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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칼럼-남궁창성 강원도민일보 상무이사 겸 미디어실장] FAFO 포함(砲艦)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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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1회 작성일 2026-01-12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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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7월. 미(美) 페리 제독이 이끄는 미시시피함 등 군함 4척으로 구성된 해군 전단이 일본 우라가(浦賀) 앞바다에 진을 쳤다. 쿠로후네, 흑선(黑船)이었다. 신이 지켜주는 나라로 알고 있던 막부 정권과 국민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서세동점(西勢東漸), 제국주의 시대 군사력으로 약소국을 무릎 꿇리는 포함(砲艦) 외교의 신호탄이었다.


원정의 목표는 일본 개항이었다. 도쿠가와 막부의 실권자, 아베 마사히로(阿部正弘·1819~1857년)는 미 대통령 친서만 받고 차일피일 협상을 미뤘다. 페리는 1년 뒤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이듬해 중국에서 태평천국의 난이 터졌다. 동북아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갔다. 쿠로후네가 7개월 만인 1854년 2월 다시 왔다. 군함은 9척으로 늘어나 있었다. 에도(江戶) 앞바다는 검은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다.


페리 제독은 일본을 ‘기만적이고 복수심을 품고 있는’ 민족으로 인식했다. 협상은 거칠고 고압적이었다. 통상 요구는 거절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전쟁은 피해야 한다는 여론이 팽배했다. 막부는 쇄국을 위해 전쟁을 할 수는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해 3월 미일화친조약이 성사됐다. 그리고 4년 뒤 1858년 7월 미일통상조약이 체결됐다. 가나가와(神奈川) 등 5개 항구를 열었다. 관세율 조정은 협상에 따라 정하도록 했다. 외국인에 대한 치외법권도 수용했다. 포함 외교는 불평등 조약으로 귀결됐다. 1876년 후발 제국주의자 일본이 무능하고 무력했던 조선에 강요한 강화도조약의 예고편이었다.


19세기 한물간 포함 외교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미 트럼프 행정부가 베네수엘라에서 수행한 ‘특별군사작전’이 상징적이다. 명분은 마약왕 제거였지만 실제는 석유자원 약탈이다. 다음 목표는 자원의 보고, 덴마크령 그린란드 접수다.


“까불면 다친다(FAFO).” 국제사회는 포식자들이 먹잇감을 놓고 으르렁대는 정글 세계다. 신(新)제국주의 도래(到來)의 전조(前兆)다.


남궁창성 미디어실장


출처 : 강원도민일보(https://www.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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