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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칼럼/12.14] 안철수의 큰 권력, 작은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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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8,972회 작성일 2012-12-14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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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는 기성 정치 편입생이다. 그는 기존 정치질서에 흡수됐다.



 그는 좌파진영을 선택했다. 진영의 주도권은 극단 좌파, 사이비 진보가 갖고 있다. 그들은 한국의 산업화·민주화 성취를 상처 낸다. 그 진영에서 1류 좌파, 건전한 진보는 밀려나 있다. 안철수는 새 정치 깃발로 기성정치를 비웃었다. 이젠 그 정치 조롱은 끝났다.



 안철수 정치의 특징은 애매모호함이다. 그 유별난 성향은 역사관과 이념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출마 포기 뒤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문재인 후보와 이념적 차이를 느꼈다”-.



 이념과 역사관은 지도력을 비장하게 드러낸다. 지도자의 이념은 카리스마적 영혼이다. 그 때문에 이념의 제휴와 결합은 리더십 노선의 중대 변동 상황이다. 그 이유를 국민에게 해명해야 한다.



 안철수의 설명은 뚜렷하지도, 충분하지도 않다. 이념이 틀리는데 왜 문재인을 지원하는지가 명쾌하지 않다. 정권교체 때문이라고만 한다. 그의 모호한 언어 습관이 작동할 뿐이다.





 안철수는 후보 시절 박태준 묘소를 찾았다. 13일은 박태준 1주기(周忌)다. 박태준은 포스코(옛 포항제철)의 신화다. 포스코는 한국 산업화의 상징이다. 그 신화의 무대는 박정희가 만들었다. 박태준은 1992년 10월 박정희 무덤 앞에 섰다. 그리고 ‘불초(不肖) 박태준’으로 시작하는 글을 읽었다.



 “25년 만에 포항제철 건설의 대역사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삼가 각하의 영전(靈前)에 보고를 드립니다. ···돌이켜 보면 형극과도 같은 길이었습니다. 그때마다 저를 일으켜 세운 것은 ‘철강은 국력’이라는 각하의 불같은 집념, 그리고 13차례에 걸쳐 건설현장을 찾아주신 지극한 감사와 격려였다는 것을 감히 말씀 드립니다….” 박태준 신화는 박정희 없이는 구성되지 않는다.



 안철수는 박정희 묘소도 참배했다. 문재인은 박정희 묘소에 가지 않았다. 전직 대통령 묘소 참배는 역사와의 강렬한 대면이다. 화합 또는 대립의 역사관으로 표출된다. 문재인도 통합을 거론한다. 하지만 그는 실천에 미흡하다. 문재인의 현대사 인식은 분열 쪽에 머물러 있다.



 안철수의 역사관은 문재인과 다르다. 그 차이에 대한 안철수의 흔쾌한 설명은 없다. 역사관의 간격과 이질성을 그의 의식에서 어떻게 고민하고 해소했는지 말하지 않는다. 그의 영리한 셈법, 밀약과 압박 논란을 놓고 의심과 추측이 있을 뿐이다. 안철수는 그렇게 결정적인 국면을 회피한다. 국민의 정치 불신은 그런 데서 커진다.



 안철수의 정치적 장래는 불안정하다. 안철수식 새 정치는 마감됐다. 그는 검증을 생략한 채 정치를 만끽했다. 하지만 검증 문제는 잠복해 있을 뿐이다. 사당동 철거민 딱지 매입, 무늬만 전세살이 논란, BW(신주인수권부사채) 헐값인수 의혹 등이 후보시절 검증 소재로 등장했다. 청문회의 잣대를 대면 그것은 낙마의 조건이 될 만하다.



 그는 제대로 해명한 적이 없다. ‘네거티브 비난’이라고 묵살했을 뿐이다. 그는 본격 기자회견을 한 적이 없다. 제한된 주제의 유리한 환경일 때 회견에 응했다. 새 정치의 열망은 그런 행태를 기묘하게 용인해줬다. 대치 구도가 가팔라지면 검증은 힘들다. 한쪽 진영이 방어해준다. 그 덕분에 그의 도덕성과 이중성 논란은 별 소란 없이 넘어갔다. 그의 삶과 정치철학의 진면목은 상당부분 미확인 상태다.



 대선 이후는 달라진다. 검증 문제는 그를 압박할 것이다. 그런 상황은 박근혜가 이기든, 문재인이 승리하든 비슷하다. 안철수는 내년 4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출마를 검토할 것이다. 그러면 검증 이슈는 새롭게 포장돼 등장한다.



 그는 친노와 강성좌파의 사정권에 들어 있다. 그 집단의 눈치를 봐야 한다. 그리고 신임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그는 지역구나 지도부 경선에서 낭패를 당한다. 손학규와 새누리당으로 옮긴 한광옥의 곤욕은 실감나는 사례다. 두 사람은 그 세력과 불화를 겪었다. 좌파진영 속 정치 여정은 고달프다.



 ‘큰 권력’은 털을 뽑지 않고 통째로 먹을 수 있다. 소용돌이가 일면 안철수식 신비주의 정치는 주효한다. 전격적으로 대권을 잡을 수 있다. 감성 정치의 압축적인 도전은 위력적이다.



 ‘작은 권력’ 무대는 다르다. 유권자는 냉정하고 세밀해진다. 총선 같은 작은 권력 게임에선 감성 정치의 효험은 떨어진다. 검증 문제가 주도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권력 장악의 경험은 그런 역설로 가득하다.



 정치의 속성은 예측 불가능이다. 정치 선진화는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선진 정치는 불투명성을 낮춘다. 안철수식 새 정치는 독특한 체험이었다. 하지만 정치의 불확실성을 높였다. 그것은 정치를 후퇴시켰다. 진정한 새 정치는 모호함의 제거다. 정치 언행의 선명함이 새 정치를 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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