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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형 칼럼/9.5] 중산층은 왜 화를 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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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9,287회 작성일 2013-09-16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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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에게 세금을 더 거두려다 민심이 크게 동요하자 박근혜 대통령이 단번에 항복한(?) 사건은 매우 독특하다. 내년 재정이 크게 부족한 정부는 국민 계층별 대표를 운동장에 모아놓고 \"어이, 거기 두 줄 일어서. 당신들이 세금을 더 내야 하는 거야\"라고 찍어준 격이다. 그 두 줄 중 하나는 대기업이고 다른 한 줄은 월급쟁이 계층이다. 기업은 그동안 세액 감면을 많이 받았으니 머리를 긁적이고 앉았고 월급쟁이들은 크게 성을 냈다. \"뭐라고? 내가 여기에 있는 다른 어떤 계층보다 세금을 더 내야 한다고?\" 그들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한국 중산층은 자신이 중산층이라 생각하지 않고, 사실 소득세법도 너무 엉성하다. 미국 월급쟁이 세제를 보면 가장 혼자 버는 외벌이와 부부가 함께 버는 집, 독신자 등이 모두 다르다. 가령 외벌이 가장이 약 20만달러(약 2억2000만원)를 벌었을 때 세율이 28%인데 독신자는 33%다. 독일은 최고세율 45% 적용 대상이 독신자는 25만유로, 기혼가구 통합신고는 50만유로다. 한국은 이런 세심한 배려가 없다. 가장 혼자 1억원 버는 집이 부부가 각각 5000만원 버는 집보다 훨씬 세율이 가혹하다. 이렇게 엉터리 행정을 하니 중산층이 화가 나는 것이다.



중산층은 누구인가? 중산층 기준에 악기를 다룬다거나 한 해 한두 번 외국여행을 한다는 등 영국ㆍ프랑스식 고상한 분류법도 있으나 어디나 통하는 기준은 역시 소득이다. 무항산(無恒産)이면 무항심(無恒心)이라는 인간 본성에 관한 것이다. 지갑이 두둑해지면 IQ마저 높아진다는 하버드 의대 보고서가 있지 않은가.



OECD가 세계 각국을 비교하기 위해 통계치로 쓰는 기제는 국민 전체에서 한중간 소득에 ±50%를 하는 수준이다. 한국은 4418만원이 기준이니까 약 2200만~6600만원 수준으로 보는 것이다. 이런 기계적인 통계만 제시하니 국민이 불신한다. 레스터 서로 교수 등이 제시한 중위소득 75~125%의 보조지표를 만들 필요가 있다. 영국인에게도 중산층 개념을 물으면 결혼 후 내 집 장만과 자녀 2명, 장래에 대한 낙관이 있어야 한다고 답한다.



사실 중산층은 주관적이다. 또한 인간은 비교의 동물이다. 여름휴가 때 외국인 관광객들은 거기서 다른 인류와 자신을 비교한다. 한국 내에서 중산층이 소득 10만달러인 노르웨이나 카타르 사람에 견줘 꿀리지 않고 싶다. 사회 상황에 따라 인식도 변한다. 국가가 발전하고 국민이 자신감에 넘치면, 사회 시스템이 승자를 패자보다 많이 만들어내면 중산층 답변율은 늘어난다. 중국인 절반(48%)은 자신을 중산층이라 하고 한국은 15.8%다. 자녀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더 잘살 것이라는 응답률은 미국이 38%, 영국ㆍ프랑스ㆍ일본이 15%쯤이지만 중국ㆍ브라질은 80%다.



중산층은 사회를 안정시키는 추(錘) 같은 것이다. 또한 중위소득 비율이 높아야 경제성장률이 높다. 이스털리는 \"중위 60%층 소득비중이 경제 발전 속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연구 결과를 입증했다. 그렇다. 중산층이 말라붙으면 그 나라 경제는 발전할 수 없다. 한국인 의식에 중산층 응답률이 낮은 것은 경제구조가 취약해져가고 있다는 비상벨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엊그제 청와대에서 중산층 70% 복원 대책을 논의했다. 그 해법으로 고용률 70%를 제시했다. 이는 본말이 바뀐 것이다. 경제 성장이 돼야 좋은 일자리가 나오고, 성장을 위해선 투자와 소비가 촉진돼야 한다. 마침 선진국 경제가 살아난다니 그 파도를 잘 탈 대책이 긴요하다. 또한 중산층이 누군지, 세금을 더 내야 할 부자가 누군지 확실한 통계 구축이 필요하다. 한국 통계는 아직 인별로 소득 합계, 소득과 자산 총계 같은 인프라스트럭처도 없다. 기획재정부와 통계청 깜깜이로 세제개편안을 냈다가 박 대통령이 순식간에 두 손을 번쩍 든 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김세형 매일경제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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