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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 칼럼/8.30]서울시민 215만 명에게 보내는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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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6,144회 작성일 2011-08-31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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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 수석논설위원



서울시 주민투표에 참여한 시민 215만 명은 침울한 기분일 듯하다. 이들은 각자 사명감에서 투표를 결심했다. 투표 날짜가 평일이라 직장인들은 꼭두새벽에 일어나거나 서둘러 귀가해야 투표를 할 수 있었다. 투표 장소는 어찌 된 사정인지 전보다 찾아가기 불편하거나 1층이 아닌 곳에 마련된 경우가 많아 노인 세대에겐 더 부담스러웠다. 그런데도 한 사람 두 사람 투표소를 향해 215만 명이 모였다. 투표율이 25.7%로 주민투표 성립요건인 33.3%를 넘지 못해 시간과 공을 들인 참여 시민들은 몹시 허탈했을 것이다.



사명감으로 한 투표에 ‘훼방’ 꼬리표



투표가 종료된 후 민주당의 반응은 이들의 심기를 더 불편하게 했다. 민주당 이용섭 대변인은 “착한 시민이 나쁜 시장을 준엄하게 심판했다”고 논평했다. 투표에 불참한 74.3%를 ‘착한 시민’으로 치켜세운 것이다. 투표 참여자들은 졸지에 ‘나쁜 시민’으로 몰리고 말았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한술 더 떴다. 그는 “오늘은 한국이 복지사회로 가는 역사적 전환점”이라며 “아이들의 미래를 지켜준 서울 시민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투표 참여자들은 아이들의 미래를 막아선 훼방꾼으로 전락했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가 “투표율 25.7%와 최근 ‘단계별 무상급식 안’을 지지하는 여론이 높은 점을 종합해 보면 사실상 오세훈 서울시장이 승리한 것”이라고 발언하자 좌파 진영은 기다렸다는 듯 집중 포화에 나섰다. ‘시골의사’ 박경철 씨는 ‘25%의 투표율이 사실상 승리라면 파리도 사실상 새’라고 했다. ‘수능시험에서 25%만 맞으면 사실상 만점’이라는 조롱 패러디도 나왔다.



투표 참여자들은 멋쩍으면서도 의아했다. 이번 주민투표의 계기를 제공했던 곽노현 서울시교육감도 지난해 6·2지방선거에서 전체 유권자 가운데 17.8%인 145만 명의 지지를 얻었을 뿐이다. 당시 투표율은 53.9%에 그쳤다. 만약 이번에 투표율 33.3%를 채웠더라면 좌파 진영이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했을지도 궁금했다. ‘파리’ ‘수능시험 25% 득점’ 같은 말이 투표 참여자 자신들을 지칭하는 얘기인 양 자꾸 귓전에 맴돌았다.



정치권과 여론조사기관이 자신들을 한나라당 지지자로 분류하는 것에도 마음이 상한다. 투표장에는 중년 이상의 얼굴들이 많이 보였지만 이들이 모두 오세훈 시장과 한나라당을 위해 투표했다고 보긴 어렵다. 그보다는 나라의 장래를 걱정해 투표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돈을 벌지 않고 쓰기만 하면 망하는 사례를 수도 없이 보아왔다. 정치인들이 권력 욕심에 대형 복지공약을 남발하고 있으니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었다.
훗날 젊은 세대에게 평가받을 것



요즘 자주 등장하는 ‘보편적 복지’라는 말도 생소하다. ‘보편적 복지’는 유럽에서 수입한 외국 이론이다. 나라마다 역사와 전통이 다르고 사회가 발전해온 과정도 제각각인데 외국의 복지 방식을 곧바로 한국 사회에 적용하는 일이 옳은 것인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 한국이 폐허 위에서 고속 성장을 이룩한 배경에 대해 국내외 학자들은 근면 성실 교육열 같은 한국적 덕목들이 동력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한다.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는 일을 높이 평가했으며 그런 의지가 있는 사람을 도와주려 했던 것이 우리 사회의 오랜 전통이었다. ‘보편적 복지’를 도입한다면 한국의 장점은 버리겠다는 것인지, 우리 정서와 여건에 맞는 복지 대안은 없는 것인지 자꾸 의문이 생긴다.



개봉하지 못한 투표함 속에는 전면 무상급식에 찬성하는 표도 들어 있었을 게 분명하다. 이런 투표 참여자들은 민주당 등 야권의 ‘나쁜 투표’ 거부 운동 속에서 눈총을 받으면서도 ‘투표는 민주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라는 소신에서 투표장으로 갔다. 주민투표 참여자 어느 누구도 자신들이 ‘나쁜 시민’으로 불리는 것에 수긍하지 않는다.



위안이 되는 점이 있긴 하다. 주민투표 직후 이뤄진 여론조사에서 단계적 무상급식을 지지하는 응답이 55.6%로 전면 무상급식(38.1%)보다 높게 나타났다. 전면 무상급식 지지도는 한때 80%가 넘었다. 많은 시민이 허상을 직시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이들 눈칫밥 먹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무상급식 공약에 어떤 정치적 의도도 없다고 강조해온 곽노현 교육감은 지난해 교육감선거 때 좌파 후보 단일화와 관련해 2억 원을 건넨 것으로 드러났다. 그의 도덕성 추락과 함께 무상급식 공약의 순수성도 타격을 입었다.



역시 가장 큰 위안거리는 훗날 역사적 평가다. 과도한 복지 지출로 국가재정 부담이 커지면 최종적으로 피해를 입는 측은 가장 오래 살 현재의 젊은 세대다. 언젠가 이들은 2011년 주민투표에서 나이 많은 세대들이 순수한 충정에서 투표장으로 향했던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줄 것이다. 그날이 오기까지 그리 오랜 세월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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