인 한자나 자모 글자인 로마자나 한글은 정도 차이만 있을 뿐 맥락에 의해 어휘적 의미를 담는다. 다만 한자는 하나의 글자(문자)가 명시적이고 가시적인 어휘적 의미를 담고, 자모 문자는 여러 자모가 결합하여 그런 의미를 담는 것만이 다를 뿐이다. 이러한 언어와 문자의 기본 상식을 과학적인 연구 방법으로 체계화한 것이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1916)이다. 그러나 이보다 470년 앞서 맥락주의 언어관에 의해 새 문자를 창제하고 자세한 해설을 담은 것이 세종의 훈민정음 해례본(1446)이다. 

한자나 영문자를 선호하는 것은 의미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문자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이나 이데올로기 때문이다. 의미 때문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한자의 선행 지식에 의한 편의주의 발상 때문에 그런 것이다. 우리가 ‘치매’의 뜻을 ‘癡’라는 한자 없이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언어의 맥락성 때문이다.8) 이러한 언어의 맥락성을 부정하면 우리는 끊임없이 특정 어휘의 의미를 특정 의미만으로 고정하거나 환원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세종은 이러한 맥락주의 언어관을 정인지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1) 學書者患其旨趣之難曉 : 한문을 배우는 이는 그 뜻을 깨닫기가 어려움을 걱정하다.

(2) 以是解書, 可以知其義 : 이 글자(언문, 한글)로써 한문 글을 해석하면 그 뜻을 알 수 있다.(정인지 서)


한자와 한문이 매우 훌륭한 글임은 분명하지만, 매우 어려우니 그러한 글로 적힌 <사서삼경> 같은 문서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자모 문자인 한글로 그런 경전을 풀면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 걸 실천한 성리학자가 퇴계 이황이다. 이황은 <논어집주>에서 한글로 성리학을 풀어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흔히 한글을 적용한 최초의 문헌인 <용비어천가>가 국한문 혼용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로 이런 논리를 반박하곤 한다. 그러나 <용비어천가>는 양반을 대상으로 하는 문서이므로 이것이 세종의 한글 창제의 궁극적 목적을 대표하는 문헌이 될 수 없다. <용비어천가>는 양으로 본다면 대부분이 한문 주석이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용비어천가>는 오히려 한글 혁명을 보여주는 문헌이다. 한글이 중화의 한자와 대등하게 쓰였기 때문이다.

<용비어천가>는 세종의 지시로 발간한 것이지만 신하들이 저술한 것이다. 세종이 직접 저술한 <월인천강지곡>은 세종의 의지가 더 반영되어 있다고 보아야 하는데 여기서는 아예 한글을 한자보다 더 크게 반영하였다.

세종이 직접 쓴 <월인천강지곡> (1447)은 다른 책과는 달리 한글이 한자보다 두 배 이상 크다. <월인천강지곡>은 훈민정음 반포 1년 후에 세종이 직접 기획 집필한 책이다. 완성은 1447년에 이루어졌으나 간행 자체는 이 해에 이루어졌는지는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500곡이 넘는 찬불 노래책으로 상·중·하 세 권으로 간행되었으나 현재 권 상 1책과 권 중의 낙장이 전하고 있다. 발문이 붙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하권이 전하지 않아 간행자와 간행 연도에 대한 일부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종이 지었다고 보는 근거는 비교적 명확하다. 수양대군이 부왕이 직접 지었다고 증언했을 뿐 아니라 <월인천강지곡>에는 훈민정음 창제자로서의 세종의 전략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첫째, 한자어의 경우 한자를 그대로 병기한 <용비어천가>나 한자를 크게 앞세우고 한글을 조금 작게 병기한 <석보상절>과는 달리 <월인천강지곡>은 한글을 크게 앞세우고 한자를 조금 작게 표기한 전략에 주목해보자. 이는 훈민정음을 공문서로 실행하면서까지 보급하려는 정책적 열정을 보인 세종이 아니면 이루기 어려운 전략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글 위주의 과감한 표기 전략은 세종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또한 세 텍스트(용비어천가,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의 핵심 기획 저자는 세종이다. 세종은 점진적으로 다양한 방식의 실험을 한 훈민정음 보급용 3대 정책 텍스트를 완성함으로써 특정 문서를 통한 보급 전략을 마무리 짓게 된다.

<용비어천가>의 한자 혼용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사대부들은 상상조차 못했던 새로운 문자를 만든 마당에 다양한 문체 실험이 필요한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만일 이런 문체로라도 한문 지식을 풀어냈다면 우리의 지적 문명 발달은 훨씬 앞당겨졌을 것이다.



4. 한글 주류 문자로서의 역사 의미


한글이 1446년 공식 문자로 반포되었지만, 실제로는 조선시대 내내 공식 문자 구실을 제대로 못하고 비주류 문자로 쓰였다. 한글이 주류 문자로 선언된 것은 한글 반포 494년 만인 1894년 고종이 내각에 지시한 국문 칙령에서였다. 그 칙령이 한문으로 쓰였을 만큼 한글이 제구실을 하기까지는 많은 세월이 필요했다.


고종 31년(1894) 11월 21일

第十四條? 法律勅令? 總以國文爲本? 漢文附譯? 或混用國漢文?9)


이로부터 한 달도 안 된 1894년 12월 12일  『관보』에서 최초의 헌법이라는 「홍범14조」가 순한문체, 국한혼용체, 순국문체 셋으로 함께 실린다.

한글을 주류 문자로 선언해놓고도 이렇게 세 가지 문체로 공표한 것 자체가 한글의 험난한 역사를 방증해준다. 국문 칙령은 현실로 보면 한글의 영광을 보여주지만, 실상은 부끄러운 역사를 되비쳐주고 이러한 선언이 관념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공식 문서에서 이렇게 한글이 쓰이게 된 것은 기적이었다. 그러나 그 기적은 제대로 지속되지 못했다. 기적은 이미 1446년에 반포되었으나, 이 땅의 지식인과 관리들은 464년이나 철저히 그 기적을 가볍게 여겨 제대로 된 기적으로 발전시키지 못했다. 

한글을 주류 문자로 규정한 국문 칙령이 선언되었지만, 조사와 어미만 한글인 국학문체가 주류 문체로 자리잡게 되고 학문과 지식 소통의 주된 문체로 자리잡는다. 이러한 문체는 한문 번역문체를 벗어나는 획기적인 문체였지만 여전히 지식 소통에서 한자가 주요 문자 표기 방식으로 지속되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주류 문자로 자리잡아온 역사를 연표 식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443년(세종 25년) 12월(음력) 세종(이도), 훈민정음(언문) 28자를 창제하다.

◆1446년(세종 28년) 9월 상순(음력) 세종, ‘훈민정음’ 해설서인 『훈민정음』해례본을 펴내다.

◆1449년(세종 31년) 세종, 직접 지은 찬불가인 『월인천강지곡』을 펴내다. 다른 책들과는 달리 한글을 크게, 한자를 작게 인쇄하다.

◆1459년(세조 5년) 세조, 『훈민정음』해례본 가운데 세종대왕이 직접 지은 서문과 예의 부분만을 『월인석보』 제1ㆍ2권 머리 부분에 실어 펴내다.

◆1527년(중종 22년) 최세진이 지은 『훈몽자회』에 한글 자모 이름이 최초로 기록되다.

◆1687-1692(?)년 김만중, 『서포만필』에서 한글을 ‘국서(나랏글)’라 부르고, 『구운몽』 등의 한글소설을 쓰다.

◆1890년 헐버트,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전용 인문지리 교과서 『사민필지』를 출간하다. 

◆1895년 고종, 국문을 기본으로 하고 국한문 혼용을 허용하는 국문 칙령을 5월 1일에 반포하다.(내각에는 1894년 11월 21일에 지시)

◆1896년 서재필, 최초의 한글 신문 『독립신문』을 창간하다.(창간호는 『독닙신문』)

◆1896년 주시경, 국문동식회를 창립하여 오늘날 한글 맞춤법의 기초를 세우다.

◆1897년 이봉운, 『국문정리』를 펴내다.

◆1907년 국문 연구기관인 국문연구소를 7월 8일에 학부에 설립하여 한글 맞춤법을 연구하다. (1909년 12월 28일 연구보고서인 『국문연구의정안』을 제출) 

◆1908년 주시경이 힘써 8월 31일에 국어연구학회(회장 : 김정진)를 창립하다.

◆1910년 주시경 한나라말 발표하다.(보중친목회보 1호) :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리나니라.

◆1921년 조선어연구회 발기대회를 열다.

◆1926년 11월 4일(음력 9월 29일) 조선어연구회와 신민사가 함께 ‘가갸날’ 선포(한글 반포 8회갑=480돌)하다.

◆1929년 이극로, 신명균, 이윤재, 이중건, 최현배 등의 주도로 조선어사전편찬회가 결성되어 우리말사전(조선말큰사전) 편찬사업을 시작하다.(이후 『큰사전』으로 발간)

◆1932년 조선어학회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국어학-언어학 학술지 『한글』을 창간하다. (1927년 2월 10일, 조선어연구회 동인지 『한글』 발간)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책으로 펴내 10월 29일에 공포하다. 

◆1936년 표준어사정안인 『조선어 표준말 모음』을 발표하다.

◆1940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세종이 1446년에 펴낸 『훈민정음』(해례본) 원본이 발견되다.(간송미술관 소장)

◆1945년 해방 이후 최초의 대한민국 공식 국어교과서인 『한글 첫 걸음』이 9월에 발행되다.

◆1945년 10월 9일 조선학회에서는 『훈민정음』 해례본에 따라 음력 9월 10일을 훈민정음 반포일로 잡았고, 이를 양력으로 환산하여 1446년 10월 9일이 한글 반포의 날임을 확정하다. 

◆1948년 국회에서 『한글전용법』이 통과되다.10)

◆1957년 한글학회, 『큰사전』 6권을 모두 펴내다.(1947년 첫째 권 출간)

◆1968년 한글전용 5개년 계획(국무회의)이 5월 2일에 의결되다.

◆1988년 한글전용 신문인 <한겨레신문>이 국민모금으로 5월 15일에 창간되다.

◆1991년 국립국어연구원(초대 원장 안병희)이 1월 23일에 설립되다.(2004년 ‘국립국어원’으로 명칭이 바뀜)

◆2005년 국어 발전과 진흥에 관한 기본 법령으로 『국어기본법』을 1월 27일에 제정하다.



5. 마무리


신문과 방송은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지식과 정보의 소통 매체로서의 기능이 중요하다. 지식과 정보의 대중화, 실용화를 위한 최적의 문자를 만들어 놓고 철저히 이류 문자 취급하는 바람에 우리는 임진왜란, 일제 강점기의 참혹한 비극을 겪었고, 그 비극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언어는 배려이고 맥락이다. 다언어 국제화 시대에 언론 매체가 외국 문자 표기가 필요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 <석보상절>처럼 “Culture 문화(2분의 1 크기)”로 할 것이 아니라, <월인천강지곡>처럼 “문화 culture”라고 병기하면 된다. 각종 사회적 소통과 담론의 교양지요 중심 매체인 신문, 방송이 세종의 

<월인천강지곡>체 정신을 실천하는 것은 민족주의도 애국주의도 아닌 문자 보편주의이다.


■김슬옹 인하대학교 교수 주제발표

오늘 주제발표를 맡게 된 김슬옹입니다.

반갑습니다. 오늘 저는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 정신과 미디어 소통 정신에 대해 주제발표를 하고자 합니다. 마침 올해가 훈민정음 반포 5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사실 미디어에 관련된 새롭거나 깊이 있는 분석이나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훈민정음 반포 570주년이라는 뜻 깊은 해에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 정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는 것이고요, 그런 정신을 바탕으로 미디어 소통 정신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제가 철도고등학교, 라는 특목고를 나왔습니다. 서울 용산 현재 세계일보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기숙사가 없었습니다. 친구들이 새벽에 신문을 돌리고 학교에 등교를 하곤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온갖 신문을 다 보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요즘 NIE 교육이 유행인데, 저는 고등학교 다니면서 제대로 NIE 교육을 받은 게 아닌가 합니다. 

본격적으로 주제발표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1446년에 세종이 펴낸 <훈민정음> 혜례본이 1940년도에 발견이 됐고요, 2015년에 복관이 됐습니다. 복관 학술 책임자 겸 해설 임무를 제가 맡게 돼서 학자로서 굉장히 큰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혜례본에 대해 언론에서 많은 보도가 됐습니다만 간단히 언급하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1446년에 제작된 것을 세종 원본이라고 한다면, 1940년에 경상북도 안동의 이용균 선생이 그때 당시 24살인가 젊은 나이였는데 지금의 성균관대를 다니셨습니다. 그 당시에는 서울 경성제국대학교의 김태준 선생이 지금의 성균관대로 강의를 나왔습니다. 이용균과 김태준 두 분은 좌파운동을 하시던 분이셨습니다. 두 분이 의논을 해서 이용균 선생의 장인댁인 광산 김씨 집안에 있던 혜례본을 간송 전형필 선생께 넘기게 됩니다. 발견 될 당시에 표지랑 앞 2장, 총 4쪽이 없는 상태에서 발견이 됐습니다. 총 4쪽이 원본이 아니라는 것을 학술적으로 최초로 발표하신 분이 외솔 최현배 선생입니다. 최현배 선생께서 학술적으로 잘 발표를 하셨습니다. 문화재에 조금이라도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전형필 선생님의 정신이라서 혜례본에는 절대 손을 대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이것을 당대 최고의 서지학자이셨던 송석화 선생께 필사를 허용합니다. 필사를 하고 번역을 해서 조선일보에 연재를 하게 됩니다. 며칠 뒤에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동시에 폐간이 됩니다. 번역의 형태로 기적적으로 혜례본의 존재가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2015년에 교보문고와 간송재단이 합의 하에 복간본을 펴내게 됩니다. 원본의 크기와 촉감, 색깔을 똑같이 재현해서 만들었기에 가격이 매우 비쌉니다. 우리 국민들이 혜례본에 대한 관심이 참 높은 것 같습니다. 

오늘 미래와 관련된 핵심적인 문제 제기는 한글 자체만 본다면 대단히 긍정적인 평가와 홀대의 양면성이 존재 합니다. 언론에도 많이 보도가 됐지만 소설가 한강 작가의 맨부커상 수상과 관련해 BBC가 이런 위대한 문학 작품을 나은 한글과 세종을 극찬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한글과 한류의 위상이 높게 평가되고 있지만 한쪽으로는 영어 남용이 심각한 상황입니다. 이공계쪽은 이미 거의 영어로 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오늘 교수님들께서 많이 계시지만 인문학쪽도 영어로 논문을 쓰면 10배 이상의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영어 논문을 쓰지 않으면 교수되기 힘든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발표지 [표1]에 보시면 경기도에 공문서에 관한 영문자 남용이라든가 공공언어의 문제에 대해 조사한 표가 있습니다. 온라인에 문서를 자동으로 조사하고 통계 내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특허를 냈습니다. 경기도의 공문서만 보더라도 영문자의 남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은 미디어쪽이기 때문에 범위를 좁혀 본다면 미디어쪽은 아직까지 그리 심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제목에는 영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언론의 계도적인 성격을 봤을 때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제목에서만 쓰고 있지만, 그것이 주는 영향력과 반소통성이 문제가 되는 것이죠. 

1443년에 한글이 창제되고 반포가 된 이후로 우리 지식인들은 한글을 학문 또는 공적 도구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한문을 번역하는 생활을 조선 말기까지 이어갑니다. 실학자들조차도 한글 사용을 거부했습니다. 1894년 갑오개혁 무렵에 고종이, 그때 당시는 한글을 국문이라고 했죠. 고종이 한글이 한자보다 더 위에 있는 주류문자라고 선언하지만,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2005년 국어기본법이 나오고 비로소 제대로 대우받기 시작했습니다. 

훈민정음의 창제 정신을 크게 3가지로 뽑아봤습니다. 쉬운 문자, 쉬운 언어로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자는 것입니다. 훈민정음의 창제 정신이 아니더라도 문자 보편주의 또는 미디어 언론이 가야 할 방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영국이나 유럽에서도 쉬운 영어운동을 활발히 벌이고 있습니다. 어려운 영어로 인해 발생하는 인권문제가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그 다음이 문자의 형평성입니다. 그 누구도 문자로 인해 불평등을 당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섹션 제목에 영어를 쓸 때, 사실 초등학교만 나와도 영어를 알긴 합니다만 1%라도 소통에 문제가 생긴다면 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어와 한글을 병기할 경우라도, 영어를 더 크게 쓴다면 남용이 되는 것입니다. 최근 세월호 사고에서도, 많이 나왔지만 플로팅 도크, 에어포켓, 챔버 등등의 단어들은 순화되지 않는 외국어의 남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소통에 어떤 문제가 있고,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같이 고민해보자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사실 소통과 관련해 훈민정음을 연결시킨다면 신문과 방송과 같은 창구를 통해 지식과 정보를 공유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일방적 소통을 극복하고자 각 언론사가 옴부즈맨 제도, 자체 비평 프로그램, 독자 투고와 같은 영역을 넓히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그 비중을 더 늘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인터넷 댓글, 페이스북을 통해 쌍방향 소통의 비중을 늘려가고 있기도 합니다. 신문을 통한 쌍방향 소통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다양한 노력을 통해 소통을 강화시켜야 합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세종의 소통정신을 다섯 가지로 정리해봤습니다. 세종이 22살에 임금이 되어서 대화와 소통을 강화시켰습니다. 세종 2년에 집현전을 설치했습니다. 세종은 대화와 토론의 정치를 끝까지 밀고 나갔습니다. 질문과 맥락 탐구에 대해서도 집중했습니다. 세종대왕이 질문을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그 일화를 하나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주도의 한 노인이 용 5마리를 봤다고 제주도 최고 관리에게 보고를 합니다. 그러자 그 관리는 세종에게 보고를 합니다. 그 당시에 용은 이미 상상의 동물로 규정된 상태였습니다. 세종은 그 말을 듣고 열 가지 정도의 질문을 다시 던집니다. 크기, 색깔, 장소 등등 엄청난 질문을 쏟아냅니다. 한 나라의 임금이 변방에 있는 노인에게 이런 식의 질문을 던집니다. 이런 식의 질문을 끈임없이 했던 게 바로 세종입니다. 

제도와 시스템이 없으면 아무리 멍석을 깔아줘도 안 됩니다. 질문할 수 있는 분위기와 토론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인쇄술의 강화, 책 출판을 통해 소통 매체를 늘리기도 했습니다. 대량 인쇄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문자혁명을 통해 소통의 근본 문제를 해결한 것이겠지요. 문자의 평등성을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다른 맥락에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제가 현장 국어선생님 연수를 많이 다닙니다. 그때마다 제가 물어보는데, 십중팔구 훈민정음을 집현전 학사들과 공동으로 창제했다고 대답을 합니다. 현장에서 교육을 하고 있는 선생님들이 엉터리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훈민정음 혜례본을 보면 세종이 직접 한글을 창제한 게 10군데 이상에서 발견이 됩니다. 

그 당시에는 퇴계 이황 선생, 율곡 이이 선생도 한글을 잘 쓰지 않았습니다. 100년 뒤에 실학자들도 한글을 거부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지식인들의 직무유기라고 생각합니다. 정약용 선생이 쓴 책이 오늘날로 따지면 118권입니다. 옛날 기준으로 보면 512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2016년도 기준으로 40%도 번역이 안 됐다고 합니다. 실용적 지식이 무슨 의미가 있고, 무슨 가치가 있는 것입니까. 소통이 안 됐던 것이지요. 무척 아쉬운 일입니다. 

18세기 정조 임금은 한자와 한글을 뒤죽박죽으로 섞어서 사용합니다. 한글을 잘 알고 있으면서 잘 활용하지 않은 것입니다. 뒤죽박죽으로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소통의 맥락은 사라진 것입니다. 철저히 2중 생활을 했던 것이죠. 모순된 언어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글 창제 17년 전부터 세종은 소통 매체로서의 문자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됩니다. 만화를 이용해보기도 했습니다. 결국은 실패를 했죠. 서당에 갈 수 없는 사람들도 소통에 문제가 없게 만들어주기 위해 친제를 했던 것입니다. 

최근에 헌법소원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 병기와 관련된 내용이었죠. 제가 재판날 헌재에 가서 직접 봤습니다. 한자 병기의 근거 중 하나가 

<용비어천가>가 국한문 혼용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보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세종은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 놓고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 등을 통해 다양한 실험을 한 것입니다. 지금의 시각으로 혼용의 근거로 삼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세종대왕께서는 언젠가는 한글이 주류 문자가 될 수 있었을 것으로 확신했을 거라 봅니다. <월인천강지곡>을 보면 한글이 한자보다 두 배 이상 큽니다. 확신과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당대 최고의 문자를 만들면서 최고의 문자가 되리라는 확신이 없었다고는 보기 힘들 것입니다. 

1894년 고종이 내각에 지시를 합니다. 한글을 사용하라고 말입니다. 문제는 빨리 진행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1948년에 한글전용법을 선언하지만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내지 못했습니다. 

저는 언어사용에 세 가지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른 말과 글, 좋은 말과 글, 제대로된 말과 글입니다. 바른 말이라는 것은 사실에 맞는,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 것입니다. 소통의 기본 아니겠습니까. 좋은 말과 글은 독자를 배려하는 것입니다. 섹션 제목에 영어를 쓰는 것은 독자를 배려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대로 된 말과 글은 맥락에 적절한 언어의 적절성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잘 활용해서 올바른 언어생활을, 또 제대로 된 소통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신문방송언어와 약어 사용의 득실(주제발표2)


홍성호 한국경제 기사심사부장



1. ‘알파고’가 우리말에 던진 숙제


지난 3월 우리는 세기의 대결을 지켜봤다. 인류를 대표한 이세돌 프로바둑 9단과 구글이 개발한 인공지능 알파고 간 바둑 대결이었다. 숱한 화제 속에 알파고의 4대 1 승리로 끝난 이 대결은 우리말과 관련해서도 생각할 거리를 하나 던졌다. 우리 사회에 넘쳐나는  영문약어 현상이 그것이다. 

반상 대결이 벌어지는 동안 화제의 핵심은 단연 ‘인공지능’이었다. 그와 함께 그 옆에는 늘 ‘AI’라는 영문약어가 등장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AI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영어 ‘artificial intelligence’의 머리글자를 딴 말이다. 

우리말 속에서 AI가 자리 잡은 것은 꽤 됐다. 2001년 미국의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영화 제목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도 개봉돼 화제가 됐던 이 영화는, 우리말 속에 AI가 널리 퍼지고 뿌리 내리게 하는 계기가 됐다.

우리말에서 AI의 지분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조류인플루엔자’로 알려진 ‘AI(avian influenza)’가 또 있다. 이때의 AI는 닭, 오리 등 조류에서 발생하는 전염성 독감을 말한다. 초기에는 ‘조류독감’으로 불렸는데, 이 말이 본격적으로 언론에 등장한 것은 1997년께다. 인공지능의 AI가 대중화한 것보다 그 연원이 좀 더 오래 됐다.  

어쨌거나 지금 우리말에는 인공지능, 조류인플루엔자, 조류독감 등과 영문약어 AI가 경쟁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많은 정식 명칭과 약칭들이, 그 가운데서도 우리말 명칭과 영문 약칭이 서로 언중에게 선택받기 위해, 혹은 미디어언어로 채택되기 위해 세력싸움 중에 있다. 그런 배경에는 아마도 영문약어이든, 우리말 약어이든 약어 사용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신문언어의 ‘존재론적’ 한계가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문약어는 영어 자체의 강력한 지배력에 힘입어 최근 우리말에서 사용 빈도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신문언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급속히 커지고 있다. 몇 가지 이유를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말의 경제성’을 무시할 수 없다는 측면이 있다. 또 하나는 그 저변에 깔린, 말에 대한 ‘인식의 문제’를 짚어야 한다. 아마도 이것이 더 큰 문제일지 모른다. 

여기서는 신문언어의 한 자리를 이미 차지하고 있는 영문약어를 비롯해 우리말 약어가 늘어나는 현상을 살펴보고, 제기되는 논점들을 찾아보았다. 이를 통해 우리말 약어와 영문약어 사용의 실태가 이대로 좋은지, 바람직한 표기 방식은 무엇인지를 찾아봤다.

전제는 신문언어가 독자들을 위한, 독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라는 점에서 궁극적인 지향점이 ‘(독자 관점에서) 읽기 쉽고 알기 쉬워야’ 한다는 점이다. 신문의 약어 실태에 접근하는 방법도 그 지향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신문방송언어는 공공언어는 아니지만 역사적으로 교육적, 계도적 기능을 수행해왔기 때문에 언어 사용에서 공공언어에 준하는 엄격한 잣대가 필요하다. 따라서 공공재로서의 신문언어가 갖는 교육적 계도적 측면도 주요 준거 틀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말의 올바른 정립과 발전을 위해 신문언어가 기여하고 앞장서야 한다는 의미다.



2. 약어의 개념과 신문에서의 실태


   1) 이 글에서 쓴 약어의 정의와 종류

약어(略語)란 사전적으로는 어형의 일부를 생략해 간략하게 줄인 말, 즉 준말을 지칭하는데 여기서는 그 중에서도 두문자어(acronym 또는 initial)를 뜻하는 말로 썼다. 

이같은 약어는 우리말에서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 기재부(기획재정부), 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 아주 흔한 현상이다. 또 FTA(자유무역협정)니 OPEC(석유수출국기구)니 하는 수많은 로마자 약어도 우리말에 이미 깊이 들어와 있다. 여기서는 우리말 약어를 국문약어로, 로마자 약어를 영문약어라 칭했다. 

영문약어는 IMF(국제통화기금) 같은 이니셜(initial)과 AIDS(후천성면역결핍증)처럼 단어가 된 애크로님(acronym)으로 구별된다. WTO(세계무역기구), IBRD(세계은행), CIA(미 중앙정보국), CPU(중앙처리장치), CEO(최고경영책임자), IOC(국제올림픽위원회) 등과 같은 말은 이니셜이다.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FIFA(국제축구연맹),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NASA(미 항공우주국), ASEM(아시아유럽정상회의), ASEAN(동남아시아연합), GATT(관세무역일반협정),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등은 애크로님이다.

IBRD 등 이니셜은 당연히 ‘아이비아르디’ 즉, 철자대로 읽는 것이고, APEC(에이펙)을 비롯해 NATO(나토) FIFA(피파) LASER(레이저) 등 애크로님은 단어처럼 읽는다. 이런 구별이 필요한 이유는 약어는 시간이 지나면서 사전에 단어로 오르기도 하는데, 이때 애크로님이 그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유엔’ 등 신문에서 영문약어를 한글로 옮겨 적는 사례 역시 애크로님이 훨씬 많다.

일반적으로 준말은 사이가 ‘새’로, ‘삐거덕’이 ‘삐걱’으로, ‘이놈아’가 ‘인마’로 줄어드는 현상을 말한다. 이 글에서는 이런 준말은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2) 우리말과 영어, 그리고 약어의 관계

신문에서 영문약어의 범람은 당연한 얘기이지만, 영어가 우리말에서 넘쳐나는 현상과 그 궤를 같이한다. 우리가 지금 ‘나들목’이라 부르는 것은 영어로는 인터체인지이고, 번역어로는 입체교차로다. 영문약어로는 IC로 쓴다. 1970년 경부고속도로가 완공되고 그 2년 뒤 1972년 5월 25일 판교인터체인지가 개통식을 열었다. ‘경부고속도로와 서울외곽의 수도권 도로를 연결하는 판교입체교차로가 완성돼 25일 오전 장예준 건설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개통됐다…(하략)’ 당시 개통식을 보도한 동아일보 1972년 5월 25일자 기사의 일부이다. 제목은 ‘판교입체교차로 개통’이었다.  

당시 신문 보도에 쓰인 말은 ‘판교입체교차로’였다. 신문에 따라 제목에서 일부 ‘판교인터체인지’를 썼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이를 영문약어로 IC라고는 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신문에서 영문약어가 자주 쓰이기 시작한 것은, 대략적으로 1997년 말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삼는 게 타당할 듯하다. 당시 건국 이래 최대 위기라던 ‘환란’을 맞아 우리나라는 IMF(국제통화기금)에 의해 ‘경제적 해체’를 당했으며, 이때를 기점으로 신문에는 각종 신조어와 영문약어가 눈에 띄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3) 영어권, 일어권 신문은 약어를 어떻게 쓰나

신문에서 약어를 많이 쓰는 현상은 우리나라 신문(또는 넓게는 우리말)이 영어의 영향을 유독 심하게 받는 현상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우선 영어권 신문에서 머리글자로 이뤄진 약어를 많이 쓰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영어에서는 원래 약어가 발달해 세계적으로 영어약어가 그 세력을 급속히 확장해가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일상어를 비롯해 교과서 등에서도 약어를 많이 사용한다. 가령 ‘as soon as possible’(가능한 빨리)을 줄여 ASAP처럼 쓰는 것은 교과서에도 올라 있다. ‘by the way’(그런데)를 줄인 BTW 역시 채팅이나 문자 메시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표현이다.(한국경제신문 논술섹션 ‘생글생글’ 2015. 4. 27일자)

이른바 ‘신문왕국’으로 불리는 일본에서도 약어를 활발히 사용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을 통해 보면, 가령 경제산업성은 ‘경산성(經産省)’. 일본상공회의소는 ‘일상(日商)’ 식으로 줄여 쓴다.

우리가 국제연합(國際聯合)이라 부르는 것을 일본에선 際連合으로 쓰는데, 보통은 줄여서 ‘連’이라 한다. 우리가 유엔 또는 UN으로 줄여 쓰는 것과는 좀 다르다. 우리가 유럽연합(EU)이라고 하는 것을 이들은 歐州連合(EU)이라 하는데, 이를 밑에서 EU로 받기도 한다. 그러나 歐州委員會는 歐州委로 줄여 받는 등 영문약어를 우리처럼 많이 쓰지는 않는다.  

영어권이나 일본 신문은 결국은 자기네 문자를 위주로 쓰기 때문에 약어를 사용해도 큰 문제가 될 것은 없다. 우리는 우리 문자가 아니라는 점이 문제다. 우리말 약어는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줄인 말이 많고 그 생성, 소멸이 너무 빠르다. 약어의 대상이 광범위하고 다양할 뿐만 아니라 무차별적이기도 하다.

3. 미디어언어는 약어를 좋아한다


신문에서는 약어를 많이 쓰게 된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언어의 경제성’ 때문이다. 약어는 간결하다. 이는 곧 언어 사용의 효율성을 높인다. 신문에서 짧게 줄여 쓸 수 있다는 것은, 약어화하지 않았을 때의 길이에 비하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간결함을 추구하는 것은 비단 신문언어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말의 일반적 속성이라 할 수 있다.  

가령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약어로 교총이나 전교조, 민노총, 전경련, 경총, 대한상의, 변협 같은 말은 정식 명칭보다 약어 자체가 더 낯익다. 이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대한변호사협회 식으로 정식 명칭을 알고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약어는 그 자체로 ‘언어적 경쟁력’이 있는 말임을 알 수 있다.

둘째, 약어는 독자들의 시선을 잡아끄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 지난 5월  하순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조선일보(5월24일자)는 <‘오월동주’(오바마·월남) 중국을 겨누다>란 제목을 뽑았다. 이때의 ‘오월동주’ 역시 머리글자를 활용한 절묘한 동음이의어(칼랑부르) 수법이다. 과거 베트남전쟁의 앙금을 씻고 화해의 악수를 한 오바마와 월남(베트남)을 ‘오월동주’ 고사성어에 빗대 표현한 것이다. 이런 조어성 약어는 이른바 ‘눈길 사로잡기’ 효과 때문에 신문에선 통상 경쟁적으로, 또는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미디어언어의 또 다른 ‘선정성’ 경쟁의 한 측면인 셈이다.   

셋째는 대개 영문약어의 경우에 해당하는데, 요즘 젊은 세대의 언어 사용 습관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언어의식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말을 공부하는 시간보다 영어에 매달리는 시간이 더 많은 요즘 사람들은 신문에서의 직접적인 로마자 노출을 매우 자연스럽게 여긴다. 영어 표기를 어색해하지 않고 오히려 참신하고 색다른 느낌을 준다고 여긴다. 인터넷 언어를 비롯해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유통되는 언어 양식은 축약어, 이모티콘 등이 많다. 신문언어가 현실언어를 지향하다 보니 국제통화기금이니, 세계무역기구니 하는 우리말 표현보다 아예 IMF, WTO 식으로 영문약어를 바로 쓰는 사례가 늘어난다. 과거 국제연합 또는 유엔으로 적던 것을 로마자 UN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그만큼 영어에 더 익숙해져 있다는 의미이면서 동시에 우리말의 입지가 좁아져 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4. 약어 사용의 일반적 기준 - 규범적 접근


영문약어 사용을 현실적으로 부정할 수 없다면, 그것을 제대로 쓰는 방식이 있어야 한다. 우리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칫 표기가 중구난방으로 흐르거나 자의적으로 사용하기 십상이다. 또 그에 따른 오남용의 위험성도 있다. 따라서 누구에게나 받아들여질 만한, 일반적인 규범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참고로 한국경제신문에서 가지고 있는 ‘약어 사용 매뉴얼’을 일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약어 사용의 조건

기사에서 고유명사류는 본래 명칭을 다 써주는 게 원칙이지만, 필요할 경우 약어를 쓸 수 있다. 이때 약어는 첫째 경제성의 원칙, 둘째 유명성의 원칙이 충족될 때 사용한다. 

‘경제성의 원칙’이란 이름이 길어 줄여 쓰는 효과가 분명한 것을 말한다. 가령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줄여서 전경련으로 표기하는 것이다. 이때 맨 처음에는 정식 명칭을 다 쓰고 두 번째부터 약어로 받는다. 

‘유명성의 원칙’이란 널리 알려져서 독자에게 어렵지 않게, 낯설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것을 말한다. 국제올림픽위원회를 영문약어 IOC로 표기하는 것이 예이다. 그러나 주택담보대출을 자의적으로 ‘주담대’ 식으로 줄여 쓰는 것은 익숙한 말이 아니므로 바람직하지 않다.


   2) 국문약어 쓰는 법

① 국문약어는 임의로 만들어 써서는 안 된다. 약어는 첫째 신문에서 쓰는 빈도가 높고, 둘째 상식적으로 볼 때 어느 정도 대중화된 말에 한해 사용하는 게 원칙이다. 단순히 말이 길다고 자의적으로, 무리하게 축약해 낯선 말을 사용해선 안 된다.

예) 주담대 → 주택담보대출  

의정부시 국대도 → 의정부시 국도대체 우회도로 

인담자 → 인사담당자 

 ② (정식 명칭과 약칭 관계) 처음부터 약어를 써서는 안 된다. 고유명사는 그 약칭이 익숙한 용어일지라도 처음에 나올 때는 본래 이름을 다 적어주는 게 원칙이다. 공간을 줄이기 위해 그 이후부터 약어를 쓸 수 있다. 제목 등에서 ‘중기’ ‘무협’ 따위의 약어를 쓸 때도 공간이 안 돼 불가피하게 쓰는 것이다. 공간이 되면 가능한 한 중기중앙회, 무역협회 식으로 전체 명칭을 쓰는 게 좋다. 

예) ○○○ 국회 예결위원장 → ○○○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

     

③ 고유명사의 약칭을 임의로 바꿔선 안 된다. 정부 부처를 비롯해 규모가 큰 공적 단체는 대개 대외적으로 쓰는 공식 약칭을 가지고 있다. 이를 임의로 바꿔 적어선 안 된다.

예)농림수산부가 어제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현행 경매제도에 대한 농림부의 비판도 이해하기 어렵다. × → 농림축산식품부가 어제… 농식품부의 비판도…○ 

☞ 박근혜 정부에서 농업을 담당하는 부처의 정식 명칭은 ‘농림축산식품부’, 약칭은 ‘농식품부’이다. 


3) 영문약어 쓰는 법

①영문약어 표기에 관한 일반원칙

영문약어를 쓸 때는 표기 순서를 지켜야 한다. 그 순서는 ‘한글(영문약어)’ 형태를 원칙으로 한다. 이하 두 번째부터는 영문약어만 표기할 수 있다. 이를 뒤바꿔 ‘영문약어(한글)’ 식으로 적지 않는다. 이는 ‘한경 기사는 우리말로 쓴다’는 기본정신에 따른 것이며, 신문의 계도적·교육적 기능에 충실하기 위한 것이다.

예 :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


<예외1> 다음 약어는 영문자로만 표기한다.

→ MSCI지수  FTSE지수  S&P500지수 

☞ 일반원칙은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지수, 파이낸셜타임스스톡익스체인지(FTSE) 지수, 스탠더드앤드푸어스500(S&P500) 지수로 적는 것이지만, 지나치게 길어 영문약어로만 적는다. 


→ PC  DNA  KAIST  KOTRA  SETEC

☞ 퍼스널컴퓨터 대신 PC가 널리 쓰이므로 따로 병기하지 않고 단독으로 영문 표기. 또 KAIST, KOTRA, SETEC 등은 고유명사로서, 해당 단체에서 대외적으로 사용하는 공식명칭이다. DNA는 유전자로도 번역되지만 정확한 말은 데옥시리보핵산. 그러나 이 말은 너무 어렵고 DNA가 널리 쓰인다. 

☞ (생각할 거리) 현재로선 이처럼 영문자로만 쓰는 게 독자편의주의, 즉 독자 관점의 글쓰기인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이는 우리말 관점의 언어규범으로는 역주행이다. 신문언어를 담당하는 어문기자들에게는 이게 딜레마이다.  

 

<예외2> 반면에 한글로만 적는 것도 있다. 여기서 영문약어의 확산을 막고, 우리말 사용을 늘리고 육성하는 발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예) 유엔 이메일 레이저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베세토(BESETO) 메르코수르(남미공동시장)  (※메르스, 사스, 베세토는 아직 사전에 오르지 않았으나 한글 표기가 익숙한 말이다. 메르코수르는 스페인어 Mercado del Cono Sur를 줄인 말로 알파벳 표기가 적절치 않으므로 한글로 적는다. 그 외 같은 유형의 말은 이에 준해 적는다.) 

☞ (생각할 거리) 이들은 오랜 사용으로 이미 단어가 돼 국어사전에 오른 것으로, 한글 표기만으로 충분히 의미 전달이 가능한 말들이다. 이런 말의 사례를 많이 찾아야 한다는 게 어문기자들의 숙제다. 


② ‘코엑스’ 등 고유명칭 표기 요령

고유명칭은 고유한 대로 적는다. 이에 따라 코엑스, 킨텍스, 벡스코, 엑스코는 한글만으로 적고 SETEC은 영문으로 쓴다. 

☞ (생각할 거리) 여기서 주목할 것은 SETEC이다. SETEC은 아예 영문약어를 기구의 정식 명칭으로 정했다. 이런 경우는 고유명칭이기에 그대로 쓸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런 게 점차 우리말 속에서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세계화 시대에 국제 영업 등 상업적 목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라 무조건 나쁘다고만 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현실적 선택이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말 규범 차원에서 상충하는 가치라는 점이 문제다. 그렇다면 우리말 규범에서도 이를 유연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무조건 나쁘다고 비판만 할 게 아니라 글로벌 시대의 한 측면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여도 나쁠 것 같지는 않다.



5. 영문약어가 던지는 쟁점들


   1) 언어순혈주의 對 언어혼혈주의 

이 문제는 비단 신문언어에 국한하는 게 아니라 우리말이 안고 있는 오랜 과제이며 현재진행형의 딜레마다. 이른바 ‘우리말 질서의 문제’에 관한 사항이다.

신문언어에서 표기와 관련한 여러 문제는 한마디로 이 언어순혈주의와 혼혈주의 간 갈등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한글순혈주의 측에선 우리말을 지키고 살려야 한다는 것은 당위적 인식에 토대를 두고 있다. 언어혼혈주의 측에선 인위적으로 영어 사용을 억제하고 우리말 사용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일종의 ‘설계주의’라고 비판한다. 경제에서도 시장주의와 케인스주의가 100년 가까이 논쟁을 벌이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정부 부문이 커졌을 때 시장은 자유로운 경쟁에서 쇠퇴했다고 주장한다. 언어에서도 분명한 것은 인위적 외부 개입이 강해지면 언어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결국 언어혼혈주의와 언어순혈주의 간 갈등은 말과 글을 시장에 맡길 것인가, 지식인의 개입에 의해서 설계할 것인가의 논란으로 치환된다. 

이 문제는 ‘언어의 자유로운 시장’에 맡겨야 할 필요가 있다. 예전에 ‘이메일’이 처음 도입될 때 상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신문에서 약어가 정착하는 과정은 언어적 헤게모니의 다툼이라고 할 만하다. 우리가 지금은 대개 ‘이메일’로 받아들이는 말은 2000년 전후만 해도 비교적 생소한 용어였으며 표기 역시 자리를 잡지 못했다. 당시 기사를 보면 E-메일, e메일, 이메일 같은 약어 합성 표현이 많고 전자우편이란 번역어도 보인다. 이후 10년 이상의 언어적 경쟁을 벌인 끝에 요즘은 한글로 ‘이메일’이 자리를 잡아가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IC(인터체인지) 역시 ‘나들목’이란 멋진 우리말이 제시됨으로써 지금 그 세력이 많이 커졌다. 아직 IC와 나들목이 경합 중이긴 하지만 ‘나들목’ 쪽으로 어느 정도 자리 잡은 듯하다고 할 만하다.  

이들이 시사하는 점은 좋은 우리말 약어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외래어를 억지로 바꾸지 않고, 자연스럽고 세련된 우리말 대체어를 찾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까닭이기도 하다. 별생각 없이, 당장 쓰기에 편하다고 영문약어를 남발하다 보면 어느새 우리말 입지는 더욱 좁아져 있을 것이다. 그런 토대 위에서 우리말 풀이가 살아남을지, 영문약어가 대세가 될지는 오로지 언중의 ‘인식’과 ‘선택’에 맡겨야 한다.


   2) 언어의 경제성과 남용의 문제

언어에서 경제성 원리를 이해하는데는 ‘디지털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미국의 컴퓨터과학자 클로드 섀넌의 개념이 도움이 된다. 정보이론에 수학개념을 도입한 그의 설명에 따르면 정보량(엔트로피)과 군더더기(리던던시)는 반비례 관계다. 군더더기를 줄이면 정보량은 늘어난다. 언어에서 약어 현상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만일 고급지 권위지 전문지를 표방하는 신문이라면 보다 낮은 중복성으로 메시지를 구성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전문적 용어나 훨씬 어려운 단어들, 개념어들을 사용함으로써 군더더기를 줄이면서도 고도의 정보를 전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대중지라면 수용자가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잘못 알아듣는 것을 막기 위해 보다 쉬운 말로 이를 반복해 설명해야 하므로 메시지 중복성이 커지게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통상의 신문기사에서는 국내총생산, 경제협력개발기구, 미국 중앙은행(또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식으로 우리말 용어를 붙이는 게 상례다. 메시지 중복성은 커지고 그에 따라 언어의 경제성은 떨어진다. 영문약어뿐만 아니라 전경련, 상의, 경총, 민노총, 교총 등 우리말 준말에서도 이는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정식명칭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정보량은 줄어든다.

하지만 소수의 전문가 그룹에서 구독하는 고급지라면 GDP니 OECD니 Fed(또는 FRB)니 하는 약어를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는 커뮤니케이션에서 메시지의 효율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3) 약어의 이데올로기 효과

약어는 특히 이데올로기와 결합할 때 위력을 발휘한다. 올리비에 르불이 지적한 바와 같이 의미를 단순화·고착화함으로써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도구로 쓰일 수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언어와 이데올로기’). 

‘2MB’가 그런 예다. 2008년 촛불시위 현장에 등장한 ‘2MB’는 이명박 정부를 임기 내내 괴롭힌 이데올로기로 작용했다. ‘2MB’는 물론 ‘이명박’을 가리키는 기호다. ‘MB’는 ‘명박’을 뜻하는 영문 머리글자이고, ‘2’는 성을 숫자로 표시한 것이다. MB는 원래 데이터의 양을 나타내는 단위 기호로 ‘메가바이트’를 나타내는 말이다. 이는 컴퓨터 프로세스의 속도를 나타내는데 1970년대 메가바이트의 개념이 쓰이기 시작했으니 지금의 컴퓨터 기술 수준으로 보면 엄청나게 느린 속도이다. ‘2MB’는 거기서 유추해 ‘이명박’을 공격하기 위한 말로 쓰였다.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 발목을 잡은 ‘2MB’는 원래 한 해 전 대선 때 당시 한나라당이 제작한 홍보용 동영상에 나오는 용어였다. 이명박을 띄우기 위한 말이 부메랑이 돼 반(反)이명박 구호로 돌아온 셈이었다. 

IMF도 약어가 이데올로기로 작용한 대표적 사례다. 우리는 지금도 1997년 말 발생한 외환위기를 ‘IMF 사태’로 더 잘 알고 있다. 이 말을 ‘IMF 때문에…’ ‘IMF를 극복하고…’ 식으로 많이 쓴다. 외환이란 개념은 일반국민에게 어려운 말일 수도 있다. 그것이 언론의 의도적 시도에 의한 것인지, 너무도 고통스러워 잠재적인 인식의 발로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로 인해 그 사태의 실체, 경제행위에 관한 교훈은 사라지고 IMF란 추상적 용어만 남아있게 됐다.


   4) 표기 통일성의 문제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 System)는 워싱턴DC에 있는 하나의 중앙위원회(Federal Reserve Board)와 전국 12개 지역에 있는 지역연방은행(12 regional Federal Reserve Banks)으로 구성된다. 

중앙은행에 해당하는 Federal Reserve Board는 한국에서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방준비제도/연방준비은행/연방은행/연준리/연준’ 등 여러 용어로 번역돼 쓰인다. 한경에서는 이를 ‘미국 중앙은행(Fed)’으로 통일해 적는다. 약칭은 Board의 공식 대외표기인 ‘Fed’로 쓴다.(FRB는 Board일 수도, 지역Bank일 수도 있으므로 쓰지 않는다.) 12개 지역Bank(Federal Reserve Bank of New York, Federal Reserve Bank of Chicago 등)를 나타낼 때는 ‘뉴욕 연방은행, 시카고 연방은행…’ 식으로 쓴다. 이를 ‘뉴욕Fed, 시카고Fed…’ 식으로는 쓰지 않는다.(Fed는 혼동을 막기 위해 중앙Board에만 쓴다.)

Fed 수장(Chair)의 호칭은 ‘의장’으로 한다.(예 : 재닛 옐런 미 Fed 의장) 지역Bank의 수장(President)은 ‘총재’로 한다.(예 : 윌리엄 더들리 뉴욕 연방은행 총재)

화면 해상도를 나타내는 HD(high definition)도 표기가 중구난방인 대표적 사례다. 이 말은 우리나라에 소개된 지가 30여년이 지났지만, 아직 우리말 용어로 자리 잡지 못했다. 그것이 영문약어를 남발하는 또 하나의 빌미가 된다. 이 말은 초기에 학계에서 주로 ‘고품위’라 번역해 쓰던 말인데 그동안 국내 신문은 ‘고선명, 고화질, 고품질, 고품위, 고해상도’ 등 일관성 없이 혼용해 왔다. 다만 최근 들어 ‘초고화질(UHD) TV’에서처럼 HD를 ‘고화질’로 적는 사례가 비교적 많다. 한경에서는 HD를 ‘고화질’로, UHD는 ‘초고화질’로 통일해 쓴다. 디스플레이는 해상도가 발전하는 단계별로 ‘고화질(HD) → 풀HD(FHD) → 쿼드HD(QHD) → 초고화질(UHD)’로 적는다. 

이것이 시사하는 점은 기술 발달에 따라 언어가 생성되고 세분화하는데(‘HD → FHD → QHD → UHD’) 이를 전달할 우리말이 따라가지를 못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우리말의 현실이고 문제점이다.

요즘 나오는 OLED는 우리말로 풀면 ‘유기발광다이오드’다. 이렇게 써서는 이 말이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혹자는 ‘올레드’로 하면 된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한글로 전사한 것이지, 표기 측면에서 OLED나 올레드나 오십보백보다. 어차피 내용을 모르면 암호 같은 표기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애초의 약칭인 OLED를 자꾸 쓰게 된다. 좋은 우리말 대안이 나오지 않으면 이를 막을 수 없다.




6. 영문약어, 규제와 활용 사이의 조화 


요즘은 융합과 복합의 시대다. 말에서도 융복합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것은 언어 특성상 축약화, 간략화의 방향으로 진행된다. 긴 말은 그 자체로서 경쟁력을 상실한다. 신문에선 특히 특성상 간결한 말을 선호하기 때문에 더더욱 약어를 많이 쓴다.  

문제는 약어가 표기 수단으로서의 장단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문약어든 영문약어든 극단적인 약어화는 표현 양식의 다양성 차원에서도, 수사적 용인의 대상으로서도 받아들이기 힘들다. 오히려 독자의 해독 과정(decoding)에 잡음(noise)으로 작용하게 되고, 사회적으로도 언어 사용의 일탈을 가져와 언어체계의 무질서를 초래하는 우를 범하기 때문에 그 폐해가 더 크다 할 수 있다. 


   1) 경쟁력 있는 우리말 대체어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IC는 인터체인지이기도 하고 집적회로이기도 하다. 인터체인지 또는 그 영문약자 IC는 ‘나들목’이란 멋진 우리 고유어 대체어가 생기면서 지금은 ‘판교나들목’이란 말이 많이 쓰이고 있다. 보기에 따라 ‘판교IC’보다 경쟁 우위에 있고, 적어도 경쟁관계는 된다. 

그러나 집적회로를 뜻하는 IC는 상황이 다르다. IC카드란 말이 있다. 이를 집적회로카드라고 쓰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답은 명확하다. 더 좋은 우리말 대체어가 나오지 않는 한 IC카드를 그냥 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IC가 우리말에서 사라질 일을 기대할 수는 없다. 오히려 우리말을 지배하는 현상이 빨라질 가능성이 많다고 봐야 한다.

우리는 이미 나들목뿐만 아니라 동아리(서클), 댓글(리플), 벼룩시장(플리마켓), 틈새시장(니치마켓), 일회용 비밀번호(OTP) 등 좋은 사례를 많이 가지고 있다. 이들은 ‘영어의 힘’을 이겨낸 대표적 우리말이다.

   2) 유엔, 나토, 유니세프처럼 한글로 쓰는 방식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미디어언어에서 우리말 표기와 영문약어 표기는 늘 경합관계였다. 과거에는 신문에서 ‘UN’이나 ‘NATO’ 같은 말을 ‘국제연합(또는 유엔)’, ‘나토’와 같이 순전히 우리 글자로 표기했으나 최근에는 그 정신이 많이 약해진 것 같다. 

동남아국가연합인 ASEAN이 ‘아세안’, 후천성면역결핍증을 뜻하는 AIDS가 ‘에이즈’ 표기로 굳은 것은 우리말로 쓰는 게 더 간결하다는 장점 위에 자주 그렇게 써 왔다는 점이 어울려 정착됐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런 쓰임새가 지속적으로 광범위하게 유지되다 보면 이들이 단어가 돼 사전에 오를 정도가 됐듯이 이런 말들을 많이 생산해야 한다. 일종의 ‘귀화어’가 되는 셈이다. 그러자면 이런 한글 표기를 의도적으로라도 많이 써야 한다. 사스, 유네스코, 메르스 등 많은 선례가 있다. 애크로님, 즉 단어처럼 읽을 수 있는 말이 대상이 된다. 이런 것들은 자꾸 한글로 써서 그 자체의 언어적 세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 이런 말은 구태여 영문약어로 쓸 필요가 없다.


   3) 반면에 이니셜의 경우는 애크로님과 달리 우리말로 잘 표기되지 않는다. 최고경영책임자를 뜻하는 CEO를 ‘시이오’라 하기 어렵듯이 DB나 CD, ID카드를 ‘디비’ ‘시디’ ‘아이디카드’로는 잘 적지 않는다. 그렇다고 마땅한 번역어도 없는 형편이다. CPU나 IC 같은 말도 ‘중앙처리장치’ ‘집적회로’와 같은 번역어가 있어 그 세(勢)가 경합하는 것들이지만 역시 짧게 줄일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영문약어가 많이 쓰인다.

  이런 경우는 불가피하게 영문약어를 쓸 수밖에 없다, 다만 가능한 한 영문약어 대신 우리말 용어를 의도적으로 많이 노출시켜야 한다. 이때는 영문약어를 쓰는 방식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한글풀이를 먼저 앞세워 쓰는 등 표기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가령 WTO라면 ‘세계무역기구’를 먼저 내세우고 뒤에 괄호로 로마자를 병기해 준다. ‘FTA(자유무역협정)’가 아니라 ‘자유무역협정(FTA)’이라고 써야 맞는다. 이런 표기법을 지킴으로써 적어도 우리말과 영문약어와의 관계에 질서를 세울 수 있다. 


   4) DNA 등은 적절한 우리말 풀이도 없고, 이미 영문약어가 일상으로 깊이 들어와 친숙한 말이 됐다. PC도 이를 퍼스널 컴퓨터니 개인용 컴퓨터니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미 우리 생활 속에 들어와 자리 잡은 것으로 판단되는 영문약어가 일부 있다. 이런 것은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물론 이를 디엔에이, 피시 식으로 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언어뿐만 아니라 모든 게 그렇듯이 억지로 해서 될 일이 아니다. 그것은 언중이 선택할 문제다. 영문약어를 조금이라도 허용하면(한번 물꼬를 트면) 영어의 강력한 힘에 의해 종국에는 우리말에서 영어가 확산하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일부 우려도 있다. 하지만 이는 지나친 기우다. 우리말의 역사와 언중의 인식이 그렇게 허약하다고 볼 근거는 없다. 따라서 이 역시 말의 자유로운 시장에 맡기는 게 순리다.

■홍성호 한국경제 기사심사부장

김슬옹 교수님의 발표를 들어보니 한마디로 정리를 한다면 <월인천강지곡>의 정신으로 돌아가자’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 한글의 우수성을 토대로 미디어언어를 어떻게 잘 발전시킬 수 있을까에 대해 말씀해 주신 것 같습니다. 한글이 정보화 시대에 들어오면서 컴퓨터의 사용을 토대로 세계적으로 한글의 우수성이 퍼지고, 인정받고 있으며, 그것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5백년 전 세종대왕의 혜안이 이제야 인정받고 있는것 같습니다.

김 교수님께서 총론적인 부분에서 정리를 해주셨고, 저는 세부적인 측면에서 살펴봤습니다. 우리가 매일 부딪히고 고민한 것을 정리해봤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나눠드린 페이퍼에 다 나와 있습니다. 저는 우리 신문에서 영문약어가 언제부터 사용되기 시작했을까에 대해 고민해봤습니다. 통계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정확하게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외환위기 때가 아닌가 합니다. 일반화시키는 것은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문기자로서 체험적으로 느끼기에 97년 말 전후로 큰 변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경제적 상황들이 있기는 했습니다. 단군 이래 최대 위기라는 표현도 많이 썼었습니다. 빅딜, 워크아웃 등의 용어들이 일상적으로 쓰이게 됐습니다. 그 전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던 단어들이죠. 빅3라는 표현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어권에서 약어를 쓰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공통적인 사실입니다. 일본 신문을 제가 좀 살펴봤습니다. 일본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영어약어와는 약간 다른 형태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국제연합을 UN으로 사용하는데 일본은 국연으로 표기를 합니다. 물론 일반화시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확실한 것은 우리보다 적은 빈도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약어사용의 일반적인 기준에 대해 잠깐 설명 드리겠습니다. 각사의 스타일북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거의 교류가 안 됩니다. 교류가 된다면 공통적이고 종합적인, 그리고 가장 기준이 될 만한 모범적인 안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한경에서 쓰고 있는 매뉴얼 북을 제가 나눠드렸습니다.  

약어를 쓰는 현상은 납활자 시대의 유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는 한 글자라도 줄여야 했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릅니다. 공간은 얼마든지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일상적으로 많이 알려진 단어를 제외하고는 함부로 줄여서 쓰면 안 됩니다. 어문기자들은 이런 부분들을 항상 고민합니다. 

첨부파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124 한국프레스센터 1311호   전화: 02-723-7443   팩스: 02-739-1985
Copyright ©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All rights reserved.
회원사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