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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영 칼럼/12.30] '1.97t 조각배'로 건너야 할 파괴의 소용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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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8,151회 작성일 2012-01-02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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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값, 사람 값, 물건 값 동시에 무너지는 \'삼중 파괴\' 위기는 16C 유럽 경제통합 때와 비슷… 50억 휩쓸린 세계화 출렁이는데 세계 경제 1.97%에 불과한 한국은 다시 선거의 해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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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_img_caption.jpg\" 송희영 논설주간


오르던 금값이 하락한다. 원유(原油)값이 돌연 추락하고 휴지 조각이 될 것 같던 미국 채권은 어느 날 귀한 몸이 된다. 오늘 우리가 마주치는 위기의 공포감은 이처럼 앞날을 점칠 수 없는 데서 출발하고 있다.



한국 경제와 세계 경제가 겪고 있는 \'혁명적 파괴\'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화폐 혁명\'을 꼽을 수 있다. 돈이 흘러넘친다. 2008년 이후 선진국 중앙은행들의 화폐 발행 잔액이 두 배로 급증했다. 경기를 살린다고 실컷 찍어 썼다. 그러고도 제로(0) 금리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화폐 혁명은 곧 돈의 가치가 파괴되는 저금리 혁명이다.



여기에 중국 주도로 \'가격 파괴\'가 가세하고 있다. 가격 혁명의 상징은 \'유니클로 현상\'이다. 유니클로는 옷값을 내릴 수 있는 선(線)까지 인하하고도 며칠마다 더 싼 신제품으로 교체하는 회사다. 할인마트에는 반값 TV가 쏟아져 소비자들은 환호한다. 하지만 중국산·동남아산 저가(低價) 상품이 휩쓸면서 일본은 20년 침체에 빠졌다. 그런가 하면 곡물 값은 폭등한다. 1회용 우산부터 대형부동산까지 손에 잡히는 모든 물건의 가격표가 뒤바뀌는 와중이다.



어느 나라에서든 실질임금이 하락하는 \'임금 파괴 혁명\'까지 진행 중이다. 1% 소수의 연봉은 오르지만 절대 다수 임금 근로자들이 챙겨 가는 몫은 줄어들더니 \"점령하라\"는 구호가 세상을 뒤덮었다. 경영인은 집단해고나 비정규직 채용을 통해 인건비를 깎고, 그럴수록 고용된 사람들이 나눠 가질 떡은 작아진다. 대통령·총리들은 알바·인턴·비정규직이 늘어나는 고민을 해결할 길이 없고, 고정적인 임금소득을 기반으로 형성됐던 중산층의 두께는 얇아지고 있다.



돈 값, 사람 값, 물건 값이 동시에 무너지는 \'삼중(三重) 파괴\'는 기존 경제의 틀을 송두리째 흔드는 파도다. 그러나 그 어떤 나라도 이를 거부할 수 없다. 세계화(globalization) 물결 속에 휘말려들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지구상에는 300여개의 자유무역협정(FTA)이 맺어져 있다. 지난 30~40년간 진행된 시장통합의 쓰나미가 얼마나 거센지는 16세기 유럽을 흔들었던 세계화 물결과 비교하면 쉽게 가늠할 수 있다.



16세기 이전까지 서양 세계의 부(富)는 지중해 주변 국가에 집중되어 있었다. 당시 지중해 선진국이던 이탈리아·스페인·그리스·이집트·모로코 등의 인구는 모두 합해서 2400만명 안팎이었다고 한 일본 전문가는 추산했다. 이들 선발(先發) 지중해 선진국들을 북부의 영국·프랑스·독일·네덜란드·폴란드가 뒤쫓아가는 과정에서 시장통합이 이루어졌다. 후발(後發) 신흥국들의 인구는 그때 통틀어 4600만명 언저리였다. 16세기의 세계화가 7000만 유럽인들의 경제권 통합으로 이어지면서 곡물 값이 8배 이상 뛰었고, 중남미에서 들어온 은(銀) 덕분에 화폐 증발로 저금리 국면이 지속됐다. 돈의 가치, 상품의 가치, 인간의 가치가 붕괴되는 현상이 지금과 비슷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는 미국·유럽·일본 등 선진국 경제권 인구 10억명과 브라질·러시아·중국·인도 등 브릭스(BRICs) 국가 인구 28억명이 하나로 묶어지는 과정이다. 여기에 한국·대만·동남아·중남미·동유럽까지 합치면 16세기보다 70배가 넘는 50억명 안팎이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다. 세계화에 동원된 인구와 국가 숫자가 500년 세월 사이에 급팽창한 것이다.



16세기 세계화 물결은 100년 이상 지속되면서 암흑의 중세(中世)를 종결시키고, 종교혁명과 르네상스 혁명을 몰고 왔고, 두 세기 후에는 산업혁명으로 이어졌다. 21세기 세계화 바람은 앞으로 몇 십 년을 더 넘어 100년 이상 불어닥칠지 모르고, 어떤 후속 혁명을 파생시킬지 짐작하기조차 힘들다. 두려움에 떨며 그 폭발력을 지켜보고만 있기에도 벅차다.



16세기 유럽이 세계화로 출렁일 때 한국 경제는 세계 속에서 존재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2010년 우리 경제(GDP)는 세계에서 1.97%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5000년 역사 중 30~40년이란 짧은 기간이나마 세계화 바람에 잘 올라탔던 덕분이다. 하지만 커다란 피자판에서 1.97%는 부스러기 조각에 불과하다.



세계 경제의 큰 판이 요동치는 시대의 한 중간대목에서 다시 선거의 해를 맞았다. 비정규직을 하루아침에 없애고 복지(福祉) 낙원을 세울 듯 큰소리치는 정치인이 출연할 장면이다. \'이것이 경제를 살리는 묘약(妙藥)\'이라며 요술방망이를 챙겨온 듯 설치는 후보도 여럿 등장할 것이다. 1.97t 조각배로 시대변혁의 큰 물결을 뒤엎을 것처럼 떠드는 정치 허풍에 또 한 번 우리들의 미래를 맡겨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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