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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식 칼럼/7.27] 레이건과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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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8,012회 작성일 2011-07-29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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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식/논설위원



1980년대 동서냉전은 2010년대 한반도의 남북대치와 의외로 유사한 부분이 많다. 특히 1981년부터 1989년까지 제40대 미국 대통령으로 재직하면서 서방의 승리로 냉전을 종식시킨 검색하기\" href=\"http://search.daum.net/search?w=tot&rtupcoll=NNS&q=%B7%CE%B3%CE%B5%E5+%B7%B9%C0%CC%B0%C7&nil_profile=newskwd&nil_id=v20110727135113890\" target=\"new\" class=\"keyword\">로널드 레이건의 리더십은 대북정책을 놓고 오락가락하는 이명박 정권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



멀리는 1917년 검색하기\" href=\"http://search.daum.net/search?w=tot&rtupcoll=NNS&q=%B7%AF%BD%C3%BE%C6%C7%F5%B8%ED&nil_profile=newskwd&nil_id=v20110727135113890\" target=\"new\" class=\"keyword\">러시아혁명 이후, 가깝게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 이후 계속된 자본주의 대(對) 공산주의, 민주주의 대 검색하기\" href=\"http://search.daum.net/search?w=tot&rtupcoll=NNS&q=%C0%FC%C3%BC%C1%D6%C0%C7&nil_profile=newskwd&nil_id=v20110727135113890\" target=\"new\" class=\"keyword\">전체주의 간 체제 대결의 윤곽이 1970년대를 거치며 분명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1980년 레이건은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로서, 현직 대통령인 검색하기\" href=\"http://search.daum.net/search?w=tot&rtupcoll=NNS&q=%C1%F6%B9%CC+%C4%AB%C5%CD&nil_profile=newskwd&nil_id=v20110727135113890\" target=\"new\" class=\"keyword\">지미 카터 민주당 후보와 맞대결을 펼쳤다. 고전하던 민주당은 선거전을 \'검색하기\" href=\"http://search.daum.net/search?w=tot&rtupcoll=NNS&q=%B5%A5%C5%C1%C6%AE&nil_profile=newskwd&nil_id=v20110727135113890\" target=\"new\" class=\"keyword\">데탕트검색하기\" href=\"http://search.daum.net/search?w=tot&rtupcoll=NNS&q=%C7%D9%C0%FC%C0%EF&nil_profile=newskwd&nil_id=v20110727135113890\" target=\"new\" class=\"keyword\">핵전쟁\'으로 몰아갔다. 카터는 \"레이건은 미국을 전쟁으로 끌고 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레이건은 전임 정권들이 소련에 대해 유화적 태도를 취함으로써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미국민은 경제와 안보에 있어서 보수적 가치를 내세운 레이건을 선택했다. 1981년 1월 첫 기자회견에서 \"지금까지의 데탕트는 소련이 목표를 추구하는 일방통행로였다\"면서 \"소련은 거짓말하고, 범죄를 저지르며 \'세계적 공산국가\'를 추구한다\"고 비판했다. 소련으로부터 진정성을 발견하지 못한 그는 \"나도 핵전쟁을 바라지 않지만, 그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에 차이가 있다\"며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 부르고, 검색하기\" href=\"http://search.daum.net/search?w=tot&rtupcoll=NNS&q=%BD%BA%C5%B8%BF%F6%C1%EE&nil_profile=newskwd&nil_id=v20110727135113890\" target=\"new\" class=\"keyword\">스타워즈로 불리는 전략방위계획(SDI)을 발표했다.



레이건은 \"우리가 옳고 그들이 나쁘며, 우리가 이기고 그들이 패배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 때문에 소련의 변화가 확인될 때까지는 정상회담을 갖지 않았다. 1982년 11월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1984년 2월 유리 검색하기\" href=\"http://search.daum.net/search?w=tot&rtupcoll=NNS&q=%BE%C8%B5%E5%B7%CE%C6%F7%C7%C1&nil_profile=newskwd&nil_id=v20110727135113890\" target=\"new\" class=\"keyword\">안드로포프 서기장이 사망했을 때 참모들이 조문 형태의 소련 방문을 건의했으나 모두 거부했다. 1984년 재선 캠페인 과정에서도 허버트 후버 대통령 이후 50년 동안 소련의 카운터파트와 회담을 갖지 않은 유일한 대통령이라는 비난을 받았으나 개의치 않았다. 소련에서 검색하기\" href=\"http://search.daum.net/search?w=tot&rtupcoll=NNS&q=%B9%CC%C7%CF%C0%CF+%B0%ED%B8%A3%B9%D9%C3%CA%C7%C1&nil_profile=newskwd&nil_id=v20110727135113890\" target=\"new\" class=\"keyword\">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집권한 뒤인 1985년 11월에야 스위스 제네바에서 정상회담을 가졌으며, 모스크바를 방문한 것은 재선 임기도 얼마 남지 않았던 1988년 5월이었다. 이때에도 고르바초프 면전에서 \'믿어라, 그러나 확인하라\'는 소련 속담을 인용하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의 퇴임 10개월 뒤 검색하기\" href=\"http://search.daum.net/search?w=tot&rtupcoll=NNS&q=%BA%A3%B8%A6%B8%B0+%C0%E5%BA%AE&nil_profile=newskwd&nil_id=v20110727135113890\" target=\"new\" class=\"keyword\">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35개월 뒤 소련은 사라졌다.



한반도의 사정은 어떤가. 대한민국이 옳고 북한 체제는 틀렸으며, 대한민국이 승리하고 김정일 정권이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자명하다. 대한민국 국민이 압도적 지지로 이명박 보수정권을 출범시킨 배경이다. 이 정권은 한동안 대북 원칙을 지켰으나 임기말이 다가오면서 남북정상회담을 구걸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정권이 내세우는 근거는 세가지다. 첫째, 초강대국 미국과 달리 주변국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데, 미국이 북한과 대화로 선회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 행정부의 누구도 북한이 핵개발을 쉽게 포기할 것으로 보고 있지 않으며, 대화 제스처는 북한의 추가도발에 대비해 명분을 쌓으려는 측면이 강하다. 특히 의회는 인도적 식량지원조차 반대할 정도로 강경하다. 둘째, 협상이 없으면 북한이 더욱 핵개발에 매진할 것이란 우려다. 그러나 북한은 6자회담이나 남북대화를 하면서 한순간도 핵개발을 멈추지 않았다. 셋째, 남북대화를 하지 않으면 중국의 영향력만 키울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달러와 기술, 일자리를 주는 \'개성공단 방식\'으로 북한에 투자할 나라는 대한민국 말고는 없다.



지도자들은 어떤 레거시(legacy)를 남기느냐가 중요하다. 레이건은 미·소 정상회담을 거부했다는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확고한 철학과 분명한 입장으로 냉전을 종식시켰다는 레거시를 남겼다. 미국은 물론 유럽의 구(舊)공산권 국가들에서도 영웅으로 추앙받는 이유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반대의 길을 가려 한다. 김정일 체제만 연명시킨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아류라는 레거시를 남길 수도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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