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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영 칼럼/3.9] 너무 다른 韓·日 새 정부의 초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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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9,341회 작성일 2013-03-11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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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풀기, 재정지출 확대, 규제 완화

\'화살 3개\' 앞세운 日 아베 정권은 두달만에 모처럼 호황 불러와…

복지, 일자리 창출, 경제 민주화

박 대통령의 \'과녁 3개\'는 혼선… 경기 추락하는데 진로는 불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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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희영 논설주간

신문사에 광고가 밀린다고 한다. 광고를 내달라는 광고주와 지면이 없다는 신문사 간의 승강이도 여러 해 만에 겪는다. 긴자와 아카사카의 술집도 들떴다. 아베 정권 출범 2개월이 몰고 온 일본의 풍경이다. 누군가가 \"모처럼 고이즈미 시대가 다시 왔다\"고 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5년 5개월 동안 재임했다. 2006년 9월 말 퇴임 때까지 평균 지지율 64%를 유지했다. 도심 재개발, 규제 완화, 엔화 저평가로 호황을 만들었던 지도자였다. 고이즈미 이후 7~8년 만에 좋은 기분 맛본다는 일본인들의 분위기가 생생하게 전해져 온다.


서울의 봄은 어수선하다. 경기(景氣)는 언제까지 더 가라앉을 것인지 종잡을 수 없다. 증권회사와 자산운용회사들 사이에서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공포감이 감돌고 있다. 기업들은 환율이 불안해 수출이 안 된다며 움츠러들었다. 여기에 핵 협박까지 얹혀 국민이 느끼는 중압감은 곱빼기가 됐다.


박근혜 정부는 아베 정권보다 2개월 늦게 출범했다. 그러나 두 정권의 초반 풍경은 2개월 차이만 벌어진 게 아니다. 아베 정권은 야구로 치면 \'1회전\'에서 대량 득점을 했다. 아니다. 취임 전부터 엔화 가치는 하락했고 기업들은 정권 교체에 환호성을 올렸다. 시장이 먼저 움직였다. 정권의 깃발을 올리기 전부터 아베 정권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 줄곧 대세론(大勢論) 위에 올라 있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기대 지수(指數)도 아베 총리 못지않았다.


출발점이 비슷했던 두 정권이 왜 전혀 다른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을까. 박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시절 복지, 일자리 창출, 경제 민주화를 전면에 내걸었다. 모두가 국민이 지지하는 국정 목표이다. 명분을 강조한 목표 중시형 공약이었다.


아베는 선거 운동 기간에 \"지폐 인쇄기를 쌩쌩 돌려…\"라고 했다. 엔화 가격을 낮추겠다고 공언했고 추경예산 편성을 약속했다. 돈을 풀고, 재정 지출을 확대하고, 규제 완화로 성장 정책을 펴겠다는 것을 \'세 화살\'이라고 명명했다. 복지·일자리 같은 과녁을 강조한 게 아니라 화살을 앞세웠다.


새누리당 대선 공약집에도 준비한 화살은 수없이 들어 있다. 하지만 유권자들을 설득할 때는 화살보다는 목표 지점을 훨씬 앞세웠다. 더구나 그 화살은 길이가 들쑥날쑥하고 날아갈 방향이 알기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아베 정권의 \'화살 3개\'와 박근혜 정권의 \'과녁 3개\'는 시장에서 다른 반응을 불러왔다. 기업들의 움직임을 보자. 아베 총리는 기업들에 임금을 올리라고 요구했다. 정부 혼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해봤자 기업이 움직이지 않으면 경기가 살아날 수 없다고 했다. 이런 요청에 호응해 올봄 임금 인상을 공개 선언하는 기업이 줄을 잇고 있다.


한국의 새 정권은 선거 때는 \'경제 민주화\'를 앞세워 대기업을 압박하더니 인수위원회가 발표한 국정 비전에서는 그 다섯 글자를 깡그리 삭제해버렸다. 이런 혼선은 기업들을 헷갈리게 했다. 한쪽에서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며 계열사 빵집을 매각하고 일감 몰아주기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내놓는가 하면, 다른 쪽에선 배짱 좋게 설탕·두부·우유 값을 올리는 기업이 등장했다. 과녁이 흔들리면 기업이나 국민은 자기가 옳다고 믿는 조준점을 향해 제각각 뛰게 된다.


아베 정권은 \'화살 3개\'를 쏘아줄 궁사(弓師)를 화살에 맞춰 기용하고 있다. 엔저(円低)를 유도하고 돈줄을 풀어 젖히는 역할을 맡을 일본은행 총재에 구로다(黑田東彦) 아시아개발은행 총재를 지명했다. 구로다 총재는 재무 관료 출신답지 않게 돈을 풀어 인플레를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새로 뽑은 일본은행 부총재 두 명도 아베 총리와 똑같은 노선을 지지해왔다.


박 대통령은 경제 부총리, 청와대 경제수석, 금융위원장 등 경제팀 핵심 장관에 관료 출신들을 골랐다. 선거 때 박 대통령의 공약을 다듬던 국가미래연구원에서 유독 경제 분야 인물은 기용하지 않았다. 새 경제팀 장관들이 복지·일자리 창출 같은 국정 비전과 그걸 달성하기 위한 정책 수단에 대해 그동안 박 대통령과 얼마나 진한 교감을 가졌는지는 알 길이 없다. 창조 경제의 특급 궁사 역할을 맡을 것이라던 벤처기업인은 벌써 중도 탈락했다.


세계야구대회(WBC)에서 한국이 예선에서 맥없이 탈락하자 일본 언론은 \'설마…\'라고 제목을 달았다. 믿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 나라 새 정권의 경제 승부는 1회전도 끝나지 않았다. 아베 정권의 화살이 일본 경제에 \'독(毒)화살\'이 될 것이라는 불길한 전망도 끊이지 않는다. 우리는 \'9회말이 끝날 때까지는 게임은 끝난 게 아니다\'는 야구의 오랜 속설에 마지막 한 가닥 기대를 걸어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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