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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영 칼럼/5.5] '표준 인생' 시대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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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6,719회 작성일 2012-05-07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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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인 가구 절반 넘는 시대… \'결혼→출산→내집\' 틀 깨져

그러나 여전히 정부 정책들은 \'부모+자녀\' 4인 가족에 초점

소득세 공제서 임대주택까지 \'비표준\' 차별, 빈곤층 늘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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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_img_caption.jpg\" 송희영 논설주간



1인 가구가 네 집 중에 한 집꼴이라고 한다. 23년쯤 후에는 34.5%가 혼자 살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런 통계를 한두 번 들은 것도 아니건만 \"슬슬 홀로 외롭게 사는 법을 터득해야 하는가\"고 저절로 중얼거리게 된다.



1인 가구와 함께 늘어나는 것은 \'무인(無人) 가구\'다.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도 늘어날 것이다. 우리 농촌에서는 20년 전부터 빈집이 늘더니 벌써 40만 채에 달하고, 우리보다 고령화가 먼저 진행된 일본에서는 13%가 빈집이다. 도쿄 주변의 위성도시 중에는 40~50%가 빈집 상태로 버려진 곳들도 있다. 우리나라 출산율과 고령화 추세를 보면 20년쯤 뒤에는 서울 시내에도 빈집이 등장할 게 뻔하다. 텅 빈 이웃집들 사이에서 홀로 살아가는 하루를 상상해봐야 할 듯하다.



가족 해체를 들먹이고 고독사(孤獨死)를 걱정하며 신세 타령에 빠져있을 때가 아니다. 그러기에는 가구 구성의 틀은 빠른 속도로 변해버렸다. 부모 형제와 그 자손들이 무리를 이루며 살던 대가족의 풍경은 잔주름투성이의 흑백 사진에서나 볼 수 있다. 부부와 아들·딸로 구성된 표준형 가구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1인 가구와 2인 가구가 절반이 넘어버린 시대에 가장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정치인과 정부 당국자들이다. 이들은 \'부모+자녀\'로 조합된 4인 가족을 전제로 만들었던 정책을 대부분 고수하고 있다. 자녀를 셋 이상 낳은 가정에 몇 가지 혜택을 덤으로 선물하는 변화는 있었지만, 한국의 표준형 가족을 기준으로 추진해온 제도들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예를 들면 월급쟁이들 세금을 덜어주는 소득세 공제(控除) 정책은 20세 미만의 자녀를 가진 가구에 많은 혜택이 돌아간다. 여기에 배우자 공제 혜택도 덧붙여진다. 결혼과 출산을 인생의 필수 코스로 여기는 정책이다. 아파트 청약 신청 자격도 온전한 가정을 구성한 가구에 우선권이 제공된다. 미혼 사원에게는 사원 주택 분양 때 신청 자격조차 주지 않는 회사가 적지 않다.



이렇게 해서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려는 뜻은 좋다. 하지만 문제는 자녀가 없거나 결혼을 하지 않으면 표준형의 틀에서 벗어나 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현실이다. 이혼 여성들이 견뎌내야 할 것은 이혼녀라는 주변의 야릇한 시선만이 아니다. 이혼 합의서에 도장을 찍는 그 순간부터 각종 정책적 배려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래서 중년의 이혼 여성들은 빈곤층으로 추락할 확률이 가장 높다.



스스로 독신주의를 고집하는 젊은이들이나 결혼하기에는 벌이가 너무 빠듯해 결혼을 포기한 청춘들도 따돌림당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들도 값싼 임대주택 분양 신청 자격조차 박탈당한다. \'비(非)표준\'이라는 신분 때문에 차별을 감수해야 한다. 비(非)표준 세대들이 표준 세대에게 제공되는 혜택을 받지 못하는 세월이 길어진 결과는 빈곤층 확대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인들의 표준형 인생 모델은 대충 정해져 있었다. 학업을 마치면 정규직으로 취직해 결혼을 하고 자녀를 가졌다. 취직과 결혼에 이어 인생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결정은 주택 구입이었다. 자녀 숫자에 맞춰 안방·거실에다 조각 방 2개가 딸린 전용면적 25.7평의 국민주택이라도 장만하고 나면 자가용을 몰고 가족 여행을 떠나곤 했다.



성장의 시대에는 이런 표준형 인생들이 중산층을 두껍게 만들었고 사회 안정에도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정부는 이런 인생 설계를 기준으로 정책을 만들었고 정치인들은 그 틀에 맞춰 법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과거의 틀은 깨졌다. 그동안의 표준 모델은 소수 세력이 되고 \'비표준\'으로 차별받던 집단이 새로운 표준으로 등장했다. 그런데도 정부 당국자와 정치인들은 아직껏 표준형 가구의 틀 안에서 살라고 강요하고 있다. 비정규직은 공식 통계로 600만명을 넘어섰지만, 비정규직들이 비정규직 신분을 갖고서 살아갈 수 있는 지원 제도를 만들지 않는다. 오로지 정규직이 가장 바람직한 취직 형태라는 틀 속에서 해결책을 찾다 보니 정규직으로 전환시켜 주겠다는 공약만 남발한다.



주택정책도 \'1가구 1주택\'이라는 대전제 위에서 밀어붙였다. 표준형 가정을 위한 주택 공급에는 열성을 보였으나, 1~2인 미니가족을 위한 정책을 제대로 추진해본 적이 없다. 값싼 임대주택을 공급하지 않은 탓에 2~3년마다 전월세 값이 뛰는 소동이 발생하곤 한다.



모든 남녀가 반드시 결혼하고, 반드시 자녀를 갖고, 반드시 내 집을 소유할 것이라는 인생 설계를 전제로 만든 정책과 제도를 더 이상 끌고 갈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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