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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영 칼럼/9.9] 마셜플랜 원조금으로 만든 '로마의 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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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5,545회 작성일 2011-09-14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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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영 논설주간

美 정부가 지원한 대형 영화들이 50년대 위기 맞은 영화계 구해, 우리도 제조업·수출 위주 벗어나 일자리 더 많이 만드는 문화·관광·복지 산업에 혜택 줘야… K-팝에 연구개발 투자 왜 못하나

\"이 영화는 모든 것이 이탈리아 로마에서 촬영되고 녹음되었습니다.\"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이 나오는 고전명화 \'로마의 휴일\'에 맨 처음 등장하는 자막(字幕)이다. 영화 타이틀로 볼 때 현지 로케이션이 당연하다고 여기겠지만 이런 자막이 나온 데에는 사연이 있다.



\'로마의 휴일\'은 미국 정부의 원조자금으로 만든 영화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후 유럽 경제부흥을 위해 달러를 찍어 원조금을 주었고(마셜플랜), 유럽으로 나간 달러는 유럽 내에서 쓰거나 미국 상품을 수입할 때만 사용하도록 못을 박았다. \'유로달러\'는 이렇게 탄생했다. 영화제작사 파라마운트는 미국이 유럽에 보낸 달러 중 재입국이 금지된 원조금으로 현지 로케를 했던 것이다.



나라 경제를 지탱하는 성장산업이 탄생하는 과정을 보면 정부의 작은 정책 변화가 훗날 엄청난 효과를 내곤 한다. 할리우드 영화처럼 한국 반도체·전자산업도 그런 성공노선을 밟았다.



일본 주간지 \'닛케이 비즈니스(2011년 2월 28일자)\'가 분석한 자료를 보면 삼성전자가 2000~2009년 10년간 한국 정부로부터 감면받은 세금 액수는 7000억엔(9조8000억원가량)이었다. 이 잡지는 일본 경쟁회사들이 반도체 공장 4개를 지을 금액을 면제받았다고 비교하며, \"세제(稅制) 혜택이 삼성전자를 지탱한다\"고 분석했다. 삼성의 노력도 대단했지만 세금감면이라는 \'관군(官軍)\'의 함포사격 덕분에 일본을 눌렀다는 논리다.



딱 잘라 부인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는 기업의 설비투자나 연구개발에 들어간 비용에는 어느 나라보다 대범하게 세금감면 혜택을 주고 있다. 일본 기업들이 시샘할 만큼 다채로운 감면 메뉴가 갖춰져 있다. 그 내용을 시시콜콜 정리한 자료만 두꺼운 서적 한 권 분량이다.



세금뿐 아니라 전기요금도 탕감해주고 있다. 작년만 해도 현대제철이 796억원, 포스코가 636억원, LG디스플레이가 451억원씩 전기료를 할인받았다. 제조업들이 챙겨가는 전기료 할인율은 연간 11% 선이다. 한전은 자기네 경영수지는 엉망이면서도 글로벌 회사로 성장한 대기업에까지 원가(原價)를 밑도는 값에 전기를 공급해준다. \"제조업과 수출만이 살 길이다\" \"대기업을 키워야 한다\"가 국가 생존전략의 제1장 제1절에 등장하던 시절의 정책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로마의 휴일\'이 뜨던 1950년대 초반은 미국에 TV가 등장, 할리우드 영화가 위협받던 시절이었다. 정부 지원 덕분에 미국 영화계는 대형 스크린용 영화를 내놓으며 혁명적 변화를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할리우드 영화가 세계를 장악하면서 미국 정부는 혜택을 줄여나갔다.



한국 경제가 지금 내려야 할 결단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그동안 제조업과 수출기업에 제공하던 혜택을 줄이고 새로운 성장산업으로 그 혜택을 옮겨야 할 시기가 왔다. 제조업과 수출기업이 살아야 경제가 성장한다는 편식(偏食) 체질부터 버려야 한다. 수출제조업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효자업종이라는 생각은 과거에는 맞았으나 지금 와서는 틀린 말이 됐다.



10억원을 투자했을 때 전기·전자 업종에서는 5.2명의 일자리가 나온다(2009년 고용유발 통계). 자동차 업종은 8.6명의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전력업은 3명, 정유업은 고작 1명에 불과하다. 지난 50년간 누구나 취직하고 싶어하던 업종에서는 일자리가 거의 늘지 않았다. 반면에 똑같은 10억원을 투입했을 때 교육·보건업에서는 무려 18.5명에게 제공할 일자리가 나오고, 호텔숙박업은 16.5명, 도산매 유통업은 16.1명씩 일자리를 만들어낸다. 통계로 보면 전자회사에 주던 10억원의 세금 혜택을 회수해 그 혜택을 병원으로 돌리면 3배 넘는 일자리가 생겨날 수 있다는 계산이다.



히트곡(曲) 한 편을 만들기 위해 수십 번의 실패를 거듭하는 K-팝 제작회사에도 똑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 있다. 스마트폰 개발 실험에는 넉넉한 세금 감면을 해주면서 프랑스 파리 공연장을 달궈놓은 K-팝을 개발할 때 과연 얼마나 세금 혜택을 주었는가. 스마트폰이 달러벌이 상품으로 성공할 때까지 온갖 혜택을 제공했던 것처럼 K-팝 같은 한류(韓流) 상품에도 그렇게 사전투자를 할 생각은 없는 것인가.



우리 경제는 제조업에 의존하고, 수출기업에 의존하고, 대기업에 의존하는 3가지 의존증(依存症)에서 탈출해야 한다. 이제는 관광, 노후(老後)복지, 건강산업, 교육, 문화사업을 업신여기고 깔보던 틀을 깨야 한다. 소녀시대와 카라가 새로운 인기 춤을 개발하고 여행사가 산뜻한 여행코스를 발굴하는데 왜 정부가 연구개발비를 지원하지 못한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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