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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의 현장속으로/6.16] 땅속 30m'잠수함', 거대 요새 들어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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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9,007회 작성일 2012-06-16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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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속으로] 프랑스, 난공불락 신화는 왜 추락했나

마지노선의 비극, 방어적 전쟁 상상력은 좌절한다


마지노선(La ligne Maginot)은 거대한 방어망이다. 그 방어선은 서사(敍事)적 드라마다. 그 속에 프랑스의 국가적 비장함이 담겼다. 독일과의 대결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결의다. 하지만 그 드라마는 비극으로 마감했다. 1940년 5월 독일은 프랑스를 침공했다. 히틀러는 마지노선을 우회했다. 독일군의 파리 점령은 신속했다. 마지노선의 난공불락 신화는 허망하게 추락했다.



 그 비극은 방어적 상상력의 좌절이다. 마지노선 드라마는 전쟁과 평화의 미묘한 관계를 표출한다. 그 속에 인간 의지와 무기 기술, 전략과 사기, 군인과 정치 리더십, 전선과 후방 사이의 대립과 연관성이 농축돼 있다. 6·25 한국전쟁 62주년이다. 그 드라마는 역사의 교훈으로 존재한다. 



전쟁은 풍경 속에서 잔존한다. 알자스-로렌(Alsace-Lorraine)-.



 프랑스와 독일의 접경 지방이다. 증오와 대립의 분쟁지대였다. 양국이 번갈아 땅 주인을 했다. 제2차 세계대전(1939~45년) 후 지금은 프랑스 영토다. 그곳 은밀한 풍경 속에 마지노 요새(要塞)가 있다. 마지노 요새는 인간과 전쟁의 역사를 간직한다.



 프랑스의 쉐넨버그 (Schoenenbourg)-. 북동부 알자스의 시골 마을이다. 간판급 마지노 요새가 있다. 마지노선은 전쟁 탐사의 통과의례다. 마지노선을 알아야 평화와 전쟁을 실감한다. 나는 지난달 말 그곳을 찾았다. 프랑스인 친지가 e-메일로 응원했다. 스트라스부르에 사는 전직 교사 레이몽 르메르(R. Lemerre)다. 영어도 잘한다.

“중국 대륙에 만리장성이 있다면 유럽엔 마지노선이 있다. 장성은 고대 중국의 축성술을 과시한다. 마지노 요새는 지하 속 철옹성이다. 20세기 전반 프랑스 토목기술의 자존심이다. 요새는 전술적으로 연결돼 마지노선이 된다.”



 알자스-로렌은 전체 마지노선 중 핵심(140km) 구역이다. 나는 독일 쪽에서 들어갔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자동차로 2시간쯤 프랑스의 알자스 국경에 다가섰다. 와인 가도(weinstrae) 표지판도 나온다. 알자스의 명물은 백포도주다. 그리고 좁은 4차선 도로-. 길 양쪽은 붉은색 지붕의 화사한 단층 가옥들이다. 우아하고 정갈한 수채화가 펼쳐진다. 지금의 정경은 양국 화해의 온화함이다.



터릿 포탑의 주력 무기인 75mm 대포 포신. 쉐넨버그 요새는 회전·고정 포탑이 9개. 요새가 모든 포문과 총구를 열면 철옹성이 된다. 터릿은 평상시 둥 지붕만 보인다. 훈련과 전투 때 60cm가량 올려요새는 지하 20~30m 아래 구축됐다. 전기열차와 60cm 협궤, 궤도는 전체 3㎞(식당·내무반에서 전투구역까지 1㎞는 복선)에 뻗쳐 있다.프랑스 국경으로 이어진다. 표식이 없다. 서울에서 경기도로 가도 표지판이 있다. 그런데 이웃 동네로 넘어가듯 하다. 신고 절차도 없다. 내비게이션이 인식할 뿐이다. 잠시 뒤 들판. 알자스의 평야다. 기갑 전차부대가 돌파하기 적합하다. 탱크의 돌격 본능을 유혹하는 지형이다.



 그리고 언덕 넘어 숲 속 길로 1km쯤 들어갔다.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Ligne Maginot Schoenenbourg(마지노선 쉐넨버그)-. 출발 2시간30분 만이다. 마지노 요새는 건재했다. 차창 나무 숲 사이로 검은 회색의 방벽이 버티고 있다. 직사각형 토치카다. 두꺼운 철근 콘크리트로 발랐다. 단단한 근육질의 진지다. 벽과 천장은 거칠고 두껍다(두께 2.75m). 포탄 세례를 견딜 만하다. 실제 독일군 420mm 대형 포탄이 명중했다. 하지만 심각한 균열은 없었다. 요새는 처음부터 나를 압도한다. 그곳은 지하 요새의 입구다.



식당엔 최신 조리기구, 전기 오븐에다 커피 추출기, 감자 껍질 깎는 기구가 있었다. 주변을 살폈다. 사발 밥공기를 엎어놓은 물체가 눈에 띈다. 나는 숨을 죽였다. 그것은 마지노 요새의 엠블럼이다. 내 마음에 강렬한 호기심으로 존재하던 물체다. 그 미지의 상징물은 예고 없이 포착됐다. 맥이 풀린다. 마지노의 심장부에 얼떨결에 다가간 듯하다.



 하지만 백화점 쇼윈도의 전시물이다. 마지노선의 흥미로운 무대는 본격 개봉되지 않았다. 안내 설명서를 봤다. 큰 사발 물체는 터릿(turret, 회전 포탑)이다. 그보다 작은 물체가 큐폴라(cupola), 작은 돔 형태다. 클로슈(cloche)라고도 한다. 종(鐘) 모양의 여자 모자다(높이 80~90cm, 직경 3~3.5m). 디즈니 월드의 비행접시 같다. 하지만 놀이기구가 아니다. 요새의 주포(主砲)다. 둥근 철판 속에 대포와 기관포, 잠망경을 설치했다.



1940년 지하 요새의 프랑스 군 행진. 지하 요새 입구에 100여 관광객이 줄을 섰다. 르메르가 와서 동행했다. EU의회가 있는 스트라스부르에서 50분 거리다. 지하는 섭씨 13도. 1년 내내 비슷하다고 한다. 바깥 날씨는 25도. 시원한 전쟁 탐사다.



 입장료는 7유로(약 1만원)다. 입구 안내원이 나를 훌쩍 보고 미소로 말을 건넨다-. “어디서 왔나. 아시아 관광객은 드물어 반갑다.”



 “한국 서울이다. 한국도 전쟁 역사가 많다.”



 그의 친절한 설명이 이어진다. “마지노 요새는 잠수함을 연상하면 이해하기 쉽다. 바다 대신 땅 속 깊은 곳 잠수함이다. 다만 크기가 항공모함만 하다. 그리고 땅 위로 구멍을 내서 돔 모양의 포탑을 만들었다.”



 입구 5m 안쪽에 엘리베이터가 있다. 안내원이 “이제부터 전쟁 투어”라고 했다. 엘리베이터는 타임머신이다. 30m 아래로 내려갔다. 2차대전의 현장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통로에 궤도가 깔렸다. 폭 60cm다. 협궤(挾軌) 전기열차(trolley)가 운송수단이다. 포탄과 자재를 공급했다. 시속 8km. 사라진 열차 수인선이 떠오른다.



 쉐넨버그 지하 요새는 6개의 전투 구역, 2개의 지원, 병영 구역으로 나뉜다. 이제 70여년 전 과거로 본격 진입한다. 출발은 복선의 철로길이다. 철로는 모든 통로(전체 3km)에 깔렸다. 신경조직이다. 전투 구역으로 먼저 향했다. 지휘소와 포대가 있는 곳이다. 한쪽에 전기발전소가 있다. 165마력의 엔진 4개. 옆쪽에 난 통로로 들어섰다.



 이번엔 단선 궤도다. 폭 2m 정도다. 갑자기 인적이 끊겼다. 미로가 주는 중압감이 생긴다. 그 순간 지하공간은 살아 숨쉬는 듯하다. 천장(높이 3m)의 희미한 전기등이 나를 안내한다. 통신실이 나온다. 10여 평 크기에 10여 대의 전화, 책상, 상황판이 놓여 있다. 밀랍인형 병사가 손으로 철모와 전화기를 가리킨다. 나는 프랑스군 철모를 썼다. 전화기도 들었다. 세련된 디자인의 아드리안(adrian) 철모다. 수화기에 “독일 전차 군단 출현”이라는 긴박한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마지노 요새는 프랑스 토목 굴착기술의 정수(精髓)다. 그 시대 최고의 지하 건축물이다. 최첨단의 공간처리를 했다. 지하 깊이는 18~30m로 땅 위 폭격에 끄떡없다.



 통로를 1km쯤 걸었다. 핵심인 터릿(둥근 회전 포탑) 구간이 나온다. “포탑(砲塔) 설치는 난공사”였다는 설명서가 붙어 있다. 먼저 주변을 17m 깊이로 팠다. 콘크리트와 철골을 촘촘히 넣었다. 그리고 포탑을 세웠다. 포탑 철판의 두께는 30cm, 무게는 30t. 중무장을 했다(75mm 대포, 47 mm 대전차포, 81mm 박격포). 사정거리는 9~12km.



 포탑 조종실은 아래쪽에 있다. 거기서 탄약을 특수기계에 넣는다. 포탄은 자동적으로 올라가 터릿의 포신(砲身)에 장전된다. 그 옆에 고정용 포탑(큐폴라)도 있다. 잠망경을 올려 적을 탐지한다. 안내원이 “우리 편은 엄폐된다. 노출된 채 침공하는 적 탱크와 병사를 타격한다”고 설명한다. 대포 발사 때 반동 흡수장치도 있다. 수류탄은 손으로 던지지 않는다. 수류탄을 날리는 장치도 있다. 쉐넨버그 요새에 이런 포탑이 9개, 9개의 소형 토치카가 있다. 이들 포에서 불을 뿜으면 요새는 불침 전함이 된다. 방어·격퇴의 이론과 무기체계로선 완벽했다.



 지휘소에 초상화와 사진이 걸려 있다. 포슈(F. Foch)와 조프르(J. Joffre) 원수도 있다. 두 사람은 1차대전(1914~18년)때 독일군을 물리친 프랑스군 영웅이다.



 1차대전은 프랑스·영국·미국 연합국의 승리로 끝난다. 하지만 참극이었다. 프랑스 군인 140만 명이 죽었다. 20~32세 젊은 세대 40%가 희생됐다. 프랑스군 수뇌는 독일의 재침 가능성을 주목했다. 대토론이 벌어졌다. 포슈와 조프르는 대립했다. 포슈는 “공격이 최상의 방어”였다. 정적(靜的)인 방어전략을 반대했다. 기갑부대 대령 드골(de Gaulle)은 포슈 안을 성원했다.



 반면에 조프르 구상은 공고한 방어선의 구축이다. 독일 공세를 국경선에서 막는 수비 안이다. 조프르 지지자는 페탱(P. Petain) 원수였다. 페탱은 항복한 뒤 비시 정부 수반이 됐다. 육군장관 앙드레 마지노는 열렬한 조프르 지지자였다. 마지노선은 그의 이름을 땄다.



 이 대목에서 르메르가 마지노선 전문가의 전력을 과시한다. “1차대전 참상은 전쟁을 혐오하게 만들었다. 전쟁에 질려 하는 사회는 수세형·수동적이 된다. 그 사회의 평화는 무조건 선(善)이다. 평화의 비굴함을 따지지 않는다. 선제적 공세심리는 경계 대상이다. 마지노선은 그런 분위기의 산물이었다. 거대한 방어선을 만들기로 결정됐다.”



 프랑스의 국가적 상상력은 거기에 집결했다. 건축 기술, 무기·과학 기술, 예산 등 국력을 쏟아넣었다. 반면에 기계화 부대 전술 개발, 전차 현대화, 공군 강화는 소홀했다. 그 부분은 치명적 약점이 된다. 마지노선에 대한 기대심리가 퍼졌다. 그것은 난공불락의 신화를 낳았다. 하지만 검증되지 않았다.



 쉐넨버그는 대형 요새(gros ouvrage)다. 마지노선 요새 사이에 터널 연결은 없다. 요새 사이에는 대전차 방어 시설, 지뢰밭, 단독 포탑, 가시철망, 초소, 벙커를 두었다. 알자스-로렌에서 룩셈부르크 쪽 접경이 마지노의 주전선이다. 주방어선의 쉐넨버그급 대형 요새는 23개다.



 나는 지하 요새 위로 나갔다. 터릿과 큐폴라의 둥근 쇠뭉치가 푸른 들판 위에 보인다. 그 돌출은 은밀하다. 평탄한 지형이다. 나의 상상 속에 둥근 쇳덩어리는 괴물로 바뀐다. 독일군 전차들이 몰려온다. 사정거리에 들어오면 괴물은 요동친다. 회전하며 거침없이 포를 갈긴다.



 실제 전쟁은 그렇지 못했다. 1940년 5월 독일군은 마지노선을 외면했다. 벨기에의 아르덴 숲 지대로 전차 주력을 배치해 돌파했다. 이어 프랑스 국경도 뚫렸다. 마지노선은 격전의 무대에 등장하지 못했다. 마지노선은 무용지물이 됐다.





다시 지하다. 병사 내무반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환기에 문제가 없다. 요새를 지을 때 신경 썼던 부분이다. 독가스 제거용 필터 시설이 세 군데다. 독가스는 1차대전 참호(trench)전의 악몽이다. 독가스는 눈을 멀게 했다. 그 악몽을 물리치는 정화 시설이다.



 요새의 건축학적 감수성은 경이적이다. 지하 생활의 쾌적함을 위한 공간처리는 세밀했다. 대포와 총은 유해가스를 뿜는다. 소음과 진동이 크다. 내무반, 식당, 응급실, PX, 기도실은 전투 구역과 최대한 떨어지도록 디자인했다. 그것은 마지노의 신화를 강화했다.



 식당은 전기 조리 기구, 전기 오븐, 커피 추출기, 감자 껍질 깎는 도구를 두었다. 와인 저장고 상태는 최적이다. 물은 117m 아래 우물을 파서 펌프로 끌어올린다. 화장실 정화시설도 요즘 같았다. 응급실에 정교한 수술기구도 보인다. 자급자족이 가능한 설비다. 요새 주둔은 1개 대대 규모다. 장교 20명, 준사관 60명, 사병 550명이다. 비밀 통로도 만들었다. 다양한 비상상황을 상정해 대비했다.



 군의관들은 폐쇄공포증도 처방했다. 일광욕이다. 사병 10명씩 옷을 벗고 누워 전기등의 자외선을 쬐도록 했다. 스트레스가 심한 사병들은 포도주에 안정제를 넣어 타먹였다.



 지하 통로에 그림 20여 장이 붙어 있다. 초등학생들의 크레파스 사생화다. 동심 속 둥근 포탑은 외계인 우주선이 되고 무적의 철옹성이다. 프랑스 삼색기가 펄럭이고 독일군 탱크는 뒤집힌다. 그러나 역사는 비정하게 전개되었다.



 1940년 6월 중순 전세는 기울었다. 마지노선 공략은 마무리 장식용에 불과했다. 독일군은 마지노 요새를 앞뒤로 공략했다.



쉐넨버그 요새는 독일군과 공방을 벌였다. 독일군 급강하 폭격기(stuka)와 거대한 야포에서 대형 포탄이 날아왔다. 쉐넨버그는 저항했고 무너지지 않았다. 난공불락의 명성은 확보됐다.



 하지만 그 무용담은 전쟁 승패에 의미를 주지 못했다. 개전 6주째인 6월 22일 프랑스군 지휘부는 독일에 항복했다. 그러나 마지노 요새는 백기를 올리지 않았다. 열흘 뒤 프랑스군 총사령관 베강(M. Weygand)은 마지노 수비대에 투항을 명령했다.



 전쟁은 상상력의 대결이다. 공격적 상상력은 욕망이다. 수비적 상상력은 절제다. 수비는 공격 본능을 막을 수 없다. 요새는 정지와 고수다. 공격은 변화와 속도다. 방어적 상상력은 주도권을 잃는다. 독일의 공세적 상상력은 전격전(blitzkrieg)이었다. 공세적 상상력은 행운까지 움켜쥔다.



 지상 출입구로 돌아왔다. 3시간 동안의 여정이었다. 입구를 다시 살폈다. 마지노 부대의 표식이 걸려 있다. 둥근 테두리에 “ON NE PASSE PAS”라고 씌어 있다. “(독일군은) 통과할 수 없다”-. 그 구호는 1차대전 베르됭(Verdun) 참호의 프랑스군 결의다. 동행한 르메르는 감회에 젖었다. “선배들은 유혈로 그 투혼을 실천했다. 하지만 마지노선 후배들은 기회가 없었다”고 말했다. 전후 마지노 요새는 새롭게 효용성을 인정받았다. 미국과 옛 소련(러시아)의 냉전 시대에 요새로 복귀했다. 1980년대 수명을 마감했다. 그 후 역사 관광지로 부분 개방됐다.



 마지노선에 담긴 평화는 좌절했다. 1930년대 프랑스 정치의 좌우 분열은 심화됐다. 나치 독일의 선동과 공갈은 주효했다. 그것은 프랑스의 결전 의지와 사회 통합을 약화시켰다. 평화는 염원과 집착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방어적 자세는 진정한 평화를 생산하지 못한다.



 남북한 군사적 대치는 진행형이다. 동북아 정세는 미묘하다. 종북과 북한인권 논쟁은 계속된다. 공세적 의지가 전쟁을 퇴치한다. 그것이 한반도 평화를 보장한다. 강대국의 위압적인 한반도 개입을 막는다. 북한의 오판을 막는 버팀목이다. 마지노선 교훈은 살아 있다.


프랑스 쉐넨버그, 글·사진= 박보균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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