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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극 칼럼/11.13] 길 잃은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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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8,599회 작성일 2012-11-13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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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 기억이 난다. 앞에 구덩이가 있어 그리로 가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으면 꼭 그곳에 빠지고 만다. 마치 진공청소기에 빨려 들어가듯 거기로 돌진하곤 했다. 초보자여서 자전거의 관성을 컨트롤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치 초보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안철수는 단일화라는 구덩이를 피해야 하는데 그리로 끌려 들어갔다. 주변의 힘, 정치공학적 계산 등에 밀려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고 그곳으로 빠져버린 것이다.



 단일화는 왜 안철수가 피해야 할 구덩이였는가. 그가 정치를 시작한 모든 이유를 무의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는 증오의 정치를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 절반을 적으로 돌리는 정치는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고 했다. 옳은 말이었다. 그래서 박수가 나온 것이다. 그런 그가 민주당 후보와 단일화하겠다고 한다. 그 민주당은 어떤 정당인가? 그 정당은 불과 몇 개월 전에 총선에서 대패했다. 왜 일반의 예측과는 반대로 패배했을까? 그 정당 스스로가 인정했듯이 패거리 정치에 국민들이 실망했기 때문이다. 증오의 정치는 노무현 시대의 병이었다. 지금 민주당은 누가 움직이고 있는가? 바로 그 사람들 아닌가. 나라를 분열시키는 지역주의 정치는 이 나라의 고질병이다. 그걸 없애자는 것이 새 정치다. 새 정치를 외치는 안철수는 단일화 선언을 광주에 가서 했다. 왜 하필이면 광주일까? 국민의 반을 적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왜 지역 냄새가 가장 많이 나는 길을 선택했는가?



 그의 존재가치를 위해서는 반드시 피해야 할 길을 그는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 정치개혁을 하자면 불가피하다고 변명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럴 생각이 있었다면 진작부터 움직였어야 했다. 최소한 총선 전에라도 그 당에 들어가 동지를 모아 개혁을 시도했어야 했다. 그래야 진정성과 실천력을 검증받을 수 있지 않았겠는가? 선거를 코앞에 두고 뒤늦게 민주당과 단일화를 하면서 정치개혁을 내세우면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100명 넘는 의원이 있는 정당에 교수 몇 명 끌고 들어가 무슨 연합을 만든다고 개혁이 되겠는가. 국민을 기만하는 일이다.



 안철수의 정체성은 다시 점검받아야 한다. 그는 단일화 선언을 기점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독립, 중도, 양심세력이라고 스스로 주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 그는 민주당 진영, 더 나아가 좌파 진영의 한 사람이 된 것이다. 지금까지 그는 진영정치를 비판했지만 지금은 스스로 한쪽 진영을 택했다. 새 정치를 말했던 그가 헌 거푸집 속으로 들어갔다. 이후에 나올 수 있는 것은 그 거푸집과 똑같은 모양의 붕어빵일 수밖에 없다.



 그의 변신으로 가장 큰 상처를 입은 사람은 누구인가? 그에게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이다. 어느 쪽에도 마음을 주지 못했던 이 나라의 중간층 사람들이다. 진보·보수를 넘어 통합을 바라는 사람, 경제가 발전하면서 동시에 열매를 골고루 나눌 수 있기를 바란 사람, 모든 자녀에게 공평한 도전의 기회가 보장되기를 바란 사람, 이런 소망을 가진 사람들이 안철수에게 기대를 걸었다. 그런 공통의 열정이 안철수 현상을 만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제 스스로 한쪽 편에 가담했다. 이 중간지대 사람들의 꿈을 이루어 줄 사람이 이제는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정치의 환멸을 안겨준 것이다.





 어느 사회나 변화를 갈망하게 되면 개혁의 열정이 끓어오르게 마련이다. 그 개혁의 열정은 대변해 줄 인물을 찾게 된다. 그래서 갑자기 어떤 인물이 부상하는 것이다. 설혹 중도에 그 사람이 사라진다 해도 그 열정 자체는 식지 않는다. 사회열정은 그 역할을 대신 맡아 줄 또 다른 사람을 찾게 되어 있다. 1900년대 초의 미국은 혁신의 열정이 끓어오르던 시대였다. 그 시대를 대변했던 사람이 시어도어 루스벨트다. 그는 3선을 시도하다가 결국은 낙방했다. 뒤를 이은 윌슨 대통령은 반대당이었지만 미국사회의 개혁 열정을 받아내어 임기 중 가장 많은 개혁입법을 이룬 인물로 꼽히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 충만한 개혁 열정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번 선거는 그 열정이 지배할 것이다. 누군가 이 열정을 풀어 주어야 한다. 그 열정을 받아내어 풀어 줄 사람은 누구인가? 안철수에게 실망했다면, 문재인인가? 박근혜인가? 박근혜는 우파 정당 출신이다. 그가 개혁 열정을 이어받을 수 있을까. 그러려면 정치개혁에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 청와대 중심, 의원 중심, 권력기관 중심이 아니라 국민 중심의 정치를 과감하게 선언해야 한다. 나눠먹기가 아니라 개인의 재능을 최대로 꽃피우는 그런 경제 민주화가 되어야 한다. 계층, 지역, 정파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향한 과감한 플랜을 제시해야 한다. 소소한 문제에 매이지 말고 성큼성큼 큰 발걸음을 떼어야 한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야권의 단일화가 오히려 그에게 기회로 변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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