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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칼럼/11.2] 황제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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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8,574회 작성일 2012-11-02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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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열렸다. 여덟 개의 얕은 계단 위다. 우리 일행은 서둘러 올라갔다. 적갈색 벽에 문패(15 Logan Circle)가 달려 있다. 나는 문패를 힐끗 보았다. 그 주소는 잊어버린 역사 찾기의 단서였다. 문은 한 세기 전 대한제국 공사관(지금으론 대사관) 시절의 형태다.



 그 동네의 건축미는 워싱턴에서 가장 고혹적이다. 고풍의 깔끔한 동네 정경은 수채화다. 건물은 이제(10월 18일)부터 완전히 한국 정부 소유다. 매입절차가 끝난다. 공사관의 공식 귀환이다. 일제에 빼앗긴 지 102년 만이다.



 일행 모두 집 안을 두리번거렸다. 대한제국의 흔적을 찾으려 했다. 집주인(티머시 젠킨스)은 “집안 골격은 조선 공사관 시절과 바뀐 게 거의 없다”고 했다. 내부 구조도 미려(美麗)한 외관 같다. 예쁘고 섬세하다. 그는 호기심을 북돋는다. “3층짜리 이 집 벽난로가 9개다. 건물 지을 당시 그 장식, 그 모습이다.”



 꼭대기 3층 방은 튀어 넓었다. 어진(御眞·고종 사진)과 예진(睿眞·순종 사진)이 걸린 곳으로 추정된다. 조선 외교관들은 그 앞에서 충성을 다짐했다. 어명은 명료했다. 자주 독립을 위해 총력 외교전을 펼치라는 것이다.



 나는 벽난로를 살폈다. 조선 외교관들은 난로 앞에 웅크렸다. 그들의 고뇌와 좌절은 무엇이었나. 그들은 초라하고 힘없는 나라의 비애를 절감했다. 그 상념은 나를 비감하게 만든다. 문화유산국민신탁 김종규 이사장이 그런 내게 말을 건넨다. “누구보다 감회가 특별날 텐데”-. 우리는 감상을 교환했다. “고종을 위하여, 황제를 기리며”-.



 나는 긴 여정을 마친 느낌이다. 10여 년 전 그 건물을 처음 대면했다. 그때의 감동과 비분이 떠오른다. 건물의 독보적 역사성은 가슴을 뛰게 했다. 비운의 건물 사연 속에서 고종을 재발견했다. 고종은 무능하지 않았다. 나는 전도사가 됐다. 공사관의 문화재적 가치, 재매입의 필요성을 알렸다.






 고종의 대미 외교는 승부수였다. 중국(청나라)의 거드름과 간섭에서 탈출이었다. 고종은 워싱턴에 상주 공관을 두기로 결심한다. 그 건물을 2만5000달러(1891년, 지금 가치 최소 127만 달러)에 샀다. 찢어지게 가난한 국가의 막대한 투자였다. 청일전쟁 이후 일본의 야욕은 고종 외교를 파탄시킨다. 고종의 미국 짝사랑은 깨진다. 부국강병 없는 외교는 실패로 마감한다.



 공사관은 잊혀졌다. 식민지·해방·전쟁·정치 격동-. 그 세월 속에서 헐렸을 것으로 짐작됐다. 그 사이 그 건물은 행운을 확보한다. 1972년 워싱턴 시는 그 일대를 문화보존지구로 지정했다. 집주인은 내부를 고치지 않았다. 건물의 생존은 기적이다.



 2013년부터 다음 정권 5년은 외교 격변기다. 동북아는 질서 재편의 거대한 소용돌이에 들어간다. 올해 한·중·일 3국 간 영토와 역사 분쟁은 그 예고편이다.



 중국은 거침없다. 시진핑(習近平)의 새 지도부는 다르다. 중화대국 의식에 익숙하다. 청일전쟁 패배는 중국을 한반도에서 떠나게 했다. 이제 중국의 영향력은 회복됐다. 북한에 대한 중국 위세는 압도적이다.



 일본은 해군 강국이다. 일본은 연합함대의 화려한 과거를 계승하려 한다. 어느 날 일본 함대는 독도 앞 바다에서 시위를 할 것이다.



 한국은 대한제국과 다르다. 나라는 부유하다. 군대는 강하다. 하지만 국제정세 격변에 둔감하다. 북한 핵 문제는 미국 오바마-롬니의 대선 쟁점 중 하나다. 한국 선거에서 북한 이슈는 뒤로 밀려 있다. 기이한 선거 양상이다.



 그것은 외교·국방의 주인 의식이 부족해서다. 안보를 한·미 동맹에 맡겼기 때문이다. 그런 타성적인 의존도 앞으로 힘들게 됐다. 다음 정권 임기 중(2015년) 한미연합사는 해체된다. 한국이 전시작전권을 갖는다. 외교·국방의 진정한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다음 대통령은 한반도 장래를 판가름한다. 박근혜·문재인·안철수의 외교 역량과 비전은 무엇인가. 역사 상상력은 어떤 모습인가. 그것을 비교하고 따져야 한다.



 박근혜는 자신의 외교안보 프로그램을 다듬어왔다. 하지만 그 구상을 강렬하게 내놓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은 노무현의 북방한계선(NLL) 논쟁의 방어에 치중한다. 그의 독자적 외교 구상은 선명히 드러나지 않았다. 안철수는 아직도 공부 중이다. 이제까지 행보로 미뤄 그의 외교 정책은 예측된다. 논쟁에서 손해 덜 보는 중간쯤이 될 것이다.



 외교·국방은 주요 이슈가 돼야 한다. 경제·복지 못지않은 대선 쟁점이어야 한다.



 역사는 반복된다. 동북아의 기본 틀은 고종 시절과 비슷하다. 다음 리더십은 치밀한 외교 전략으로 무장해야 한다. 국민의 외교안보 의식은 깨어 있어야 한다. 그것은 고종이 후세의 대선 무대에 보내는 메시지다. 절규 같은 호소다. 공사관 건물은 역사의 교훈을 주기 위해 살아있다. (워싱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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