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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칼럼-정용관 동아일보 논설실장] 길 잃은 셰임 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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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7회 작성일 2025-04-28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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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혈단신 韓 ‘제3지대’ 세력화 쉽지 않아
단일화한다 해도 이준석 동참할지 의문
‘부끄러운 보수들’ 어루만질 비전 없다면
투표장 썰렁했던 2007년 모델로 갈 수도

정용관 논설실장
정용관 논설실장

최근 신뢰도를 인정받는 어느 여론조사기관 대표로부터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다. 윤석열 대통령 파면 선고 2주 전쯤 자체 보유 중인 온라인 패널 1000명을 대상으로 ①계엄 선포가 적법했다는 주장 ②계엄 해제를 위해 국민의힘 의원들이 표결에 동참한 것 ③2024년 총선에서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주장 ④탄핵 인용 여부 등 4개 이슈에 대한 태도를 참고용으로 조사해 봤다는 것이다.

응답자들은 계엄은 불법이고(76%), 국민의힘 의원들의 표결 동참은 잘한 것이며(64%), 부정선거는 없었으며(62%), 탄핵은 인용돼야 한다(64%)고 답했다고 한다. 이를 메트릭스에 넣어 보니 ‘적법+잘못+있다+기각’에 동의한 응답은 9.6%에 그쳤다는 것이다. 보수 성향 응답자만 놓고 보면 31%가 ‘적법+잘못+있다+기각’에 동의하는 걸로 나타났다고 한다. 즉 전체 국민의 10명 중 1명, 보수의 10명 중 3명 정도만 이른바 ‘계몽령’에 적극 공감하더란 설명이다.

이 조사 결과가 주는 시사점은 계몽령에 공감하지 않는 보수층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또 이들 중 상당수는 ‘샤이 보수’가 아니라 현 상황을 부끄러워하는 ‘셰임(shame) 보수’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들의 상처받은 정치 영혼을 어루만져주고, 윤 정권과는 다르게 해볼 테니 다시 힘을 달라고 읍소하는 겸허한 태도와 의지를 보여주는 게 국민의힘의 도리일 것이다. 적어도 ‘친윤 폐족’들은 좀 뒤로 물러나거나 책임지는 시늉이라도 했어야 했다. 그러나 탄핵 인용 후 그저 한덕수 차출, 그와의 단일화 이벤트 등 ‘택틱(tactics)’이 사실상 대선 전략의 전부가 돼 버렸다.


필자는 2주 전 ‘한덕수 출마론…얼마나 설득력 있을지’ 칼럼에서 한 권한대행이 경륜 등 장점이 많지만 탄핵 정부의 2인자인 그가 대선 관리, 국정 관리 책무를 뒤로하고 대선에 나서는 게 ‘상식’에 맞는 건지 의문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요즘 그의 주변에선 “이젠 안 나간다고 할 수도 없는 상황” “자신을 위기의 나라를 구할 적임자로 확신하고 있을 것” 등의 얘기가 들린다.

한 대행이 “좌도 우도 아닌, 위로 앞으로” 가기 위한 ‘마지막 소임’이라며 대선에 나설지는 곧 명확해지겠지만 최종 결심은 여전히 두고 볼 일이다. 보수 일각에선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모델을 희망하고 있다는데, 사정도 조건도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때는 국민통합21이라는 정몽준 신당의 실체가 있었고, 한때 지지율이 30%를 넘는 등 제3지대에 일정한 지지 세력이 있었다. 무엇보다 명확히 ‘이종(異種) 세력’ 간의 플러스 단일화였다고 할 수 있다.

지난주 갤럽에 따르면 한 대행 지지율은 ‘뚜렷한 차별점’을 보이지 않았다. 더 현실적인 문제는 돈과 시간이다. 성공했든 실패했든 독자적으로 제3지대 세력화를 시도할 수 있었던 이는 2000년 이후 정몽준, 안철수 정도다. 둘 다 재력가라는 공통점이 있다. 한 대행은 국민의힘 우산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민의힘 후보와 원샷 단일화를 시도하고 만약 최종 후보가 된다면 후보 등록 마감(5월 11일) 전에 입당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지만 일주일 안에 이 모든 걸 뚝딱 해치울 수 있을까. 사퇴 직후 바로 입당해 국민의힘 후보와 재경선하는 방안도 거론된다는데 이런 식의 후보 선출 절차가 가당(可當)한 건지 법적 정치적 시비가 불거질 수도 있다. 한 대행과의 단일화가 이뤄진다 해도 이준석 후보와의 단일화라는 또 다른 관문이 남아 있다.
 

대선에는 ‘10%의 룰’이 있다. 총선 때는 투표를 안 해도 대선 투표엔 참여하는 차상위 정치 무관심층이 전체 유권자의 10%는 된다는 것이다. 일대일 접전일 경우 이들의 향배가 박빙 승부를 가르는 변수가 된다. 특히 지난 대선 때가 그랬다. 그러나 이번엔 일대일 구도를 만들어 내기도 힘들 뿐 아니라 설령 만들어 낸다 해도 폭발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여론 지형이 정권 교체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상황에서 ‘반이재명 연대’만으로 전통적 지지층을 투표장에 끌어내 오긴 쉽지 않다.

요즘 보수층에서 이재명 대세론에 체념한 듯한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윤 어게인’ 운운하는 상황에서도 ‘윤의 그림자’를 걷어내려 몸부림치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드니 답답한 노릇이다. 이대로면 2007년 당시 투표율 저조와 정동영 후보의 수백만 표 참패 모델이 더 가능성이 높은 것 아닌지…. 길 잃은 셰임 보수들에게서 ‘셰임’을 어떻게 걷어낼 것이냐가 문제의 본질인데 자꾸 신을 신고 발바닥을 긁고 있는 것 같다. 국민의힘 경선 후보가 둘로 압축되면 달라지려나. 대선 시간표는 쏜살같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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