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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격랑 속 우리의 항로는(2018)

작성일 18-12-31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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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5호


동북아 격랑 속 우리의 항로는


진경호 서울신문 심의위원


작열하는 태양과 서핑, 훌라춤…. 하와이가 그런 낭만의 키워드로 치장된 천혜의 휴양지만이 아님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불과 120년 전만 해도 폴리네시아 원주민들의 여왕이 다스렸던 땅이고, 현대사의 한 축을 세운 태평양전쟁의 발원지였으며, 지금도 아시아·태평양 시대의 패권을 향한 각축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는 뜨거운 냉전의 현장임을 불과 닷새의 짧은 여정만으로도 쉽사리 체감할 수 있었다.


미국 국무부 초청으로 지난 10월 22일부터 26일까지 하와이의 안보 현장을 돌아봤다.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편협)가 주관한 이 ‘한·미 안보포럼’행사엔 편협 19대 회장인 이하경 중앙일보 주필 등 국내 주요 언론사 중견기자 8명과 윌리엄 콜먼 주한 미국대사관 대변인 등 모두 13명이참여했다.


미 국무부가 준비한 여정은 우리의 발길과 눈길을 하와이주 오아후섬의 미국 인도·태평양사령부와 그 주변으로 이끌었다. 아니 저 멀리 1941년 12월 7일, 일본군 전투기 183대가 여명을 깨고 날아와 오아후섬 남쪽 진주만에 폭탄을 퍼부으며 태평양전쟁의 시작을 알린 과거로 일행을 잡아끌었고, 숨 돌릴 틈도 없이 곧바로 미국과 중국의 아시아·태평양 패권 경쟁은 어디로 향하고 있으며, 그 격랑 속에서 한반도는 어떤 내일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6·25 전쟁 때 흥남철수에 투입됐고, 미태평양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가 함상에서 일본 외무대신 시게미츠 마모루로부터 항복문서 서명을 받아낸 역사를 뒤로 하고 지금은 퇴역해 진주만에 정박돼 있는 미주리함에 오르는 것으로 일행의 안보 투어는 시작됐다. 이어 미 전쟁포로 및 실종자 수색국(DPAA)과 펀치볼 국립묘지, 미 인도·태평양사령부, 하와이대 동서문화센터, 진주만항공박물관, 국립해양대기청, 히캄 공군기지를 차례로 방문하며 하와이를 무대로 펼쳐져 온 태평양의 어제와 오늘을 되짚었다.


일정 가운데 일행의 눈길을 잡아끈 것은 단연 DPAA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국의 완강하고도 집요한 실종 미군 유해 찾기 작업이었다. 때마침 DPAA에는 지난 8월 북한이 송환한 한국전 실종 미군 유해 55구에 대한 감식작업이 한창이었다. DNA 분석 등을 통해 이뤄지는 이들 유해의 신원 확인

작업은 그저 스쳐 지나는 눈에도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나 다를 바 없었다. 유해 유전자 분석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더라도 이 유해의 가족을 찾는 일이 보통 지난한 게 아니었다. 켈리 매키그 DPAA 국장에 따르면 미국의 이런 미군 실종자 수색작업은 남북한과 베트남 등 전 세계 47개 나라를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매키그 국장은 “한국전쟁의 경우 장진호 전투에서만 1천여 명의 미군이 실종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북측과 서한을 주고받으며 실무선에서 유해 송환 문제를 협의하고 있는데, 내년 3월부터 장진호와 운산 지역에서 미국과 북한이 함께 유해 발굴작업을 벌일 수 있게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DPAA가 이들전 세계의 미군 유해를 찾아 가족의 품에 돌려주는데 쓰는 예산은 올해에만 1억3천만 달러에 달한다. 시간과 돈, 노력이 얼마가 들든 조국을 위해 헌신한 희생자들을 미 국은 결코 잊지 않을 것이며, 뼛조각 하나라도 반드시 찾아내 가족에게 돌려주겠다는 의지가 DPAA 곳곳에서 묻어났다. 이런 유해 찾기를 통해 미국은 다인종·다문화의 3억2천여만 구성원을 하나로 묶는 연대의 끈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DPAA가 ‘하나의 미국’이라는 통합의 정신을 일깨워주는 곳이라면 진주만의 미 인도·태평양사령부는 ‘유일한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의 완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곳이었다. 미국이 지구촌 전체를 겨냥해 구성한 6개 지역통합군사령부 가운데 이 인도·태평양사령부는 규모와 전력 면에서 다른 5개 통합군사령부를 압도한다. 관할 지역만 지구촌 전체의 절반에 이를 만큼 작전반경부터 방대하다. 태평양과 인도양, 남극과 북극을 포함해 전 지구의 52%에 해당하는 43개국, 20개 지역의 1억6천900만㎢를 작전구역으로 두고 있다. 주한 미군, 주일 미군도 모두 이 사령부 예하부대다. 특히 미국이 지목하고 있는 5대 핵심 위협(중국·러시아·이란·북한·무장테러집단) 가운데 3개 위협세력을 관할로 두고 있으니, 명실상부 미군 전력의 핵심이 바로 이 인

도·태평양사령부인 셈이다. 인도·태평양사령부의 스테판 쾰러 작전사령관은 우리 일행과의 간담회에서 ‘항행의 자유’를 거듭 강조하며 자신들의 핵심 전략 목표가 중국을 겨냥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개인의 가치와 권리를 존중하고 자유로운 시장경제 질서를 보장하는 체제를 수호하기위해 자신들이 존재한다는 점을 거듭 피력하며 ‘미국의 패권주의’를 비난하는 중국의 주장을 반박했다. 그는 이어 북핵 대화와 관련한 한·미 연합훈련 축소에 대해 “훈련 연기나 축소는 북·미 간에 보다 넓은 외교적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통로”라면서도 “수년 간의 연합훈련 경험이 있는 만큼 단기적 공백은 발생하지 않겠지만, 어떤 경우에도 군사력 약화로 이어지지 않도록 준비태세에 만전을 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인도·태평양사령부에서 개괄적으로 언급된 ‘북핵 대화와 한반도’라는 우리의 핵심 주제는 뒤이어 마련된 하와이대 동서문화센터 동북아 전문가들과의 간담회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졌다. 90년대 초반 도널드 그레그 주한 미대사 밑에서 부대사를 지낸 것을 비롯해 여러 나라에서 대사를 역임한 전문외교관 출신 레이먼드 버그하르트 연구위원과 아·태안보연구센터 등 여러 기관에서 동북아 안보와 북핵 등을 연구해 온 데니 로이 박사, 칼 베이커 태평양포럼 사무총장 등은 북·미 대화와 북핵 향배, 한·미 동맹의 앞날 등에 대해 한결같이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로이 박사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와 관련해 “김정은이 선대와 달리 평화와 번영이 더 이상 자신들의 체제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며 “김정은의 생각이 선대와 다르지 않다면 지금 문재인 대통령은 그에게 속고 있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베이커 사무총장은 한·일 관계가 과거사 문제에 묶여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이전 정부와 달리 양국 관계 개선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사실을 들어 한·미동맹, 미·일동맹을 축으로 한 동북아 3각 동맹체제가 근본적인 변화의 길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한국으로서는 더 이상 ‘안보 파트너는 미국, 경제 파트너는 중국’이라는 픽션이 통하지 않을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한국이 3각 동맹체제에서 벗어나 중국의 영향권 안으로 편입될 가능성을 경계했다. 버그하르트 전 대사는 미 중간선거 이후 북핵 대화의 향배와 관련해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일수록 정치인들은 관심을 내려놓기 마련”이라며 트럼프 행정부가 북핵 대화의 속도를 대폭 늦추며 현상유지 쪽으로 갈 가능성과 함께 이런 상황에서 자칫 문재인 대통령이 ‘고립’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이들과의 무거운 대화에 이어 일행은 진주만항공박물관과 국립해양대기청(NOAA), 히캄 공군기지를 둘러보는 것으로 닷새 간의 안보포럼 일정을 마무리했다. 미 국무부가 많은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 운영하는 갖가지 초청 포럼을 가동하는 이유는 자명할 것이다. ‘미국과의 동행’, 자신들과 함께 가자는 것이다.


북핵 대화를 고리로 급류를 타고 있는 동북아 질서 변화는 지금 우리에게 역사가 될 선택들을 요구하고 있다.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그리고 이를 통해 50년, 100년 뒤 우리는 어떤 나라를 후손에게 물려줄 것인가. 냉혹한 국제질서 속에서의 외교 행보는 자일 없이 암벽을 오르는것과 다를 바 없다. 한 뼘 위 바위 틈새에 손발을 끼워넣고 올라서야 할 성취는 더디지만 발 한 번 헛딛고 성근 돌부리 잘못 잡아 천 길 나락으로 떨어지는 건 순간이다. 무엇을 취하고 버리든 놓치지 말아야 할 명제는 분명하다. 망국과 분단의 비극을 거치며 얻어낸 자유민주의 기본 가치와 질서를 한 점 훼손 없이 후손에게 올곧게 넘겨주는 일이다. 태평양 한복판의 작은 섬 하와이 진주만 곳곳에 어려 있는 역사적 교훈들이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들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어디로 가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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