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희영 칼럼/8.13] 정책 실패의 날벼락 맞은 피해자들 > 공지사항

본문 바로가기
회원가입    로그인    회원사 가입      

공지사항

공지사항

[송희영 칼럼/8.13] 정책 실패의 날벼락 맞은 피해자들

페이지 정보

댓글 0건 조회 5,475회 작성일 2011-08-16 09:44

본문

\"\"
송희영 논설주간

저축은행 감독 소홀히 한 정부, 20조 넘는 공적자금 쏟아부으며 국민에게 계산서 청구…

법과 원칙만 내세우지 말고 도움 절실한 피해자 가려내 정책실패 속죄하는 길 고민해야


정부가 저축은행 피해자들을 구제해주지 못하겠다고 발을 뻗었다. 단호한 선 긋기다. 그 대신 생계비와 소송비용을 보태주고 취업 알선에 나서겠다고 했다. 원칙을 지키고 법을 따르자면 다른 도리가 없다. 그렇다면 4만명에 가까운 피해자들은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애당초 정부가 부실 저축은행을 꼼꼼히 감독했더라면 피해자는 줄었을 것이다. 작년 언젠가 엉터리 저축은행을 몇개 정리하자고 했을 때 일찌감치 칼질했더라면 울부짖는 소리를 더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G20 정상회담이 눈앞에 닥친 터라 \'큰 잔칫상 앞에 두고 재수 없게 재 뿌리지 말라\'며 덮었다가 피해를 키운 사람들은 누구였던가.



저축은행 정책은 10여년간 실패의 연속이었다. 믿고 큰돈을 맡길 만한 곳이라며 \'은행\' 간판을 붙여준 결정도 정부가 했고, 부동산 개발사업에 거액을 대출해주는 길도 정부가 터줬다. 저축은행업계에 부실 쓰레기가 부풀 대로 부풀어 곧 터질라치면 \'덮어두라\'는 지시가 위에서 떨어지고, 그때마다 정부는 1조7000억원짜리, 3조8000억원짜리의 구조조정기금이라는 황금 포장지로 저축은행의 \'산사태\' 조짐을 감췄다. 잔디를 잘못 깎으면 집값 떨어진다는 논리로 잡초가 1m까지 자라도록 내버려두는 정책 실패를 반복했다.



정부는 부실 저축은행 처리비용으로 올해 5조원을 더 준비했다. 앞으로 10조원 이상이 더 들어갈 것이라고 한다. 정부의 정책 실패와 대주주·경영진의 어처구니없는 경영 실패를 틀어막는 데 적어도 20조원 이상 투입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자 몇푼 더 받겠다고 5000만원 한도를 초과해 예금했던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데는 한 푼도 쓸 수 없다는 것이 정부가 내세운 법과 원칙이다.



경제 정책 책임자는 \"(국민) 성금 외에는 특별한 대책이 없다\"고 얄밉게 나왔다. 예금자의 실패는 예금자 스스로가 100% 책임지라는 말이다. 칼 같은 원칙이고 법에 딱 맞는 행정이다. 그렇다면 정책 당국자의 실패, 감독 책임자의 실패에 20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을 쓰라고 누가 \'성금\'을 거둬준 적이 있던가. 부도덕한 경영과 정책 실패의 구멍은 세금으로 메우며 계산서가 국민에게 돌려지고, 예금자의 실패는 본인에게 돌려지는 것이 이 나라의 원칙이고 법이다.



이 정부는 3년 전 중소기업들이 \'키코(KIKO)\'라는 외환 파생상품으로 큰 피해를 당했을 때도 야박하게 나왔다. 당시 줄잡아 738개 중소기업이 3조2000여억원의 피해를 입었고 40여개 회사가 폐업했다. 첨단기술로 성장한 유망 기업이 아깝게 무너졌는가 하면, 건실한 경영으로 대(代)를 이어온 전통기업도 금융상품 하나 잘못 골랐다가 주저앉았다.



키코라는 상품을 놓고 검찰이 줄곧 수사했으나 이번 달 들어서야 은행 쪽에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법원서도 여러 번 재판했으나 은행에 큰 책임이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중소기업들이 날벼락을 맞은 이유는 급격한 환율 변화 때문이었다. 정부는 그때 고환율 정책을 밀어붙였고 나중에는 금융위기까지 겹쳐 환율이 40~50%까지 치솟았다. 키코는 환율이 급변하면 기업이 큰 손해를 보는 상품이다.



그렇건만 정부 당국자들은 도리어 키코 상품을 팔았던 은행을 \'사기꾼\'으로 몰아붙였다. 그런 상품에 속아 넘어간 기업들도 책임져야 한다는 원칙론에 빠져 그들의 아픔을 달래주지 않았다.



피해자들이 불쌍하니까 법과 원칙을 깨뜨려서라도 도와주자는 말이 아니다. 국회의원들처럼 전액 보상을 해주자는 것도 아니다. 법과 원칙만 앞세워 정책 실패의 피해자들을 그때마다 따돌리고 외면한다면 우리 사회는 어느새 낙오자와 탈락자로 꽉 채워질 것이다.



정부는 고환율 정책으로 키코 기업들에 피해를 줬다고 사과한 적이 없다. 오히려 기업에 고스란히 피해를 떠넘기며 \'은행과 협의해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원칙을 지금껏 고수해왔다. 정부 책임은 없다는 발뺌이다. 하지만 정부는 정책자금을 넉넉하게 조성해 고환율로 인한 피해 기업들을 더 적극적으로 구제했어야 옳았다. 환율 결정도, 그 피해 구제도 모두 정부의 기본 역할이다.



저축은행 피해자 중에도 상당한 자산가가 있고 억울한 처지를 과장해 말하는 사람도 있다고 들린다. 하지만 70세 넘은 퇴직자, 청소부, 파출부 등 부실 저축은행에 맡겨두었던 예금액이 전 재산인 피해자가 적지 않다. 도움이 절실한 피해자는 금융회사 예금과 납세액, 보유 부동산 등 행정부처의 기록을 조사하면 충분히 가려낼 수 있을 것이다.



그들도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겠지만 매정한 \'법과 원칙\'만이 유일한 정답이 아니라는 걸 정부는 알아야 한다. 정책 실패에 조금이나마 속죄(贖罪)하는 길을 고민해봐야 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124 한국프레스센터 1311호   전화: 02-723-7443   팩스: 02-739-1985
Copyright ©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All rights reserved.
회원사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