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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영 칼럼] 김중수 총재 건드리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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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5,020회 작성일 2013-05-06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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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들 잇따른 금융완화에도 홀로 금리 내리지 않은 한국은행… 인하 논리만큼 동결 이유도 많아

청와대·與가 한은 총재 자극 \'중앙은행 독립\' 발언까지 나와

제 할일 했는지 훗날 평가받을 것



1980년대 \'미스터 고금리(高金利)\'로 유명했던 볼커 전 미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평생 가장 쓰라린 추억\'이라고 고백한 일화가 있다. 은퇴 후 국회의사당에 간 김에 직장 동료이자 오랜 친구였던 한 하원 의원에게 전화를 넣었다. 그는 볼커의 정책에는 반대했었다. 비서를 통해 돌아온 답변은 \"만날 일 없다\"는 거절이었다. 그의 고금리 고집은 훗날 나라 경제를 회복시켰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우정을 갈라놓을 만큼 고통스러운 것이었음을 볼커는 그때 깨달았다고 했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금리를 내리지 않았다. 새 정권 인사들이 금리 인하를 요구했으나 단칼에 거절했다. 며칠 전 공개된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을 보니 당시 금통위원 6명의 의견은 3대3으로 갈렸다. 김 총재가 결정적 한 표를 던지는 바람에 금리가 동결됐다고 한다.



선진국들은 금리를 내릴 수 있는 밑바닥까지 내렸다. 금융 완화 경쟁도 한창이다. 하지만 한국 경제의 상황이 그쪽 동네와 다르다는 김 총재의 판단은 맞는다. 지금 우리 금리가 너무 높은 것도 아니고, 금리를 내려봤자 경기 부양 효과가 나타날 것 같지도 않다. 은행 직원들이 대출금을 내줄 만한 기업을 찾느라 고생하는 판국에 금리를 내렸다고 한철 만난 벌떼처럼 기업 투자가 살아날 리 만무하다.



우리 돈은 해외시장에서 통용되지 않는 통화여서 금융 완화 정책을 펴본들 환율이 올라갈 것도 아니다. 금융 완화란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우리에게는 입맛을 돋우는 첨단 요리로 보이지만 달러·유로·엔처럼 강한 통화를 가진 나라에서나 쓸모있는 정책 도구다. 지폐 인쇄기를 고속 가동해도 풀린 돈이 물가를 부추기다 은행으로 되돌아오거나 삼성전자 같은 회사의 금고에만 차곡차곡 쌓일 것이다.



중앙은행은 약발을 알 수 없는 금리 인하 처방전을 함부로 쓸 수 없다. 김 총재는 더구나 1분기 성장률이 0.8~0.9% 수준에서 만족스럽게 나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한국은행 고위층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 잠정적 경기 추세 통계를 매일 받아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김 총재는 금리를 내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였을 것이다. 인하해야 할 이유를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다면 내릴 필요가 없는 근거를 대는 데도 다섯 손가락을 쉽게 꼽을 수 있는 시기였다. 그는 결국 금리를 내리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그 후 그가 밟아간 행적과 내뱉은 발언을 통해 왜 그가 금리를 동결했는지는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김 총재를 쓸데없이 자극한 것은 청와대와 새누리당이었다. 조원동 청와대 수석이 금리를 내리라고 옆구리를 찌르더니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총무가 대놓고 압력을 넣었다. 김 총재는 매번 참석하던 경제 장관들의 청와대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다. 신흥 권력의 선전포고에 정면 저항하는 행동이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금리 조정 시기를 잘못 잡은 게 아니냐고 추궁할 때도 양보 없이 맞받아치곤 했다.



그는 이어 국회에 나가서는 \"중앙은행 독립은 어느 나라에서나 중요한 가치\"라며 내년 3월 끝나는 총재 임기를 지키겠다고 답변했다. 김 총재 입에서 \'중앙은행 독립\'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순간 누구보다 놀란 사람은 한국은행 임직원이었다. 그는 취임 때부터 \"한국은행도 정부의 일원\"이라며 정부 정책에 협조하라는 말을 간부들에게 자주 해왔다.



그러던 그가 느닷없이 독립투사로 돌변하다 보니 자신을 총재에 임명해준 이명박 정부를 대표해 친박 세력과 맞선다는 말부터 나왔다. 경기를 무시한 채 자존심과 감정을 앞세워 고집부린다는 뒷말도 돌았다. 악성 험담에 시달릴 만한 입장 변경이었다.



그에게 한은 총재 자리는 15번째 직장이다. 교수에서 연구원장·대사(大使)·대학총장·청와대수석으로 일터를 바꾸면서도 그때마다 그는 훌훌 자리를 털고 나갔다. 그런 그가 인생의 마지막 장(章)에선 \'한국은행 독립 공화국\'의 투사로 남고 싶은 욕심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의 발언과 행동을 보면 권력 실세들이 그를 압박하면 할수록 반발이 거세지리라는 것만은 짐작할 수 있다.



김 총재는 오는 9일 다시 금리를 결정해야 한다. 엇갈리는 지표들이 나왔으나 우울한 경기 흐름은 변하지 않았다. 금리를 내려야 할 논리도, 내리지 말아야 할 이유도 한 달 전과 똑같다.



그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한 가지만은 알아야 한다. 이번 불경기에 중앙은행 총재로서 제 할 일을 했는지는 훗날 냉혹하게 평가받게 된다는 점이다. 볼커는 우정을 잃고 정책을 얻었다. 김 총재는 \'사람 변했다\'는 말을 들으며 자기 정책을 지킬 것인지, 아니면 고집을 꺾고 평소 걸어왔던 길로 돌아갈지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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