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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영 칼럼/7.30] 세계 2위 경제대국이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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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6,341회 작성일 2011-08-01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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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이후 최대 사건으로 WTO 가입 꼽는 중국인들

\'무역전쟁 승리자\' 자부하면서도 때로는 보호받아야 할 약자 행세

성장 둔화·물가 상승 와중에 터진 고속철 참사는 신뢰 위기 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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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영 논설주간



중국 관영언론 \'환구시보(環球時報)\'의 몇달 전 여론조사 결과가 흥미롭다. \"2000년 이후 최대 사건을 꼽아달라\"고 중국인들에게 설문지를 돌렸더니 2008년 베이징올림픽은 2위였다. 3위는 쓰촨대지진, 4위는 유인(有人)우주선 발사였고, 뒤를 이어 경제규모가 일본을 누르고 세계 2위로 커진 것을 선정했다.



1위는 놀랍게도 \'루스(入世)\'였다.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뜻하는 단어다. 10년 전의 일을 최근의 사건보다 더 평가하고, 무역전쟁의 금메달을 올림픽 금메달보다 더 자랑스러워한다는 증거다.



1978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 이래 중국 경제가 내린 가장 극적인 결단은 WTO 가입이다. 그전까지는 여러 관세 감면 혜택을 받아가며 수출했으나, WTO 가입 후에는 그런 특혜를 스스로 포기해야 했다. 다른 나라들과 똑같은 운동장에서 똑같은 룰을 지키며 싸우는 글로벌 경쟁에 뛰어들었던 셈이다.



\'루스\' 이래 10년 무역전쟁은 중국을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올려놨다. 하지만 중국 쪽 평론가들이 자주 쓰는 비유법은 따로 있다. \"1978년에는 자본주의가 중국을 구했고, 2008년에는 중국이 자본주의를 구했다.\" 중국은 엄청난 무역흑자 덕분에 3조달러가 넘는 외환보유고를 쌓았다. 그 차이나 머니가 미국의 금융위기가 더 악화되는 것을 막고 세계 경제 부양을 위한 밑천으로 쓰였다는 자부심이 지난 2~3년 새 한껏 높아졌다.



그렇다면 과거의 세계 2위 일본과 지금의 세계 2위 중국은 무엇이 다를까. 어느 일본 언론인은 \"세계 질서를 보는 눈이 전혀 다르다\"고 요약했다. 1968년 세계 2위 자리에 등극했을 때 일본은 달러 중심 체제를 무너뜨리겠다는 야심을 표현한 적이 없다. 미국에 외교와 안보를 의존하고 달러 지배 질서 속에서 번영을 이루겠다는 국가전략은 그 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무역 흑자로 남는 여윳돈을 미국 경제를 위해 \'헌납\'하는 굴욕도 참아내곤 했다.



\"중국은 정반대입니다. 달러 지배 체제를 깨야 한다고 주장하며 세계 질서 재편을 노리고 있죠.\" 중국은 달러체제 개편을 공식 언급할뿐더러, 항공모함·스텔스전투기를 만들고 우주에서도 미국에 도전하려는 야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세계 질서를 보는 시각만 다른 것은 아니다. 1969년 일본 정부가 펴낸 \'경제백서\'는 경제강국(强國)이 됐다는 전제 아래 개발도상국들과의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뒤처진 나라를 도와주자는 인식이 뚜렷했다. 그때부터 늘기 시작한 해외원조금(ODA)이 1990년대 10년 동안에는 미국을 누르고 세계 최고 금액까지 도달했다. 반면에 중국 국가원수의 연설문에서는 \"중국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개도국\"(후진타오 주석)이라는 표현이 사라지지 않는다. 지적재산권 보호나 환경문제가 거론될라치면 한술 더 떠 \'보호받아야 할 약자\'라는 논리를 들고나온다. 뒤처진 나라에 원조해준다는 분위기보다는 자원확보를 위해 후진국 투자에 열중하는 인상을 주고 있다.



세계 2위 경제강대국이 \'루스 전쟁의 승리자\'를 자부하면서도 때로는 \'보호받아야 할 개도국\'이란 방패에 몸을 숨기는 이중성을 감추지 않는 셈이다. 이런 중국을 보는 미국과 유럽의 시각은 최근 들어 회의론(懷疑論)으로 크게 기울고 있다. 중국의 성장이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진맥과 중국의 추락에 대비하라는 처방도 이어진다. 물가가 너무 뛰고 부실이 엄청나게 쌓였다는 얘기가 그치지 않는다.



이 와중에 터진 고속철도 충돌사고는 단순한 참사로 보이지 않는다. 중국의 고속철은 일본의 신칸센을 따라잡았다고 홍보하며 또 하나의 \'루스 전쟁\'에서 이겼다는 자부심이 담긴 국책사업이었다. 이처럼 상징성이 강한 국가 프로젝트의 붕괴는 자부심에 생채기를 남길 수밖에 없다.



쉴 새 없이 달려온 중국 경제는 당(黨)과 정부가 엔진 가동을 독점해왔고, 그 성공적인 운행에 국민신뢰가 높았다. 그러나 40년 동안 승리에 도취해 있던 국민 사이에 \'속았다\'는 여론이 자리 잡으면 당과 정부에 대한 믿음은 급속히 추락할 것이다. 신뢰의 붕괴는 부동산 폭락이나 물가 상승보다 더 경제를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곤 한다.



그러지 않아도 중국은 빈부격차가 심하고 고학력 청년층의 실업이 심각해 사회불안이 간단치 않은 선까지 치솟았다. 국민이 일단 지도층에 낙담하면 인간의 이성, 인간의 선(善)까지 의심하기 시작한다. 온 사회에 불신감이 팽배하면 작은 불황으로 끝날 일이 대형 불황으로 번지는 것을 우리는 여러 차례 목격했다. 때마침 중국은 정권교체기에 들어갔다. 조그만 위기에도 대응이 늦어지는 국면이다. 중국 경제에서 눈과 귀를 뗄 수 없는 순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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