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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 칼럼/8.3]레닌은 고향에서도 잊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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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8,301회 작성일 2011-08-03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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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 논설위원



러시아의 지방도시 울리야놉스크는 사회주의 혁명가 블라디미르 레닌(1870∼1924)의 고향이다. 레닌의 탄생 100주년을 맞았던 1970년이 이 도시의 전성기였다. 그해 레닌이 태어난 집 주변에 대형 기념관이 세워졌고, 시내를 가로지르는 넓은 도로가 개통됐다. 한 해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이 도시로 몰려왔다. 1917년 러시아에서 세계 최초로 사회주의 혁명을 실현한 ‘영웅’의 흔적을 직접 살펴보려는 순례자들이었다.



“특히 젊은 세대는 그를 모른다”



지난주 기차 편으로 울리야놉스크에 도착했을 때 역 주변은 한낮인데도 인적이 드물었다. 시내로 향하는 도로 위에는 낡은 노면(路面)전차가 지친 듯 느리게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전차는 제작된 지 30년은 족히 넘어보였다. 전차가 다니는 철로 위에는 여름 햇볕에 높이 자란 잡초들이 무성했다. 도시의 모습은 1970년대에서 그대로 멈춰 있는 인상이었다. 요즘 울리야놉스크를 찾는 관광객은 한 해 4만∼5만 명으로 격감했다. 대부분 러시아인이고 외국 사람은 중국인 정도라고 했다.



레닌은 이 도시에서 태어나 17세까지 살았다. 레닌의 아버지는 이 지역 교육행정 책임자였다. 800여 개의 학교를 그의 손으로 세웠다. 레닌이 살았던 집은 잘 보존돼 있었다. 레닌의 아버지는 자녀 교육에 상당한 열의를 지닌 듯 많은 책과 함께 지구의(地球儀) 등 학습기자재까지 갖춰놓고 있었다. 레닌뿐 아니라 그의 형제들이 모두 수재로 소문났던 것은 이런 가정환경에서 비롯된 듯했다.



울리야놉스크에는 레닌이 번갈아 살았던 4채의 주택과 레닌이 다녔던 학교, 레닌 아버지의 묘지 등 레닌의 체취가 곳곳에 남아 있다. 하지만 이 도시 관계자들은 레닌의 고향이라는 점을 오히려 부담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이 도시가 속해 있는 울리야놉스크 주의 타티야나 키릴로바 내무부 장관은 “울리야놉스크는 문화예술이 발달한 곳으로 2020년 세계 문화수도로 지정받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며 레닌보다 이 도시의 문화예술을 앞세웠다. 다른 관계자는 “우리는 레닌을 잊은 지 오래”라며 “특히 젊은 세대는 레닌을 모른다”고 전했다.



이 도시의 관심사는 경제와 인구 문제에 쏠려 있다. 모로조프 이바노비치 주지사는 이곳이 러시아에서 가장 개방적인 지역이라며 외국 기업의 유치에 적극적이다. 2억2000만 달러를 투자한 맥주회사 SAB밀러 등 20여 개 외국 기업이 이미 둥지를 틀었다. 우수한 대학을 보유해야 지역이 활성화된다면서 이 지역 명문인 울리야놉스크주립대의 대학 순위를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의 좌표 설정에 참고할 만



인구 감소는 러시아의 최대 고민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전쟁터로 나간 이 도시 남자들 가운데 3분의 2가 돌아오지 못했다. 러시아 전체로는 30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현재의 러시아 인구는 1억4290만 명이다. 소련 시절에는 먹을 것이 부족해 일부러 아이를 낳지 않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그때의 후유증이 좀처럼 인구 증가의 선순환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울리야놉스크 주는 1명의 자녀를 낳을 경우 신용대출금의 25%를 탕감해주고 2자녀는 50%, 3자녀 이상은 전액 면제해주는 등 다양한 출산장려책을 펴고 있다.



레닌의 본명은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다. 울리야놉스크라는 도시 이름은 1924년 레닌이 사망한 직후 레닌의 이름을 따 개명(改名)한 것이다. 이 도시 관계자는 “도시 이름을 원래 이 지역 명칭인 심비르스크로 변경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20세기 세계를 공산권과 자유세계로 양분시키며 인류의 삶을 뒤흔들었던 레닌은 고향에서조차 지워지고 잊혀지고 있다.



레닌은 저서 ‘가난한 농민에게 바란다’에서 “인민을 빈곤과 속박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부유계층과 싸운다”고 천명했다. 그러나 레닌이 구축한 소련 체제는 빈곤과 속박 어느 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1991년 붕괴되고 말았다. 오늘날 근로자의 한 달 평균 임금이 500달러(약 52만 원)에 그치고 있는 울리야놉스크의 현실은 그 실패의 여정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2008년 촛불시위 때 우리 사회 좌파 진영에서는 레닌에 대한 관심이 고조됐다. 체제를 폭력으로 무너뜨린 레닌이 그리웠던 모양이다. 얼마 전부터 서점가에는 젊은 세대의 분노를 부채질하는 듯한 레닌 관련 책들이 등장하고 있다. 일부 인사들이 한때 신봉했던 레닌에 대한 향수가 고개를 드는 듯하다.



모스크바에서 만난 러시아 국립인문대 피보바르 이오시포비치 총장은 “소련의 실패는 사회주의라는 알약을 한 알만 먹었어야 하는데 세 알이나 먹어 비롯된 것”이라고 비유했다. 최근 포퓰리즘의 홍수 속에서 우리 사회가 가야 할 방향에 대한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하지만 기본이 흔들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럴 때 레닌에게 이별을 고한 러시아 사례를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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