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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영 칼럼/12.16] 소액 예금자들 利子 털어가는 '금리 입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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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0,820회 작성일 2011-12-19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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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액예금 유치하기 위해 이자 더 주는 \'금리입찰\', 소액예금자 소득 빼앗는 격

금리입찰로 재미보는 곳은 대기업, 정부·공기업, 부자들… 양극화 부추기는 관행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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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_img_caption.jpg\" 송희영 논설주간


며칠 전 농협이 대구시교육금고 운영권을 차지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농협은 3년간 2조3000억원을 운영할 권리를 손에 넣었다. 예금금리 수준은 연(年) 4% 후반, 교육청 직원들에 대한 대출금리는 5.76% 이하로 했다. 대구은행하나은행은 예금 유치 경쟁에서 밀렸다.



10월 현재 국내 은행의 평균 예금금리는 3.71%, 대출금리는 5.77%다. 농협이 4% 후반 이자를 보장했다면 1년에 100억원마다 1억원씩 이자를 더 준다는 약속이다. 거액 예금을 맡긴 덕분에 대구시교육청 직원들은 농협에서 낮은 이자로 대출받을 권리를 덤으로 챙겼다.



이는 금융권에서 늘 벌어지는 금리입찰의 한 사례일 뿐이다. 거액을 가진 큰손들을 둘러싸고 금융회사들이 너도나도 뛰어들어 경합하고 좋은 조건을 써낸 회사가 낙찰받는 과정이다. 이자율을 높게 쓰고 보너스 혜택을 듬뿍 얹어주는 곳이 성공하지만, 금액이 많을수록 인맥이 동원되고 로비까지 가세해 과열하기 일쑤다.



금융권에서 금리입찰은 상식이자 관행으로 굳어진 마케팅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1000만원짜리 \'푼돈 고객\' 1000명을 상대하는 것보다 100억원 예금주 1명과 거래하는 편이 비용이 훨씬 적게 든다. 큰 거래처를 따오는 것만큼 은행원이 조직 내에서 진한 인상을 남기는 일도 없다.



고액예금자를 우대하는 관행은 최근 15년 새 고착됐다. 감독 당국도 한때는 금리입찰을 단속했지만 이제는 거액을 가진 쪽은 입찰을 통해 우대금리를 받는 것을 \'있는 자의 권리\'쯤으로 당연하게 여기게 됐다.



그러나 금리 입찰은 두 가지 문제를 갖고 있다. 하나는 금리입찰로 인해 수천만 명의 다른 고객들은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점이다. 금융회사가 고액예금자들에게 보너스를 얹어주고 나면 소액을 맡기는 고객들의 예금에는 금리를 낮출 수밖에 없다. 농협이 대구시교육청 직원들에게 대출금리를 낮춰주면 다른 고객들에게 내주는 대출금 금리를 올려야 한다. 차등(差等)금리로 인해 소액예금자들은 어느 은행을 가든 불평등한 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경제학자들은 소액예금자가 받을 이자소득이 고액예금자에게 옮겨가는 현상을 \'소득이전\'이라는 말로 애매하게 설명한다. 그렇지만 낮은 예금 금리를 감수하는 입장에서는 이자 소득을 \'약탈\'당하는 꼴이고, 금융회사들은 \'금리 학대(虐待)\'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문제는 금리입찰로 재미를 보는 쪽은 언제나 재벌기업과 정부·공공기관, 수백억~수천억원씩 여윳돈을 굴리는 \'수퍼 리치(super rich)\'들이라는 사실이다. 삼성전자의 사내유보금은 작년 말 20조원을 넘어섰고 현대자동차도 올 9월말 현재 30조원을 여윳돈으로 챙겨놓고 있다.



재벌기업들이 은행 돈을 대출받으려고 접대 전담 술상무를 두고 커미션을 써가며 로비하던 시절은 가버렸다. 지금은 증권회사의 법인영업 담당 사장이 재벌기업의 자금과장이나 부장을 만나려고 안달할 만큼 판도가 변했다. 대기업들은 예금할 때 높은 우대금리로 이득을 보고, 대출받을 때는 낮은 우대금리로 두 번 이득을 챙긴다. 이쪽 은행에서 낮은 금리로 대출받아 저쪽 은행에 높은 이자율로 예금해두는 등 자금운용 기법도 갈수록 발달하고 있다. 정부와 지방정부, 공기업들도 매년 수백조원을 운영하며 금리입찰의 재미를 만끽하고 있다. 감사원까지 나서 여윳돈을 통상적인 금리로 은행에 맡기는 담당 공무원을 징계하며 사실상 금리입찰을 부추기는 실정이다.



공공기관들과 재벌기업들이 우대금리로 이득을 챙기는 대신 나머지 일반 고객들이 손해를 감수하는 구조가 정착되면서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더 심각해지고 있다. 더구나 물가는 오르는데 저금리 정책은 지속되고 있다. 은행 정기예금에 맡겨두면 손해본다는 마이너스 금리 국면이 1년6개월 이상 이어지고 있다. 서민들은 0.01% 차이의 금리에도 민감해졌건만 푼돈 저축으로는 새해 달력 하나 받지 못할 만큼 은행 창구 인심은 차가워졌다.



몇몇 경제학자는 투자를 활성화하려면 많은 여유자금을 굴리는 기업에는 예금금리에서 불이익을 줘야 한다고 제안한다. 거액의 잉여금을 은행에 맡기면 벌금을 물리듯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하자는 말이다. 하지만 거액 예금에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하면 자금이 해외로 이탈할 수 있고 사회정서상 공감을 얻기 힘들다.



그렇다고 금융회사들에 소액예금을 더 우대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을 것이다. 다만 고액예금 우대를 위해 소액예금자를 홀대하는 \'금리차별\'만은 막을 수 있다. 금리입찰이 빚고 있는 차별대우를 국민들이 언제까지 인내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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