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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협 임원 칼럼] 고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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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495회 작성일 2016-01-25 0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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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만 30년인 2014년에 3주일간의 안식년 휴가를 명 받았습니다. 과거에 안식년 휴가는 제대로 쓸 수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만, 요즘은 회사에서 가라고 ‘독촉’을 합니다.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남미 여행에 대해 듣게 됐습니다. 세미 배낭 여행으로 가면 비용도 생각만큼 많이 들지는 않는다고 했습니다. 집사람도 3주 정도의 긴 시간이 아니면 갈 수 없는 곳을 가보자고 하더군요. 그래서 남미로 결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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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훈 조선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걱정은 고산증이었습니다. 사전 취재 결과 남미 여행지의 상당수가 안데스 산맥 고원지대에 있고 그 곳 해발이 3000~5000m라는데, 이 정도 고도면 대부분의 사람이 고산증을 겪는다고 합니다. 필자는 고산증 경험이 있습니다. 후반 2002년 월드컵 개최지를 놓고 한국과 일본이 경쟁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FIFA 회의를 취재하러 갔다가 일정이 끝난뒤 하루 남는 시간에 융프라우에 올랐습니다.

융프라우 정상에 가면 한국 라면을 준다기에 그것도 작은 기대로 담고 올랐습니다. 막상 도착하니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습니다. 식욕이 없어진 것만이 아니라 두통도 시작됐습니다. 장거리 달리기를 할 때 입에서 단내가 난다고 하는 그 비슷한 증상도 나타났습니다. 만사가 귀찮아 그냥 식당에 앉아 있다 내려왔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그게 바로 고산증이라고 하더군요.

알아보니 안데스 고원지대는 거의 대부분 융프라우보다 높다고 했습니다. ‘그 증세를 또 겪어야 하나 심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아는 의사들에게 물어물어 대비책을 세웠습니다. 이뇨제 계열의 약을 많이 쓴다고 했습니다. 발기부전 치료제도 도움이 된다고 했습니다. 출발하는 날까지 모인 각종 ‘∼그라’ 계열이 한 웅큼에 달해 집사람과 짐을 싸다 한참 웃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 약들은 소용없었습니다.


첫 도착지는 페루 리마. 리마는 항구 도시여서 고산증은 없었습니다. 문제는 다음 행선지인 쿠스코였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주 비슷한 쿠스코는 마추픽추로 가는 관문이기도 했습니다. 이 곳 해발 고도가 3000m 중반이었습니다. 공항에 내리니 ‘빨리 걷지 말라’는 주의가 들려왔습니다. 공항서 호텔로 이동하는 내내 ‘언제 고산증이 시작되나’는 긴장과 걱정 뿐이었습니다. 가벼운 두통이 오고 행동이 약간 느려진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시작이구나’ 했는데 의외로 견딜만했습니다. 문제는 아무 걱정하지 않았던 집사람과 다른 일행들이었습니다. 집사람도 과거 융프라우에 올랐는데 아무 증세도 느끼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고산증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쿠스코에서 구토 증세를 느끼는 등 필자보다 더 심각한 상황에 봉착하고 말았습니다.

고산증은 산소 부족 때문에 생기는 증세입니다. 해발 4000m가 넘으면 산소 농도가 50% 정도로 줄어든다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 몸은 ‘비상계엄’으로 들어가 산소를 소모하는 움직임을 최소화합니다. 두통도 그 일환이라고 합니다. 가장 심각한 것은 구토입니다. 위에서 음식물을 소화시킬때 많은 산소가 소모되는데 산소부족 비상계엄이 걸리면 우리 몸은 위에 있는 음식물을 강제로 밖으로 배출해버립니다. 사람의 의지로 조절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 직접 목격했습니다. 토하고 토하다 갈비뼈 부근의 근육에 힘이 빠지고 쥐가 나 토하지 못하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그런데 심각하던 분이 쿠스코의 병원에서 산소호흡기를 두세시간 부착했더니 언제 그랬냐는듯 회복됐습니다.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고산병’이라고 하지 않고 ‘고산증’이라고 한답니다. 증세의 원인만 해소되면 금방 낫는거지요. 재미있는 것은 고산지대에 사는 사람을 비행기에 태워 해발이 ‘0’에 가까운 바다 부근에 내려놓으면 고산증 비슷한 증세를 겪는다고 합니다.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그럴듯 했습니다.

남미여행 중 가장 높이 올라갔던 건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 지대에 있는 간헐천과 노천 온천 이었습니다. 해발 4900m라고 했습니다. 고원지대에 올라온지 일주일이 넘었는데도 완전히 적응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말 몇마디에도 머리가 아팠습니다. 그 곳에서 조금 더 가면 칠레와의 국경입니다. 국경을 통과하니 길이 내리막으로 바뀝니다. 얼마 안있어 길은 거의 스키장 슬로프 같은 경사로 바뀌더니 그 각도로 일직선 내리막을 내달립니다. 해발고도가 표시되는 시계를 차고 있던 분이 고도 중계를 하시는데 모든 일행이 고도가 50m, 100m 낮아질 때마다 탄성을 지릅니다. 그렇게 2000m 아래로 내려오니 머리 아프다는 사람, 토할 것 같다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인간의 생존 조건에서 고도가 이렇게 중요한 줄은 처음 알았습니다.

그 버스 안에서 ‘낮아진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어느새 필자도 신문사에서 윗 사람 보다는 아랫 사람이 훨씬 더많은 위치에 있게 됐습니다. 지금 필자 머릿 속을 채운 걱정, 고민들이 인생 고산증이 아닐까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저 앞 어디쯤 있을 내리막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맞을 것인가 하는데까지 생각이 미쳤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내려가면 더 이상 머리는 안 아프겠지.’ 집사람에게 얘기했더니 ‘고산증 개똥철학’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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